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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9시 등교제 폐지, 교사가 학생 의견 물었더니

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교육감 바뀔 때마다 학교 현장 혼란 가중

등록|2022.07.12 09:58 수정|2022.07.12 09:58

▲ 며칠 전 학교에서 e-알리미로 아침 등교시간 자율과 교육공동체 의견 설문조사가 나갔다. ⓒ e-알리미


지난 4일 제5대 경기도교육감 공약과제(학교 등교시간 자율화)에 따른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조사하여 2학기 학사일정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의 e-알리미(학교 공지창)가 나갔다. 학생들의 등교시간 변경이 학교의 수업 시작 시간, 하교시간, 점심시간과 방과 후 활동 등 교육활동 시간과 연결됐다는 점을 고려해서 체크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후보 때부터 '9시 등교제 폐지'를 약속했던 임태희 새 경기도 교육감이 2학기부터 '9시 등교제'를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시행하기로 결정했고 그에 따른 조치였다. '9시 등교제'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는 찬반이 분분하지만, 학기 중 도입은 혼란을 초래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경기도 내 초·중·고등학교에서 시행 중인 '9시 등교제'는 학생들의 수면 시간 보장을 위해 등교시간을 늦춘 제도다. 2014년 9월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당선된 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시행된 정책이다.

임태희 교육감이 들어서고 '9시 등교제'가 학교장 재량으로 바뀌게 되면서 학교도 술렁였다. 하지만 막상 투표를 해보니 80% 정도가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학기 중이기도 했고 변화가 갑작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내년에라도 일단 경기 도내 한 학교에서 9시 등교제가 폐지되면 주위 학교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게 대다수 교사들의 생각이다. 지역과 학교 상황에 따라 희망하는 등교 시간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학교 교육공동체 의견을 수렴해 학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내년에도 지금처럼 9시 등교를 고수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학생들 "일찍 와서 뭐 해요?"
 

▲ 고등학교 ⓒ 연합뉴스


실제로 워킹맘 등 맞벌이 부부들 가운데는 '9시 등교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침에 등교하지 않는 학생 중에서는 부모 출근 후 잠이 들어 등교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등교시간이 당겨진다면 학부모들은 맘 편히 출근할 수 있어서 불안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다.

반면 '9시 등교'를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의견도 많다. 급식 싫어하는 아이들은 집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아침밥 먹고 천천히 가는 게 좋다는 부모도 있었다. 9시 등교제의 취지인 '수면시간 보장'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아침밥은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감 인수위원회가 추진 계획을 밝힌 후, 당사자들인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오전 8시 30분이나 8시까지 등교하라고 하면 어떨 것 같냐고. 첫 대답은 "왜요?"였다. 교육감이 바뀌고 정책의 변화가 있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관심조차 없었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며 학교장 재량으로 '9시 등교제'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아이들의 다음 대답은 "일찍 와서 뭐 해요?"였다. 이미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강제로 시행하던 '야간 자율학습(야자)'은 사실상 없어진 지 오래다. 야자를 경험해보지도 못한 아이들에게 이른 등교, 이어지는 이른 수업이나 0교시 수업은 생소하다 못해 뜬금없는 얘기일 뿐이었다.

투표 설문이 나가고 난 후, 한 학생은 학교 등교시간이 당겨진다면 본인은 문제가 크다고 했다. 현재도 7시에 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1시간이 당겨지면 6시에 집에서 나와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학교 다니기 너무 힘들 거라고 했다. 본인은 당연히 현행대로 등교하는 데 투표했다는 말도 했다.

되려 사교육 시장만 바빠졌다

6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9시 등교제 폐지 외에도 임태희 교육감은 경기도 교육을 끌어갈 세 가지 키워드로 자율, 균형, 미래를 꼽았다. 이중 '미래'는 AI를 통한 교육이라든가 디지털 기초역량을 강화해 주는 교육으로 새로운 교육의 방향이라고 했다.

코로나를 겪으며 잦은 원격 수업 등으로 인해 디지털 기기는 가정마다 넉넉하다 못해 넘친다. 절반 정도의 학생들은 태블릿은 물론 노트북까지 가지고 등교하는 실정이다. 컴퓨터실에서 수업할 때 메인 서버에서 통제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인터넷의 바다를 마음대로 유영하며 쉽게 교육의 경계를 넘는다.

다른 수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컴퓨터 수업이 아니어도 본인이 소지한 태블릿으로 영상을 몰래(혹은 인터넷 강의를 핑계로 대놓고) 시청한다. 대부분 게임이나 흥미 위주의 짧은 영상이다. 거기에 학교의 디지털 환경(공공 와이파이)은 학생들의 일탈을 돕고 있다. 아이들은 이미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가 문제다.

바뀐 정책들로 인해 오히려 바빠진 것은 사교육 시장이다. 이미 학원가에서는 이른 수업이나 학력평가 부활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킬 것으로 예측하고 대비한다고 한다. 0교시 부활은 물론 전수 학력평가 도입 등으로 대학 입시에서 정시 확대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학원으로 몰리는 학생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권이 바뀌고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학생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본인 공약이 정답인 것처럼 실행한다. 하지만 실상을 모르고 펴는 정책이 많다. 이러한 정책들은 교육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국가와 사회발전의 초석이기에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교육은 학교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해서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흥미와 적성을 살리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가 우선 즐거워야 하고 학생들이 마음껏 자율과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교육의 방향이 또한 요구된다. 말은 신중하고 정책은 밀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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