'묘생역전' 올까요? 초보 캣맘의 철거촌 고양이 구조기
인간에게 공존 알려준 길고양이 '베리네' 가족
▲ 옛 친정집 앞에서 밥달라고 했던 콩이. 이 녀석은 모든 인연의 시작이다. ⓒ 지유석
요즘 아내는 길고양이에 진심이다. 좀 더 시점을 특정해 보면 2021년 9월부터 지금까지 길고양이들 밥을 먹이고 돌보는데 정말 몸을 '갈아 넣는' 중이다.
인연의 시작은 '콩이'였다. 아내 친정은 아산시 배방읍 모산로에 있었는데, 지난 9월 이 일대 재개발로 철거가 결정됐다. 그즈음 아내와 함께 친정을 방문했는데, 엄마 고양이와 새끼가 열려진 대문 앞에서 밥 달라고 '야옹'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재개발로 이사를 떠난 친정 건너 집에서 돌보던 고양이들이라고 했다.
캣맘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론 그렇다. 콩이와 콩이 엄마를 챙겨주다가 이제 반경을 넓혀 모산로 일대 재개발 지역에 몇 군데 밥자리를 정해 놓고 아침저녁으로 사료랑 물을 챙겨줬다.
길고양이 급식소가 마련됐지만
올해 2월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아산시에서 모산로 재개발지역 일대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 역시 아내의 공이 컸다.
모산로 재개발지역은 철거가 늦어지면서 일대 건물이 이제껏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러나 영역을 잘 떠나려 하지 않는 고양이의 습성상, 고양이들은 여전히 그 일대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시청에 철거 시 있을 위험에 대비해 고양이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시 예산상 어렵다고 했다. 그럼 급식소라도 마련해 달라고 압박했고, 결국 아산시가 세 곳에 급식소를 마련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5월 초 급식소 주변에 나타난 고양이 가족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엄마 고양이와 다섯 남매였다.
▲ 아내는 눈질환을 앓던 아기 고양이에게 손수 안약을 챙겨주며 돌봤다. ⓒ 지유석
엄마 고양이는 평소 아내가 돌보던 고양이였다. 그런데 다섯 남매 건강상태가 심각했다. 이 녀석들은 고양이 감기인 허피스(헤르페스)에 걸려 심한 눈 질환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코 주변을 덮고 있는 콧물딱지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아내는 근처 동물병원에서 안약과 허피스약을 구입해 손수 다섯 자매 눈에 넣어줬다. 그러던 중 5월 둘째 주 한 녀석이 참변을 당했다. 사체가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것이다.
아내는 학대를 의심해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한참 후 결과가 나왔는데 사람의 학대가 아닌 들짐승이나 떠돌이개들한테 습격을 당한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남은 네 남매가 해코지를 당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엄마 고양이와 네 남매 구조에 나섰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구조가 쉽지 않았고, 며칠 동안 아내는 철거촌에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난 아내의 건강을 걱정했다. 아내는 아침, 저녁으로 아이 돌봄일을 한다. 그 틈새 시간에 길고양이 밥을 주러 다닌다. 그런데 아이 돌봄이 노동강도가 무척 강해 늘 피곤해했다. 그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양이들 구조하겠다고 철거촌에서 새벽까지 머무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과 안위가 걱정될 수밖에.
'껌딱지' 아기고양이 자매, 묘생역전 바란다
▲ 아내가 구조한 베리 사남매. 원래 다섯이었지만 한 녀석은 참변을 당했다. ⓒ 지유석
네 남매는 지금은 아주 활달한 모습이다. 이 중 둘은 새 양부모를 만났다. 베리는 중성화 수술을 마쳤고, 자매 둘은 우리 집에서 임시보호 중이다.
자매 둘이 아직 감기가 채 낫지 않아서 돌봐주고 있는데, 재채기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집에 데려오라고 했다. 이제 쿠키, 애옹이에 이어 새끼 두 녀석까지 총 넷이 한 집에 살게 됐다.
어쩌다 내가 고양이 집사가 됐는지, 또 어쩌다 아내가 길고양이를 돌보게 됐는지 사람 운명(?)은 정말 알 수 없다.
그러나 길에서 험한 생활을 하는 고양이에게 먹을거리만큼 살뜰히 챙겨주는 아내에게서 이전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또 다 죽어가던 길고양이가 아내의 손길을 거치면서 되살아나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다. 물론 얼마 전 아기 고양이 봄이는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지만, 그래서 봄이는 우리 부부에게 아픔으로 남았지만 말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프지 말아야 하고, 배고프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지구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서로가 아플 때면 보살펴주고, 배고프지 않게 먹을거리를 챙겨줘야 한다. 길고양이는 이렇게 인간에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나 보다.
지금 우리 집에서 임시보호 중인 두 자매는 연일 '깨방정'이다. 우리 집 둘째 애옹이는 마치 엄마처럼 두 녀석의 곁을 지켜준다. 셋이서 오손도손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흐뭇하다. 내가 결벽증만 아니면, 사는 곳이 좀 더 넓었으면 같이 살아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내게 넷은 무리다.
엄마 베리는 중성화수술을 받게 한 다음 방사했다. 남은 두 자매는 부디 좋은 양부모 만나 묘생역전 했으면 좋겠다. 둘이 아주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데, 둘이 같이 입양되면 더 좋겠다.
그리고 베리 가족 구조해서 살뜰히 돌보느라 지쳤을 아내가 이젠 좀 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유석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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