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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부하는 기계'인데... 교육감의 뻔한 말, 실망스럽다

[주장]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9시 등교제 폐지'가 담고 있는 진짜 문제

등록|2022.07.12 20:07 수정|2022.07.12 20:07

▲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지난 7월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오금고등학교에서 7월 모의고사 문제지를 넘기고 있다. ⓒ 연합뉴스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일론 머스크의 기사가 지난주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그가 세운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 Link)' 때문이다. '기억의 외장화'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뉴럴링크'는 뇌에 칩을 이식하는 '두뇌 임플란트'를 통해 기억을 보조 장치에 저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즉 '뉴럴링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한다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현실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기술은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나 치매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여러 가지 윤리적, 도덕적 문제들이 제기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이 기사를 접하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재미있게도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우리나라의 대입 수험생들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시험 때마다 단기 기억력 테스트를 위해 시간을 쓰는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누구보다 '기억의 외장화'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입시를 향한 욕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얼마 전 내신 시험을 앞두고 아이가 암기과목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친구 누구누구는 암기과목의 신이라고. 주요 과목보다 암기과목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그 친구의 암기과목 성적을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너도 암기 과목 공부 좀 해봐."
"엄마 나도 다 해. 교과서도 외우고 문제집도 다 풀고 학교에서 주는 자료도 다 본다니까."
"그런데?"
"그런데 정말 교과서 저 구석탱이에서 문제가 나오니까."
"그 친구는 어떻게 하는데?"
"걔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


아이가 가져오는 한국사 시험문제를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어려웠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실수를 유발하는 문제였다. 그중 하나가 연도 문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나? 단순히 몇 년 차이 나지 않는 연도별 사건을 정확히 암기하는 것이 역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지나친 학업에 혹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시에 대비해 수능 공부를 해야 하고, 수시에 대비해 내신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공부라는 것이 상당 부분 암기에 의존하고 있어, 지나치게 세분화된 문제의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암기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만약 '뉴럴링크'의 칩이 상용화된다면 이 땅의 많은 수험생들은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칩을 뇌에 이식하는 시술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이 과열화된 입시를 교육열이라 아름답게 부르지만, 학부모로서 내가 느끼기엔 이 사태가 그저 입시에 의한, 입시를 위한 열망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교육을 향한 열정과는 동떨어진, 입시를 향한 욕망 말이다.

공부에 영혼 갈아넣는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
 

▲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취임 첫 기자회견 ⓒ 경기도교육청


그런데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이 교육제도를 앞에 두고, 얼마 전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의 발언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복잡다단한 교육문제를 두고 뱉은, 그의 한마디의 무게는 왜 이렇게 가볍고 뻔했던 것일까.

지난 6일, 임태희 경기 교육감의 취임식 첫 인터뷰에 따르면 각 학교의 현재 등교 시간인 9시 등교를 자율화하겠다고 했다. '0교시'의 부활로도 읽히는 9시 등교 폐지를 언급하며 공부를 더 시키고 싶다는 아이들과 학부모의 의견을 외면할 수 없다고 말이다. (관련기사 : 임태희 "0교시 부활, 공부 더 하자는데 금지할 필요없어")

나는 이미 자리 잡은 9시 등교제를 폐지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의견을 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지금도 경기도에 있는 많은 고등학교들은 자율적으로 9시보다 이른 시간에 등교하도록 하고 있다. 9시 등교를 하든 하지 않든, 20~30분 정도의 차이라 적응하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지금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었다. 당선된 교육감으로서 첫 정책으로 밝힐 만큼 말이다. 안 그래도 공부하는 기계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공부 시간을 더 주겠다, 공부하기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말은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발언이었다. 내가 보기엔, 21세기를 대비하는 데 있어 별로 쓸모없는 공부에 영혼과 체력을 갈아 넣고 있는 아이들의 인간권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로 보이는 데 말이다.

교육열이 아닌 입시열로 달아오른 대한민국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직된 교육제도를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얼마 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 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도 비제도권에서 탄생한 천재다. 건강이 좋지 못해 야간자율학습을 빼달라는 요청을 거절당해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허준이 교수도 한국의 고압적인 방식의 제도권 교육에서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 삶의 질 높여주는 세상이 왔으면

암기력이 아닌 사고력을 키우고, 체지방이 아닌 체력을 키우고, 승부욕이 아닌 인성을 키우는 교육을 원하는 나는 너무나 이상주의에 빠진 학부모일까. 어쨌든 나는 단순히 공부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조금 더 취업에 유리한 학과에 지원하기 위해 소모적인 공부를 하고 있을 뿐인 아이들의 삶의 질이 조금 높아지기를 바란다.

"뭐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어요.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나 잘 알겠어요. ~ 네 선생님 그리 말씀하셔도 여러분의 말씀은 그저 그런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요즘 차트 상위권에 있는 이무진의 <참고사항>이 귓가에 맴돈다. 교육감이 어떤 정책을 펴든, 사실 오늘도 아이들은 말없이 문제집을 펴들 것이다. 이런 노랫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무릎 치는 교육 현실이 아닌, 의미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신나는 교육이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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