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주 한달살기' 결정한 초6학년 엄마의 고민
아이와 제주도에서 여름방학 보내기, 덜 후회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 오는 여름방학, 이번 방학을 제주에서 아이들과 보내면 좋겠다 싶었다. 사진은 제주 섭지코지 방두포등대 및 선돌바위 주변 풍경(자료사진). ⓒ 한정환
곧 아이들 여름방학이다. 이번 방학에는 아이들과 뭘 하며 보낼까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제주도에 사는 지인이, 옆집에서 3개월 동안 집을 비우게 되어서 대신 있을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다. 지난 5월 말 가족여행으로 갔다가,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도 나도 좋았기에 안 그래도 또 가고 싶던 차였다.
옳거니, 이번 여름 방학을 제주에서 보내면 좋겠다 싶어 그 집을 쓰기로 했다. 이런저런 일정을 조율해 8월 초에서 9월 초까지 시간이 생겼다. 방학에만 있기는 아쉬워 학교에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개학 이후에도 2주간 더 있기로 했다. 문제는 6학년인 큰아이 선생님에게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는 일. 비행기와 숙소 예약, 아이들과 의논은 다 마쳐놓고도, 그 일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사교육은 뭘 시키고 계신가요"... 놀이와 교육, 그 사이 어딘가
▲ 교실 ⓒ 픽사베이
"어머님은 아이 사교육으로 뭘 시키고 있나요?"
"본인이 하고 싶어 해서, 유도를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또요?"
"다른 건 없는데요..."
"아, 사교육 안 하는 것 치고는 아이가 공부를 잘 하네요. 그래도 어머님, 아이가 나중에 공부로 하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려면 늦어도 여름방학부터는 공부를 시작해야 해요. 영어나 수학 같은 공부 있잖아요. 안 그러면 혹시 나중에, 어머님께서 '그때 시켰어야 하는데'하고 후회를 하게 되실 수 있거든요."
나는 아이가 집에서 책도 읽고 문제집도 풀면서 나름 공부를 하고 있다고, 이런저런 옹색한 변명을 주절이다가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아이 교육에 무관심한 엄마가 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많이 뛰어놀면 스스로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저학년일 때는 그런 모습을 보면 기뻤다. 초등학교 6학년인 지금도 아이는 스스로 재미있는 것들을 잘 찾지만, 나는 전처럼 마냥 기쁘지는 않다.
겉으론 괜찮은 척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싶고, 실은 학교에서 성적도 잘 받아왔으면 좋겠다. 같이 놀던 다른 아이들이 공인 영어시험을 준비 중이라 하고, (초6인데도) 벌써 중1 수학 과정을 마쳤다는 말이라도 들은 날엔,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낄낄거리는 아이에게 '잔소리 폭탄'을 날리게 되고 만다.
지난해, 5학년이던 아이는 일주일에 이틀만 학교에 갔다. 학교에 다녀온 어느 날, 온라인 수업만 해도 되는 걸 왜 학교에 이틀씩이나 나가야 하느냐면서 아예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까지 선언했다. 이성적으로야 '그래, 삶에는 다양한 길이 있단다. 엄마는 언제나 너를 응원해'라고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입에서는 이미 "넌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들처럼 매일 학원에 다니라며 아이를 윽박질렀다.
그날, 운동을 간다며 오후 4시쯤 집을 나선 아이는 밤 9시가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깜깜한 밤 아이를 찾아 동네 골목골목 헤매면서, 엄마가 잘못했으니 제발 돌아오라는 마음만 간절해졌다.
밤 10시가 넘어 돌아온 아이는, 뭔가를 오래 생각한 듯 결심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엄마, 내가 집에 늦도록 안 들어온 건 내가 잘못 했어. 그런데 엄마가 날 좀 믿어주면 좋겠어. 나도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나는 아이에게 사과하면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뒤처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 그럼에도 매일 마주하는 현실
아이와 관계를 해칠까 두려워 아이가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키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이게 맞는지 확신이 없다. 머릿속에서는 공부는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내 아이가 정말 공부를 안 해도 미래에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건 또 잘 모르겠다. 남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뒤처진 건 아닐까? 이러다 돌이킬 수 없으면 어쩌나, 억지로라도 시키는 게 옳을까? 그렇게 수시로 걱정한다.
가끔 내 상상속 아이 미래는 너무나 어두워 보여서, 한 번씩 그 암흑에 압도당하고 마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질 뿐이라는 걸, 매번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에야 깨닫는다.
깨달음은 깨달음일 뿐,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바뀐 것이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튀어나올 때, 의식적으로 멈추려고 애쓴다는 것 정도. 선생님과 상담 이후에도 잔소리가 자꾸 나오려 근질거리는 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엄마가 선생님하고 상담했는데, 여름방학에는 너 공부시키라고 하시던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싫은데!"
"다른 아이들은 다 공부하고 있대. 너만 안 하고 있다고, 나중에 중학교 가서 하면 늦을 거라고 하시던데?"
"다른 애들이 불쌍한 거야. 학교에서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도 충분히 힘들다고. 근데 학원까지 어떻게 가. 나는 안 가!"
단호한 아이의 말에 갑자기 속이 답답해진다. 잠깐 창가로 가서 바깥 공기를 쐬려는데, 아이가 종이접기로 만들어 책장에 전시해 놓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수백 개의 종이 블록을 접고 이어 붙이고, 로봇 다리의 비율을 맞추려다 잘 안 되어서 짜증을 내고, 다시 시도하고, 밤이 늦어도 잠을 못 자며 종이를 바꿔보고, 그런 과정을 거치던 모습이 가만히 떠오른다. 그제야 아이의 삶에 국영수 공부 말고도 다양한 경험이 가득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넘치고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 아이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드러나는 종이접기(자료사진). ⓒ elements.envato
후회는 기본값... 지금의 값진 시간을 미리 포기하지는 말자
여기까지 생각을 정돈하고 보니 문득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에게 '늦었다'는 건 뭘까,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공부 할 때를 놓쳐 후회한다'는 건 어떤 걸까. 살면서 어느 정도 후회는 다 하고 사는 거 아닌가. '어제 야식 먹지 말고 일찍 잘걸'하는 사소한 후회부터, '그때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말았어야 하는데' 같이 삶의 방향을 바꾼 후회까지.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된 것을 종종 후회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불행한 건 아니었다. 후회하면서도 삶은 이어졌다.
경험상 그때 그렇게 하지 말 걸 하는 후회보다 '그때 그렇게 할 걸'하는 후회가 돌이키기 더 어려웠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어 외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드리지 못했던 후회, 그런 후회는 돌이킬 수조차 없다.
아이와 여름방학에 제주도에 가서 '놀기'를 선택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와 이야기를 더 많이 할 걸, 아이와 더 많이 놀 걸, 하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오늘 밤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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