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선언'의 메모와 반출과정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28]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
▲ 1975년7월20일, 지학순 주교(가운데 꽃다발 쓴 이)와 김지하 시인(지 주교 오른쪽)이 환영인파와 함께 원동성당을 향해 가두행진 중이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박정희 정권은 김지하를 국사범으로 취급해서인지 한때 독방에 가둬놓고 옆방을 몇 개씩 비워놓고 일체의 접근과 통방을 막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공산주의자로 만드는 진술서와 정보부의 공작을 깨뜨려야 했다.
이 시기에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을 시작으로 민주인사들의 '양심선언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김지하도 이 방식을 추구했다. 하지만 옆방과 통방조차 불가능한 절해고도와 같은 감방이었다. 생각나는데로 하나씩 메모하고 구상을 할 때 기적과 같은 일이 생겼다. 양심적인 교도관 전병용이 나타난 것이다.
그게 한꺼번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 자꾸 보완도 되고 그랬겠죠. 그러니까 양심선언을 보면 별 고급이론이 많이 나와요. 뮈 신학자 이야기도 나오고, 그거 김지하가 안에서 서적도 없이 감시당하는 상황에서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 밖에서 정리해서 알려 준 겁니다. 신부들한테 배워오고. 떼야르 샤르뎅이니 신부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요. (주석 8)
이런 과정을 거쳐 마련된 <양심선언>은 김지하가 있던 구치소 내 사동에 청소의 일을 맡은 소년수를 통해 민주회복국민회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명동성당의 윤형중 신부에게 전해지고, 윤 신부는 필리핀의 가톨릭을 통해서 일본의 소아(相馬) 주교에게 전달되어 해외에서 먼저 공개되었다.
▲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 자료사진
한 시대의 '기념비적인 명문'이란 평을 받게 된 <양심선언>은 긴 내용이어서 몇 대목을 골랐다. 먼저 서문격의 앞부분이다.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모략이 지금 나에게 들씌워지고 있다. 박 정권의 억압자들은 나를 가톨릭에 침투한 맑스 레닌주의자로, 민주주의를 위장한 공산주의 음모자로 몰아 투옥하였다. 이제 곧 나를 교활 음험한 공산주의자로 영원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낙인찍기 위한 재판놀음이 벌어질 것이며, 그 결과 나는 이 땅에서 만들어져 온 숱한 관제 공산주의자의 대열에 끼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두거니와, 이것은 나 개인에 대한 모략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민주회복운동 전체와 사회정의구현을 위해 투쟁하는 신ㆍ구교 교회에 대한 중상모략 소동의 일환이며, 특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과 민주회복국민회의 및 일체의 청년학생운동을 용공으로 몰아 압살하려는 대 탄압의 예비작업인 것이다.
현재의 내 솔직한 심경으로는 내 자신에게 지난 4년 이래 가해지고 있는 박 정권의 이 더러운 상투적 모략에 대하여 한 마디 변명도 하고 싶지 아니하며, 또 이번 사건에 관한 최소한의 진실도 정보부원들의 '일체의 주장과 변명은 법정에서'라는 말대로 법정에서 밝히려 하였다.
그러나 사건이 나 자신의 근본적인 사상과 사회적 근거를 왜곡, 파괴하고 나아가 민주역량 전체와 내 소속 교회 그리고 후배학생들에 대한 막심한 피해로 확대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양심에 따라 나의 사상과 진실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 역사와 민족에 대한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주석
8> <홍성우 증언>, 137~138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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