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로 읽고, 함께 읽고... 요리조리 뜯어보기 좋은 그림책
다나카 기요의 <깜장이>
세상은 넓고 그림책은 많다? 아마도 그림책 세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그림책 세상이 넓은 만큼 그림책에 대한 공부도 끝이 없다. 그런데 그림책은 혼자 읽는 맛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 읽을 때 읽는 맛이 더해지는 장르인 듯하다.
풍성한 그림과 어우러진 글밥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그림책이 지닌 해석의 공간을 무한 확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1일 인천광역시 동구 마쉬 책방에서 김보나, 김명순 선생님이 진행한 일본어 그림책 함께 읽기 과정으로 다나카 기요 작가의 <깜장이>를 함께 읽으며 그림책의 깊고 넓은 세계를 만끽했다.
'으응, 난 괜찮아'
지금은 사시사철 토마토를 먹을 수 있지만, 토마토의 계절은 초여름이다. 어릴 적 제철 과일(?)로 등장한 토마토를 한 입 베어물면 느껴지던 달큰하게 농익은 맛은 지금 마트에 쌓인 토마토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2018년 출간된 다나카 기요 작가의 <토마토야 왜 그래?>는 무더운 여름 날 툭 떨어진 토마토가 주인공이다. 더운 날씨 토마토네 동네 벌레들이랑 도마뱀들은 수영을 하러 간다. 방울 토마토들도 몸이 가벼우니 떼굴떼굴 굴러 물에 풍덩 뛰어든다.
토마토도 시원한 물로 뛰어들고 싶다. 도마뱀 친구들도 권한다. 그런데 토마토는 말한다. '난 괜찮아', 심지어 '둥실둥실 헤엄치는 거 우스꽝스러워'라며 한 술 더 뜬다. 하지만 토마토는 홀로 눈물짓는다. '헤엄치러 가고 싶어, 하지만 몸이 무겁잖아, 방울토마토처럼 굴러갈 수 없다고.'
<깜장이>를 함께 읽었다며 왜 토마토 얘기를 할까? 2006년작 <토마토야, 왜 그래?>, 그리고 2018년작 <깜장이>까지 무려 16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다나카 기요 작가의 그림책 속 주인공들은 다들 겉으로는 '으응, 난 괜찮아'라는 듯 보인다.
<깜장이> 그림책 표지를 열면 여섯 살 정도나 됐을까? 여자 아이가 조심조심 홀로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 옆으로 또래 여자 아이와 엄마가 지나간다. 아직은 엄마와 함께 돌아가야 할 나이인 듯한 아이는 마치 '으응, 난 괜찮아'라는 듯 홀로 걸어간다.
그런데 아이의 눈에 이상한 애가 눈에 띈다. 담 위에 앉아있기도 하고, 길 건너편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기도 하고, 매번 홀로 가는 아이의 눈에 띤다. 그런데 그 애를 사람들은 모르나 보다.
'애, 거기서 뭐해?'
'깜장이'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게 생긴 까만 애. 귀신? 도깨비? 유령?, 일본식 표현으로 오바케(お化け)라고 한단다. 익숙한 문화 콘텐츠 속 오바케로는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숲의 정령 토토로가 있다. 아이는 그 '오바케', 깜장이를 따라 낯선 집으로 들어선다.
정중하게 차를 대접하는 깜장이와 함께 차도 한 잔 마시고, 깜장이가 열어주는 벽장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 문을 닫자 깜깜해진 벽장 속 공간, 그런데 벽장 위 또 다른 공간이 열리고, 벽장 속으로 들어간 나니아처럼 오래된 집 속에 숨겨진 판타지의 공간 속에서 깜장이와 아이는 한껏 뛰어논다. 그리고 산처럼 커다란 털뭉치에 푹신 안겨 잠이 든 아이.
그림책을 함께 읽고 저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했다. '나, 엄마 꿈을 꿨어' 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담벼락 위에서 등지고 앉은 검은 '애', 이웃집 토토로처럼 딱 보기에도 '귀엽다' 하는 느낌이 분명하지 않은 깜장이와 아이가 동행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주었다.
