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에게서 동학ㆍ생명사상 전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38] 가끔 환청이 나타나고 환영에 시달리기도 했다
▲ 최시형 추모비 건립 당시의 장일순 선생최시형 추모비 건립 당시의 장일순 선생 ⓒ 모심과 살림 연구소
그는 긴 세월의 옥고에 지친 심신을 위해 장일순에게 묵란을 배우고,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생명운동ㆍ풀뿌리운동ㆍ구체적인 생활ㆍ문화ㆍ사상운동에 매진하였다. 장일순은 '걸어다니는 동학'이라 일컬을 만큼 동학(최시형)을 연구하고 그 사상의 알짬인 생명사상을 김지하 등에게 전수했다.
우리는 장선생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이 또한 동학과 생명론이었다. 원주 캠프는 겉으로 보아 전혀 다름이 없었고 사회개발위원회 활동도 여전했지만, 내실은 이미 그 중심이 바뀌어버렸다. 차원 변화였다. 따라서 새로운 각비(覺非, 과거의 잘못을 깨달음 또는 바꿈) 새로운 학습(새 차원에의 적응)이 필요한 때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많은 속앓이를 겪어야만 되었다. 괴로웠지만 우리는 테야르 드 샤르댕이나 그레고리 베이트슨 등에게서 우리 자신에 대한 해명을 얻을 수 있었다. 생명이 생명을 설명했다. (주석 7)
김지하의 얼굴에는 지난 8년간의 옥중생활에서 생긴 불안이 서려 있었다. 일어설 때에는 약간 움츠린다. 모든 동작은 감옥에서와 마찬가지로 짧았고 원을 그리고 있다. 팔은 한번도 펴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안쪽으로 모으고, 손은 비밀을 누설하는 듯 아주 예민하게 움직이고 계속 줄담배를 피워 댔다. 건강상태는 좋다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그가 여지껏 치료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주석 8)
가끔 환청이 나타나고 환영에 시달리기도 했다. 유난히 감수성이 강했던 그였다.
그 무렵의 번뇌는 칼을 품고 있었다. 환상의 시작이었을까? 그러기에 천장에서 피로 그린 댓이파리가 춤을 추었던 것 아닌가! 자꾸만 자꾸만 감방 안에 아직도 갇혀 있는 나의 외로움 위에 산천이 무너지고 노을이, 죽음의 노을이 비껴 무슨 해일 같은 것에 휩쓸려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끝없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시달리며 시달리며…….
가네
천장엔
붉은 댓이파리
날카로운 비명 아련히
식은땀 속에 식은땀 속에 사라지는
잠에서 깨어난 오후
문득 일어나 가네
천장엔
붉은 댓이파리
문들 모두 열려 있고 문 두드리는 소리
빈방을 나와 빈 복도를 또 지나 나와
빈 철문 열린 비탈길 내려
저 먼 텅 빈 하늘에 문 두드리는 소리
가네
천장엔
붉은 댓이파리.(하략) (주석 9)
주석
7> <회고록(3)>, 45쪽.
8> 푸미오 다부치, 앞의 책, 87쪽.
9> <회고록(3)>, 58~59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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