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스털린의 역설' 제시한 노학자의 행복 처방

[인터뷰] 리처드 이스털린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 추구해야"

등록|2022.07.12 04:03 수정|2022.07.13 12:05
행복경제학의 시작으로 알려진 '이스털린의 역설'. 이 '역설'에 의하면,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하지만 과거보다 더 돈이 많아진다고 사회가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이전 기사 참고: '이스털린의 역설' 의미, 이스털린 교수에게 직접 확인했더니).

그럼, 다가온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는 우리는, '돈'이 아닌 그 무엇을 좇아야 하는 것일까? 최근 국내에 신간 <지적 행복론>을 출간한 이스털린 교수(Richard A. Easterlin,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 명예 교수)에게 직접 물어보기 위해,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질문지는 6월 28일 보냈고, 이스털린 교수의 마지막 최종 답변은 1일 오전에 받았다).

"행복이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 이스털린 교수(Richard A. Easterlin,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 명예 교수). 출처 ; 출판사 월북 책 소개 이미지. ⓒ 윌북


- 소득은 일정 수준의 만족점까지만 행복을 늘려준다는 내용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이스털린의 역설', 실제로는 무슨 의미인가요?
"횡단면 관계와 시계열 관계의 모순이지요. 정해진 한 시점에는 행복과 소득에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횡단면 관계),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는 소득 변화가 마찬가지의 행복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시계열 관계)는 겁니다."

- 최근의 세계적인 코로나 불황이 교수님 말씀의 반례가 아닐까요? 팬데믹 동안 많은 사람들의 소득이 과거에 비해 감소했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불행해졌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행복과 소득이 함께 오르내립니다. 하지만 소득은 증가하는 추세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반면, 행복은 비교적 평평한 추세선을 따라 오르내리죠. '역설'은 추세선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지, 그 장기 추세 속에서 잠깐 나타나는 팬데믹이나 불황으로 인한 단기적인 변동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 확장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경기순환의 한 쪽 국면만을 보면 1인당 GDP와 행복 사이에 뚜렷한 시계열적 상관이 나타나지만, 두 추세선을 비교하면 서로 상관이 없다. ⓒ 이승엽


데이터를 다루는 사회과학자의 시각에서는 코로나 불황이 단기적인 '변동'일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이후를 전망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그 전과는 사뭇 달라진 것 같다. 우리는 코로나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이스털린에게 물었다.

- 행복경제학자로서,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건강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죠. 팬데믹이 우리 모두의 행복에 미친 부정적 결과가 바로 이 점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의료 보장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긴요하다는 점 역시 알 수 있지요."

그럼, 경제 성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일까?

- 우리의 목표를 GDP 증가에서 행복의 증가로 옮겨야 한다는 것인가요? 
"경제 성장이 아니라 행복이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죠. 그렇게 되면 사람들 마음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겠죠. 단, 우리가 '탈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신, 경제 성장의 내용에 대한 결정을 소비자들에게 그저 맡겨놓지 않고, 정부가 세금을 걷어 사람들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율이 높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노르딕 국가들처럼요."

정부가 어떻게 사람들의 행복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일까? 이스털린은 이 답변에 대해 그의 저서 <지적 행복론>의 7강, 그 중에서도 다섯 번째 절을 참고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경제활동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맡기고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하며, "복지국가의 수립"을 주문하고 있었다(pp. 136-9). 바로 앞 절에서 그는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포함해 완전 고용, 소득 지원, 주택 지원, 육아 휴직, 노인 부양 등, 그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정책들을 열거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간단히 말해 모든 이들을 위한 철밥통인 셈이지요(p. 135)". 튼튼한 안전망이 사람들의 불안을 덜어주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성장, 이용해야"

하지만, 정부가 나서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곳곳에 개입하는 "복지국가"는 부유한 나라들만을 위한 처방이 아닐까?

- 저소득 국가들에게는 여전히 경제 성장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저소득 국가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코스타리카는 비록 가난한 나라였지만 복지국가를 건설했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한국이나 미국보다도 더 행복하지요."
 

