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추모하고 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
[중대재해 발생 현장, 변화는 왔는가 ④] 중대재해,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우리의 과제
정현종의 시 <방문객>에 유명한 시구가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떠나는 일 역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꺼번에 닫혀 버리기 때문이다. 막을 수 있었던 재해로 인한 사망이라면 더욱 참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대재해 발생 이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우리의 과제가 너무도 중요하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김용균재단에서는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조형물의 위치와 의미를 소개하는 안내서 <기억을 세운다>를 발간하고 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다음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해당 사건-사고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 사고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기억하는 것, 나아가 사고의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데 필요했던 투쟁까지 기억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각 산재노동자 추모조형물들은 각기 다른 특색과 의미가 있다. 김용균 노동자 추모비나 서지윤 간호사 추모비는 투쟁을 통해 각 사업장 정문 앞에 세워졌다는 의미가 크다. 청주방송 이재학 PD 추모비는 끝내 청주방송이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따로 마련한 장소에 추모비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를 바라며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싸웠던 유족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보게 된다.
권미정 사무처장은 최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서 노조 설립 후 사고로 사망한 473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비를 공장 안에 세운 사례를 들며, "막을 수 있었던 죽음으로 잃은 동료들을 기억하는 행동에 노동조합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조사보고서 작성과 공개
재발 방지를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활동이 중대재해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는 재해 조사다. 재해조사에는 노동자가 참여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규명할 수 있어야 하고, 표면적 원인뿐 아니라 '원인의 원인'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내용을 포함한 중대재해조사보고서가 작성, 공개돼야 한번 발생한 사고가 다른 사고의 예방을 위한 자료로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 경찰과 판검사들만 돌려보고, 유사한 위험이 있는 기업과 노동자, 근로감독관, 안전보건전문가와 연구자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보고서는 재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는 중대재해조사보고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보고서 공개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2019년 2월 현대제철에서 석탄 이송 컨베이어를 보수하던 하청 노동자가 부족한 공구를 가지러 갔다가 옆 라인 컨베이어에서 협착되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재해조사의견서에서는 정상적인 자재 운반 경로를 벗어난 이동, 통행로 조도 미달, 분진 흩날림 및 퇴적으로 인한 작업환경 미확보가 원인이라고 돼 있었다. 노동자들이 왜 정해진 작업 통로로 다니지 못했는지, 조도 등 작업환경 문제가 이전에는 없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후 실시된 '현대제철 당진공장 안전보건진단'에서는 모든 설비가 협력업체가 아닌 원청의 설비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현장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원하청 간 장벽을 중요한 이유로 짚고 있다. 최소한 이런 수준의 재해조사가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는 일, 근본적인 재해 조사에서 시작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강력한 처벌
중대재해 재발 시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에게 처벌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전부터 강조돼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벌을 받아도 또 법을 어기니, 처벌의 효과가 없다. 2017년의 산안법 위반 사범 중, 전과가 있는 피고인의 수가 그렇지 않은 피고인의 수의 3배가 넘었다.(이진국, 2019)
이후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2021년 1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안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 설정 범위를 늘리고 형량도 높였다. 하지만 변화는 아직 크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판례분석>(이진국-양승국, 2021)에 따르면 2021년 7월 양형기준 수정 이전에 비해 벌금형보다 자유형(집행유예 포함) 비중이 높아지긴 했다(47.7% →51.0%). 그러나 산안법 위반사건 벌금의 평균은 양형기준 수정 전 450만 원, 이후 550만 원으로 큰 변화가 없다. 안전보건조치 의무위반 치사죄 성립 시 선고되는 징역형 형량 역시 7개월로 거의 차이가 없다. 벌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액수가 평균 약 593만 원에서 838만 원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처벌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손익찬 변호사는 "영국에서는 2016년 양형 규정 개정 전 10개월간 벌금이 6만 파운드 이상으로 선고된 사건이 30%였으나 개정 후 50%로 크게 증가했다"라며, 영국과 한국의 벌금형 차이는 시사점이 크다고 강조했다. 산안법 위반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처벌 역시 되풀이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시급한 과제다.