아이가 깜장이를 따라가는 장면 때문에 이 그림책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한단다. 오래된 집, 깜깜한 벽장 안이라니. 그런 팽팽한 긴장감은 그래서 외려, 털뭉치 속에서 깨어난 아이가 '엄마 꿈'을 꾸었다고 했을 때, 더 뭉클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늘 홀로 '난 괜찮아' 하던 아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깊이 감추어 두었던 아이가 깜장이와 함께 한껏 뛰어놀고 한숨을 잔 이후에야 풀어놓는 그리움이 더욱 애잔했다.
<토마토야 왜 그래> 이후 16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밑그림에만 2년 8개월이 걸렸다는 다나카 기요 작가의 <깜장이>는 그림책 초반의 흥미진진한 깜장이와의 동행과 놀이의 여정 끝에 비로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풀어놓는다.
그래서 아이의 깊숙한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더욱 절절하게 느끼도록 한다.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더욱 애틋해졌다는 작가의 생각은 '절제의 미적장치'이기도 한 모노크롬(단색) 동판화 기법으로 진솔함을 더했다.
함께 그림책을 보아가는 시간, 보는 이들에 따라 '깜장이'에 대한 해석이 더해졌다. 깜장이는 아이의 내면을 드러내어 주는 그림자가 되기도 했다. 오래된 집 벽장이 주는 의미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두려운 공간이라면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이 즐겨 찾아드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해석했다.
머리를 맞대어 퍼즐을 풀듯 오래된 집 안의 다양한 코드들을 찾아냈다. 다나카 기요 작가가 즐겨 그리는 동물 도마뱀을 찾아내기도 했고, 곳곳에 등장하는 의자는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견인차와 같다는 등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했다.
일본어 그림책과 일본 문화에 해박한 김보나, 김명순 선생님의 길잡이 덕분에 다나카 기요 작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더해졌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 완성할 수 있었다는 <깜장이>.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해석보다 '그냥 그대로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소감을 잊지 않았다.
운문에 가까운 글밥을 가진 그림책은 마치 시를 번역하듯 작가가 원래 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어 원서를 함께 비교하며 읽어간 <깜장이>는 다나카 기요 작가가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저 우리 말 '톡톡톡톡', '탁탁탁'으로 번역된 입말의 뉘앙스가 원어의 문장을 통해 참여한 이들의 집단 지성을 발휘되는 즐거움의 지점이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함께 나누고 읽어가며 작가의 진심을 함께 나누었다. 일본 그림책 대상까지 수상한 <깜장이>가 지닌 풍성한 감수성의 세계에 보다 더 깊게 들어설 수 있었다.
풍성한 그림과 어우러진 글밥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그림책이 지닌 해석의 공간을 무한 확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1일 인천광역시 동구 마쉬 책방에서 김보나, 김명순 선생님이 진행한 일본어 그림책 함께 읽기 과정으로 다나카 기요 작가의 <깜장이>를 함께 읽으며 그림책의 깊고 넓은 세계를 만끽했다.
▲ 깜장이 ⓒ 북뱅크
'으응, 난 괜찮아'
2018년 출간된 다나카 기요 작가의 <토마토야 왜 그래?>는 무더운 여름 날 툭 떨어진 토마토가 주인공이다. 더운 날씨 토마토네 동네 벌레들이랑 도마뱀들은 수영을 하러 간다. 방울 토마토들도 몸이 가벼우니 떼굴떼굴 굴러 물에 풍덩 뛰어든다.
토마토도 시원한 물로 뛰어들고 싶다. 도마뱀 친구들도 권한다. 그런데 토마토는 말한다. '난 괜찮아', 심지어 '둥실둥실 헤엄치는 거 우스꽝스러워'라며 한 술 더 뜬다. 하지만 토마토는 홀로 눈물짓는다. '헤엄치러 가고 싶어, 하지만 몸이 무겁잖아, 방울토마토처럼 굴러갈 수 없다고.'
<깜장이>를 함께 읽었다며 왜 토마토 얘기를 할까? 2006년작 <토마토야, 왜 그래?>, 그리고 2018년작 <깜장이>까지 무려 16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다나카 기요 작가의 그림책 속 주인공들은 다들 겉으로는 '으응, 난 괜찮아'라는 듯 보인다.
<깜장이> 그림책 표지를 열면 여섯 살 정도나 됐을까? 여자 아이가 조심조심 홀로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 옆으로 또래 여자 아이와 엄마가 지나간다. 아직은 엄마와 함께 돌아가야 할 나이인 듯한 아이는 마치 '으응, 난 괜찮아'라는 듯 홀로 걸어간다.
