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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잔재 '부락'이라 새긴 유허비, 그대로 둬야할까

2013년에 세운 창원 상남동 '중앙부락옛터' 비석 ... '중앙마을옛터'라고 해야

등록|2022.06.21 09:37 수정|2022.06.21 09:37

▲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있는 '중앙부락옛터' 유허비. ⓒ 윤성효


좋은 우리말인 '마을'이나 '동네'가 아닌 일제 잔재인 '부락(部落)'이라고 새긴 '유허비(遺墟碑)'를 그대로 둬야 할까.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공영주차장 귀퉁이에 세워진 '중앙부락옛터' 비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유허비는 2013년 12월에 건립추진위가 구성되어 세워졌다. 비석 앞면에는 '중앙부락옛터', 뒷면에는 '중앙부락 유래'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에는 "상남역에서 대저로 오가는 길목이었고, 창원군 상남면 응지리였으나 면사무소, 지서, 우체국, 초등학교 등이 자리하면서 응지리에서 분리되어 중앙부락이라 불렀다. 1970년대 정부의 근대산업화 시책에 따라 사라진 동네를 회상하고 역 마당 언저리에 터를 잡아 그 때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 흔적을 남긴다"라고 되어 있다.

비석에는 '중앙부락'이라는 글자가 세 군데 나온다. '부락'은 일제 잔재다. 일제강점기 때 '마을'을 '부락'으로 바꾸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부락'에 대해 "일본에서 '부락'은 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동네를 일컫는 말이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부락'이라는 이름으로 낮춰 불렀는데, 그것이 관청용어처럼 굳어졌다. 이후로 '부락'이 '마을', '동네'라는 좋은 우리말을 제쳐놓고 널리 쓰이기 시작했으나, 그 본래의 쓰임을 안다면 절대로 다시 쓸 말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중앙부락옛터' 비석에 대해, 김영만 친일청산시민행동 의장(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요즘도 '부락'이라는 말을 쓰느냐. 일제 잔재다. 좋은 우리말인 '마을'이나 '동네'로 바꾸어야 한다"며 "비석이 세워진 시기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는데, 어째서 '부락'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의장은 "'부락'이라는 용어가 쓰인 비석을 그대로 둔다면,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자라나는 세대가 볼 때 잘못 알게 될 수 있다"며 "이미 세워놓은 다른 비석의 경우 잘못된 문구로 인해 뭉개버리거나 다시 세웠던 사례가 있다"고 했다.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 저자인 이우기 경상국립대 홍보실장은 "일본말인 '덴푸라'(튀김요리), '사라'(접시), '사시미'(생선회)를 한때 많이 쓰다가 요즘은 쓰지 않고, '부락'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며 "특히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그런 말을 사용한 비석을 세워 두어서는 안 되고, 우리말인 '마을'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창원시 문화유산육성과 관계자는 "당시 시 예산으로 세웠던 비석이 아니고 중앙마을에 살았던 주민들이 뜻을 모아 유허비를 세워 놓았다"며 "그때까지 불리었던 동네 이름을 그대로 새겨 놓았는데, 당장은 바꾸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상남동이 지역구인 한은정 창원시의원은 "'중앙부락옛터'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줄 몰랐다. 유허비는 선현들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워놓은 비석을 말하는데, 우리말을 쓰야 한다고 본다"며 "비석을 고칠 수 없다면 그 옆에 '부락'은 일제 잔재이고 '마을'이나 '동네'를 뜻한다는 내용의 안내판이라도 세워 놓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있는 '중앙부락옛터' 유허비 뒷면. ⓒ 윤성효

  

▲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있는 '중앙부락옛터' 유허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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