단위 사업장에서의 노력
각 사업장에서도 사고 이후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중대재해 발생 이후 노동조합 내 노동안전보건 간부를 늘렸다. 훈련받은 간부들은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직접 조사에 참여하고, 조합원들에게서 재발 방지 대책을 이끌어내며, 회사와 대책 방안 실행으로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이태진 노안부장은 "안전보건 담당 인력이나 예산을 늘리는 등,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회사의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라면서, 이런 상황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 혹은 중대재해가 아니더라도 산재 발생 시, 조사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미리 논의하여 방침을 정해두는 것, 생산량이나 회사 사정 등을 이유로 위험을 무릅쓰도록 하는 작업방식이나 관행을 바꾸는 것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다. 이는 각 단위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들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김용균재단에서는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조형물의 위치와 의미를 소개하는 안내서 <기억을 세운다>를 발간하고 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다음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해당 사건-사고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 사고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기억하는 것, 나아가 사고의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데 필요했던 투쟁까지 기억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각 산재노동자 추모조형물들은 각기 다른 특색과 의미가 있다. 김용균 노동자 추모비나 서지윤 간호사 추모비는 투쟁을 통해 각 사업장 정문 앞에 세워졌다는 의미가 크다. 청주방송 이재학 PD 추모비는 끝내 청주방송이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따로 마련한 장소에 추모비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를 바라며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싸웠던 유족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보게 된다.
권미정 사무처장은 최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서 노조 설립 후 사고로 사망한 473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비를 공장 안에 세운 사례를 들며, "막을 수 있었던 죽음으로 잃은 동료들을 기억하는 행동에 노동조합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 2022.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날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민주노총
제대로 된 중대재해조사보고서 작성과 공개
재발 방지를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활동이 중대재해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는 재해 조사다. 재해조사에는 노동자가 참여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규명할 수 있어야 하고, 표면적 원인뿐 아니라 '원인의 원인'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내용을 포함한 중대재해조사보고서가 작성, 공개돼야 한번 발생한 사고가 다른 사고의 예방을 위한 자료로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 경찰과 판검사들만 돌려보고, 유사한 위험이 있는 기업과 노동자, 근로감독관, 안전보건전문가와 연구자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보고서는 재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는 중대재해조사보고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보고서 공개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2019년 2월 현대제철에서 석탄 이송 컨베이어를 보수하던 하청 노동자가 부족한 공구를 가지러 갔다가 옆 라인 컨베이어에서 협착되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재해조사의견서에서는 정상적인 자재 운반 경로를 벗어난 이동, 통행로 조도 미달, 분진 흩날림 및 퇴적으로 인한 작업환경 미확보가 원인이라고 돼 있었다. 노동자들이 왜 정해진 작업 통로로 다니지 못했는지, 조도 등 작업환경 문제가 이전에는 없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후 실시된 '현대제철 당진공장 안전보건진단'에서는 모든 설비가 협력업체가 아닌 원청의 설비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현장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원하청 간 장벽을 중요한 이유로 짚고 있다. 최소한 이런 수준의 재해조사가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는 일, 근본적인 재해 조사에서 시작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강력한 처벌
중대재해 재발 시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에게 처벌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전부터 강조돼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벌을 받아도 또 법을 어기니, 처벌의 효과가 없다. 2017년의 산안법 위반 사범 중, 전과가 있는 피고인의 수가 그렇지 않은 피고인의 수의 3배가 넘었다.(이진국, 2019)
이후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2021년 1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안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 설정 범위를 늘리고 형량도 높였다. 하지만 변화는 아직 크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판례분석>(이진국-양승국, 2021)에 따르면 2021년 7월 양형기준 수정 이전에 비해 벌금형보다 자유형(집행유예 포함) 비중이 높아지긴 했다(47.7% →51.0%). 그러나 산안법 위반사건 벌금의 평균은 양형기준 수정 전 450만 원, 이후 550만 원으로 큰 변화가 없다. 안전보건조치 의무위반 치사죄 성립 시 선고되는 징역형 형량 역시 7개월로 거의 차이가 없다. 벌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액수가 평균 약 593만 원에서 838만 원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처벌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손익찬 변호사는 "영국에서는 2016년 양형 규정 개정 전 10개월간 벌금이 6만 파운드 이상으로 선고된 사건이 30%였으나 개정 후 50%로 크게 증가했다"라며, 영국과 한국의 벌금형 차이는 시사점이 크다고 강조했다. 산안법 위반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처벌 역시 되풀이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시급한 과제다.
단위 사업장에서의 노력
각 사업장에서도 사고 이후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중대재해 발생 이후 노동조합 내 노동안전보건 간부를 늘렸다. 훈련받은 간부들은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직접 조사에 참여하고, 조합원들에게서 재발 방지 대책을 이끌어내며, 회사와 대책 방안 실행으로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이태진 노안부장은 "안전보건 담당 인력이나 예산을 늘리는 등,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회사의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라면서, 이런 상황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 혹은 중대재해가 아니더라도 산재 발생 시, 조사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미리 논의하여 방침을 정해두는 것, 생산량이나 회사 사정 등을 이유로 위험을 무릅쓰도록 하는 작업방식이나 관행을 바꾸는 것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다. 이는 각 단위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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