그런데 아이의 눈에 이상한 애가 눈에 띈다. 담 위에 앉아있기도 하고, 길 건너편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기도 하고, 매번 홀로 가는 아이의 눈에 띤다. 그런데 그 애를 사람들은 모르나 보다.
▲ 깜장이 ⓒ 북뱅크
'애, 거기서 뭐해?'
큰 맘 먹고 그 애에게 말을 건넨 날, 그 애는 '톡톡톡톡', 걸어내려오더니, '탁탁탁', 앞서 걸었어
'깜장이'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게 생긴 까만 애. 귀신? 도깨비? 유령?, 일본식 표현으로 오바케(お化け)라고 한단다. 익숙한 문화 콘텐츠 속 오바케로는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숲의 정령 토토로가 있다. 아이는 그 '오바케', 깜장이를 따라 낯선 집으로 들어선다.
정중하게 차를 대접하는 깜장이와 함께 차도 한 잔 마시고, 깜장이가 열어주는 벽장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 문을 닫자 깜깜해진 벽장 속 공간, 그런데 벽장 위 또 다른 공간이 열리고, 벽장 속으로 들어간 나니아처럼 오래된 집 속에 숨겨진 판타지의 공간 속에서 깜장이와 아이는 한껏 뛰어논다. 그리고 산처럼 커다란 털뭉치에 푹신 안겨 잠이 든 아이.
'나, 엄마 꿈을 꿨어.'
그림책을 함께 읽고 저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했다. '나, 엄마 꿈을 꿨어' 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담벼락 위에서 등지고 앉은 검은 '애', 이웃집 토토로처럼 딱 보기에도 '귀엽다' 하는 느낌이 분명하지 않은 깜장이와 아이가 동행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주었다.
아이가 깜장이를 따라가는 장면 때문에 이 그림책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한단다. 오래된 집, 깜깜한 벽장 안이라니. 그런 팽팽한 긴장감은 그래서 외려, 털뭉치 속에서 깨어난 아이가 '엄마 꿈'을 꾸었다고 했을 때, 더 뭉클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늘 홀로 '난 괜찮아' 하던 아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깊이 감추어 두었던 아이가 깜장이와 함께 한껏 뛰어놀고 한숨을 잔 이후에야 풀어놓는 그리움이 더욱 애잔했다.
<토마토야 왜 그래> 이후 16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밑그림에만 2년 8개월이 걸렸다는 다나카 기요 작가의 <깜장이>는 그림책 초반의 흥미진진한 깜장이와의 동행과 놀이의 여정 끝에 비로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풀어놓는다.
그래서 아이의 깊숙한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더욱 절절하게 느끼도록 한다.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더욱 애틋해졌다는 작가의 생각은 '절제의 미적장치'이기도 한 모노크롬(단색) 동판화 기법으로 진솔함을 더했다.
▲ 깜장이 ⓒ 북뱅크
함께 그림책을 보아가는 시간, 보는 이들에 따라 '깜장이'에 대한 해석이 더해졌다. 깜장이는 아이의 내면을 드러내어 주는 그림자가 되기도 했다. 오래된 집 벽장이 주는 의미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두려운 공간이라면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이 즐겨 찾아드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해석했다.
머리를 맞대어 퍼즐을 풀듯 오래된 집 안의 다양한 코드들을 찾아냈다. 다나카 기요 작가가 즐겨 그리는 동물 도마뱀을 찾아내기도 했고, 곳곳에 등장하는 의자는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견인차와 같다는 등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했다.
일본어 그림책과 일본 문화에 해박한 김보나, 김명순 선생님의 길잡이 덕분에 다나카 기요 작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더해졌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 완성할 수 있었다는 <깜장이>.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해석보다 '그냥 그대로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소감을 잊지 않았다.
운문에 가까운 글밥을 가진 그림책은 마치 시를 번역하듯 작가가 원래 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어 원서를 함께 비교하며 읽어간 <깜장이>는 다나카 기요 작가가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저 우리 말 '톡톡톡톡', '탁탁탁'으로 번역된 입말의 뉘앙스가 원어의 문장을 통해 참여한 이들의 집단 지성을 발휘되는 즐거움의 지점이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함께 나누고 읽어가며 작가의 진심을 함께 나누었다. 일본 그림책 대상까지 수상한 <깜장이>가 지닌 풍성한 감수성의 세계에 보다 더 깊게 들어설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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