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우려된다던 그 축제 가보니, 한여름 꽁꽁싸맨 참가자들
[현장]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진행한 퀴어문화축제... "21세기에 성소수자 차별이라니"
▲ 16일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개최되었다. 예수님 복장에 십자가를 가져온 참가자도, 서울시의 과다노출 기준에 반발해 한여름에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참여한 참가자도 있었다. ⓒ 박성우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6일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개최되었다. 날씨는 흐렸고 가끔씩 빗방울도 흩뿌렸지만,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고 계속 모여들었다. 축제가 열리는 광장 바깥편에는 "동성애는 죄악, 회개하라"는 등 반대자들이 맞불 집회를 열었지만, 미국·영국 대사 등 전세계 대사들의 성소수자 지지 발언이 이어졌다(관련 기사: "혐오 실패, 사랑 승리" 3년 만에 꽉 찬 서울광장 '퀴퍼').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총 72개의 부스가 운영되었다. 부스마다 판매하는 굿즈를 구하기 위한 줄들이 길게 늘어섰다. 주한미국대사관을 포함해 캐나다·네덜란드·스페인·아일랜드·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뉴질랜드·호주·독일·프랑스·영국 등 13개국 대사관이 부스로 참여했다. 주한유럽연합(EU)대표부도 부스에 참여했다.
▲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지몽 스님이 법고를 두드리고 있다. ⓒ 박성우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지몽 스님은 "감회가 새롭다"며 "2017년부터 매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며 시민들 인식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오프라인 행사가 멈춰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3년 만에 다시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몽 스님은 "한국사회는 아직 성소수자들이 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천주교 부스에서는 수녀들이 무지개색 팔찌를 나눠줬고, 예수님 복장를 하고 십자가를 지닌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언급한 '과다노출 기준'에 반발해 한여름에 온몸을 꽁꽁 싸맨 채 참여한 참가자도 있었다. 해당 참가자는 지난 9일 오 시장이 "신체 과다노출 현상이 벌어진다면 내년 이후에는 서울광장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한 <국민일보> 인터뷰 보도물과 지난 8일 보도된 과다노출 기준인 '눈살 찌푸림'이라는 <한겨레> 보도를 프린트한 종이로 전신을 감싼 옷을 만들었다(관련 기사: 오슬로시장과 서울시장의 '차이'... 부끄러움은 누구 몫인가).
한편 종교계 역시 부스를 운영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무지개예수, 성공회 무지개 네트워크, 천주교 인권연대연구센터 등 불교·개신교·성공회·천주교에서 각각 부스를 운영하며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는데 목소리를 모았다.
맞불 집회 '혐오발언'... "가시화의 불씨로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이들도 서울광장 근처 곳곳에서 맞불집회를 벌였다.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죄악"이라는 이들부터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들의 축제를 열자", "동성애 축제 허용한 오세훈 물러가라"는 이들도 있었다. 애국가나 군가를 크게 틀기도 했다. ⓒ 박성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이들도 서울광장 인근 곳곳에서 맞불집회를 벌였다.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죄악"이라는 혐오발언을 일삼는 이들부터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들의 축제를 열자", "동성애 축제 허용한 오세훈 물러가라"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애국가나 군가를 크게 틀기도 했다.
대안학교인성미산학교의 성소수자 인권 모임 '무운'의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이 서로 소통할 장이 필요하던 차에, 3년 만에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오프라인으로 열려 다행"이라며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는 아직 가시화가 덜 됐다. 혐오세력의 억압·차별은 항상 있어왔기에 사실 덤덤하다. 혐오세력 역시 성소수자 문제 가시화의 불씨라고 긍정적으로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연대 발언과 무대가 이어졌다. 먼저 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은 "2022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우울한 메시지가 아니라 각자가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담은 메시지다. 세상이 우리를 죄라고 해도 우리는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며 무대를 열었다.
이후 연대발언과 무대 공연이 이어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생화센터협의회장은 "나치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또한 학살했다"며 "인권은 누구나 평등하다. 장애인과 성소수자, 여성의 인권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함께 학살당했던 과거의 동지에서 권리를 찾아가는 동리로 나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수 미미시스터즈는 공연 이후 "퀴어 당사자들이 오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했지만, 제가 앨라이(연대자)로서 여러분과 연대한다는 걸 확인시켜드리고 싶었다"며 "(바깥쪽에서) 애국가 부르는 삐뚤어진 신념과 혐오로 가득한 분들이 너무 안타깝다"고 반대 집회 행사를 비판했다.
"21세기에 성소수자 차별이라니" 연단 오른 대사들, 배우자와 동석도
▲ 주한 미국 대사 최초의 성소수자인 필립 골드버그 대사는 취임 후 첫 대외 행보로 서울퀴어문화축제 연설을 택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한국에 이번 주 막 도착했지만 이 행사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며 "미국은 인권을 위해 계속해 싸울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 박성우
한편 부스를 설치한 국가 중 스페인과 프랑스를 제외한 11개국의 대사들도 연단에 올랐다. 일부 대사들은 손을 흔들며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외교관 모임'이라 적힌 무지개색 플래카드를 함께 들어 올렸다.
제일 먼저 발언한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동성 배우자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터너 대사는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하며 여기엔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 포함된다. 이게 제가 뉴질랜드인으로서 중시하는 가치다"라고 말했다.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얘기했다. 그는 "성 지향이나 성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은 21세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니엘 볼벤 주한 스웨덴 대사 또한 한국어로 "참가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뒤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라며 축제의 슬로건을 한국어로 외쳤다.
일부 대사들은 서울광장 외부의 반대 집회를 겨냥하기도 했다. 줄리안 클레어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서울광장) 밖의 사람들은 큰 소리를 내지만, 우리는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지 않느냐"며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말했다. 마크 플레처 주한 캐나다 대사도 "밖에 있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인권은 그 누구도 배제하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 인권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인권을 향한 어떠한 혐오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발언은 이번에 새로 취임한 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사가 맡았다. 주한 미국 대사 최초의 성소수자로 알려진 그는 취임 후 첫 대외 행보로 서울퀴어문화축제 연설을 택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한국은 이번주에 막 도착했지만, 이 행사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다"며 "미국은 인권을 위해 계속해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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