▲ 갤럽 월드 폴(Gallup World Poll) 조사 결과. 각각 삶에 대한 평가(왼쪽)와 긍정적 감정(오른쪽)으로 측정한 행복. ⓒ 이승엽


낮은 소득 수준으로도 높은 수준의 웰빙을 누리는 복지국가 코스타리카는 주관적 웰빙인 '행복'뿐만 아니라, 객관적 발전지표에서도 높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보다 4~5배 낮은 1인당 GDP로도 그보다 높은 기대수명을 누릴 정도. 생태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경제 성장을 멈추고, 오히려 경제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고 믿는 '탈성장'주의자들의 단골 사례가 된 이유다.

사실, 탈성장주의자들은 '이스털린의 역설'을 좋아한다. 경제 성장 없이도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잘 뒷받침하기 때문. 그럼, 이스털린은 이 가장 급진적인 기후위기 대안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제 요점은 성장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 아닌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데 성장을 이용하라는 것이지요."

이제는 국제사회의 개발 목표 핵심에 자리하게 된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이 지니는 중요성을, 물론 이스털린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탈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비교하면, 그의 입장은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에 가깝다.

"성장을 추구할 때는 그 내용에 '지속가능성'을 포함해야 합니다. 경제 성장을 완전히 폐기하기보다는, 차라리 성장의 혜택을 세금과 공공 정책을 통해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이용해야죠."

요컨대, 이스털린은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는 데에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굳이 경제 성장을 멈추라고 말하는 급진주의자는 아니다.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진 경제 성장을 행복을 증진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의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도 최신 데이터를 이용해 세계 각 나라의 행복을 계속 추적하고 있는 그는 최근에도 '이스털린의 역설'을 다루는 논문을 한 출판물에 실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털에 '이스털린의 역설'을 검색하면 검색 결과의 최상단에 노출되는 문서가, '역설'이 이미 반박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던 것을 의식하며, 이스털린에게 실제 데이터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넌지시 물어봤다.

- 당신의 주장,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하는 연구들도 있는데요. '역설'을 반증한 것으로 알려진 그 2008년 논문의 저자, 스티븐슨과 울퍼스가 2012년 다른 학자인 삭스와 다시 진행한 후속 연구에 의하면, '장기적으로도' 행복과 소득 사이에 시계열적 관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들의 연구는 그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기가 아닌 단기적인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시계열을 단축시켜 분석했지요. 저는 사용 가능한 가장 포괄적인 최신 데이터로, 저소득 국가 및 고소득 국가 모두에서 1인당 GDP와 행복의 장기적인 추세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켈시 오코너(Kelsey O'Connor)와 함께 최근 두 편의 논문들로 펴낸 연구에서도 증명했습니다."
 

▲ 시계열이 경기의 확장 국면만 포함하고 있는 이행기의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면, 장기로 갈수록 1인당 GDP의 연평균 성장률과 행복의 연평균 변화량은 시계열적 상관이 없다(실선). 장기는 12~39년, 중기는 12~15년의 시계열을 분석. Easterlin, R. A., & O'Connor, K. (2020). The Easterlin Paradox. Available at SSRN 3743147. ⓒ 이승엽

     
그가 분석한 데이터로 그려진 두 그래프는 이런 이스털린의 대답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해당 연구에서 그는 장기의 시계열 분석을 위해서는 1981년부터 시작된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와 유럽 가치관 연구(European Values Study) 자료를, 중기의 시계열 분석을 위해서는 2005년부터 시작된 갤럽 월드 폴(Gallup World Poll) 자료를 이용했다. 각각 12년에서 39년에 이르는 67개 국가, 12년에서 15년에 이르는 123개 국가의 이 시계열을 분석한 결과, 여전히 '이스털린의 역설'은 유효했던 것.

이렇게 데이터를 끈질기게 탐구하는 그 자세와 연륜 때문에, 97세 노학자의 행복 사회를 위한 처방에 귀기울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