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동결' 대학 등록금 풀어준다? 대학이 들끓는다
등록금 규제 완화 언급한 교육부... "교육 질 위해 필요" vs. "책임 떠넘기기" 반응 갈려
▲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6월 23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대학 총장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교육부 제공
정부가 대학 등록금 규제 완화의 뜻을 내비치자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6월 23일 열린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학 총장 세미나에서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 내에도 등록금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13일 나온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도 '등록금 변동과 연계해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도록 한 요건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등록금 인상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정부는 2012년부터 국가장학금 II유형을 신설, 대학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 노력에 따라 예산을 차등 지원하며 사실상 등록금 인상을 막아왔다. 또 국가장학금 II유형에 참여하지 않는 대학들은 다른 일부 교육부 사업에도 참여할 수 없어,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서 등록금을 올리는 것은 '소탐대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대학들은 그동안 재정 위기를 호소하며, 매년 등록금 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해왔다. 실제 올해 대교협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회원대학 239개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학 관계자들은 '고등교육 재정 확충'과 '대학 등록금 동결 개선'이 제일 시급한 문제라고 응답했다.
'등록금 인상 막은 정치논리, 이제 정상 논리로' vs. '정부와 대학, 책임 떠넘기기'
▲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 반대 기자회견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29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이르면 내년부터 동록금이 인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학 관계자와 교수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상일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장은 "14년간 정치적인 논리로 등록금 동결을 막아왔다"며 "이제는 정상적인 논리로 흘러가야 한다"고 평했다. 또 대학들의 재정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다며 "최소한 법적으로 인상을 허용했던 부분까지는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부 교수들은 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수도권 사립대학 A교수는 "교수들의 임금도 14년째 거의 오르지 않았다"며 "최근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상승률에 맞춰 교수 임금도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학생사회에서는 반발이 잇따랐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26일 입장문을 내고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연서명을 요청했다. 전대넷은 '등록금 인상이 아니라 대학과 교육부의 자성이 먼저'라며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확대 ▲등록금 수입에만 의존하는 대학 재정 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다.
김민정 전대넷 집행위원장은 "방학 중에는 학생들의 관심이 적기 때문에 집행부를 중심으로 대응하는 중"이라며 "2학기 개강 이후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종우 전국교수노동조합 정책실장은 "국가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며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고등교육 예산으로 마련하도록 하는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정부에서 초중등교육에 투자되는 재원의 일부를 대학으로 돌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대학만을 위한 재원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수 임금 인상에 관해서는 이 정책실장은 "지금 교수들의 급여를 올리느냐 안 올리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문제는 임금 동결이 아닌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교수직의 다극화이며 이것 역시 정부가 해결할 숙제"라고 말했다.
한 수도권 사립대학의 등록금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대학이 법정부담금(사립대 법인이 의무적으로 대학 운영비에 출자해야 하는 금액)도 제대로 납부 안 하면서 등록금을 인상하는 건 책임 떠넘기기"라며 "법적으로 납부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대학알리미 '법정부담금 부담 현황(2021)'에 따르면 자료를 제출한 대학 173개교 중 34개교(19.6%)만 부담하고 있었다. 10%도 납부하지 않은 대학은 42개교(24.2%)에 달했다. 연덕원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립대학 법인이 토지를 위주로 수익용 기본재산을 갖고 있기에 수익이 적다"며 "수익성이 낮은 재산을 처분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운영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질 향상 위해 필요하다? 연관성 불명확"
▲ 지난 2021년 3월, 전국대학생학생회네트워크, 청년하다 등 등록금반환운동본부 소속 대학생들이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등록금 반환 요구'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한편 학생들 사이에서도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 모 대학 커뮤니티에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자, '이제는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익명 게시글이 다수 검색됐다. 노후 건물 보수, 실험 장비 교체, 교직원 최저임금 인상 등 시간이 지나면서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등록금도 올라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서강대 3학년에 재학 중인 B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제도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교육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에 김민정 전대넷 집행위원장은 "많은 언론 보도가 정부와 대학의 법인의 입장을 대변해 그런 듯하다"며 "실제로 정부와 대학이 어떤 부분을 책임지지 않고 있는지 (전대넷 측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다면 등록금 인상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덕원 연구위원도 "등록금 인상과 교육 및 연구의 질 향상이 비례한다고 단정 지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과거 등록금 인상이 가능했을 때도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로 인한 효과는 수도권 사립대학들만 누릴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상일 협회장은 "이미 신입생 충원율이 낮은 지방대학들은 경쟁력이 약화할 것을 우려해 등록금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대신 수도권 대학과의 등록금 격차로 인해 지방대학의 학생 충원이 원활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24일 보도자료를 배포, '대학 등록금 규제 개선 방향·시기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학생·학부모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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