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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난민과 함께 사는 영국인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

[인터뷰] 지난 5월부터 난민에게 집 제공, 함께 지내는 영국인 에반씨 이야기

등록|2022.07.19 15:10 수정|2024.09.15 14:49

▲ 인터뷰가 끝난 뒤 마당에서 찍은 단체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우크라이나 모녀인 나탈리아, 크시나와 영국인 부부인 에반, 웬디. ⓒ 김성수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현재까지 약 1200만 명의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생긴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 정부는 지난 6월 28일까지 이들 중 약 14만 2500명에게 난민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6월 27일 기준, 그 중 8만 6600명은 현재 영국에 피난민으로 입국해 살고있다. 영국인구가 약 6700만 명 정도이니 영국인구 1천 명 당 현재 약 1.2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영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영국 중부 지방에 살고 있으며, 이 마을의 인구는 약 2만 5천명으로, 한국으로 치면 하나의 '읍' 정도에 해당 할 것이다. 7월 5일 기준, 내가 사는 동네에는 총 228명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살고 있다.

기자의 지인 중에도 자기 집에 우크라이나 난민을 초청해서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 중 한 명인 에반씨에게 요즘 그가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다. 다음은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18일까지 기자의 이웃인 에반씨와 수차례 만나면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뉴스 보고 큰 충격... 영국 정부가 난민 받을 가정 모집했을 때 당장 지원했다"

▲ 지난 5월부터 우크라이나 난민을 초청해 함께 지내고 있는 에반씨. 그는 "(함께 사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 김성수

- 먼저 에반씨와 가족에 대해 소개 좀 부탁한다.

"나는 올해 58세로 아내 웬디와는 결혼 35년차다. 아들 둘은 독립해 런던에서 살고 있다. 이 마을에 산 지는 20년이 되었다. 나는 과거에 IBM 시스템 엔지니어로 15년간 일을 했고 그 후 프리랜서로 일했다. 2년 전 작은 아들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나도 은퇴했다. 그 후 우리 마을 자선단체를 위해 자원봉사로 운전기사를 하고 있다."

- 어떤 사연으로 우크라이나 난민을 집에 받아들이게 됐나.

"러시아의 침공으로 몇 백 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졸지에 피난민이 된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처음엔 큰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졌다. 그러던 중 영국정부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을 가정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했을 때 그걸 본 아내와 나는 당장 지원했다. 마침 아이들이 독립해 집에 빈 방이 있었고 나도 은퇴한 뒤라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 생각했다."

- 현재 집에 머무르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어떤 분들인지? 나이와 직업은, 이 분들이 댁에는 언제,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

"우리 집에는 우크라이나 난민모녀가 살고 있다. 엄마 나탈리아는 46세 딸 크시나는 16세다. 나탈리아 남편이자 크시나의 아빠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

처음에 영국정부의 안내에 따라 인터넷(Host4Ukraine.com)에 내가 직접 영어로 광고를 했다. 우리 집에 빈방이 몇 개 있고, 몇 명의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명시했다. 광고를 낸 뒤 5분 만에 난민 다섯 분이 신청했고, 1시간 후 난민 열다섯 분이 신청했다. 신청한 분들 중에 두 분만 선정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선착순으로 나탈리아와 크시나 모녀를 선정했다. 다행히도 이 모녀분들과 호흡이 잘 맞아서 잘 지내고 있다.

전쟁 전 나탈리아는 우크라이나 한 회사 메니저로 근무했었고 크시나는 학생이었다. 이 분들이 살던 곳은 우크라이나의 크리비리크(Kryvyi Rih)라는 곳으로, 전쟁초기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다. 그래서 이 모녀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먼저 폴란드로 피난을 갔고, 그 뒤 영국으로 오는 난민비자를 신청해 5주 후에 비자를 받았다. 지난 5월 1일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지금까지 우리 집에 머무르고 있다."

▲ 호스트 포 우크라이나(Host4Ukraine.com)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원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지난 2월26일 시작됐다. 숙박시설 또는 일자리, 물품 등을 지원할 수 있게 돼 있다. 사이트 첫화면 갈무리. ⓒ Host4Ukraine.com

- 구체적으로 이분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우리는 최소 6개월에서 길면 1년 간 이분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준다. 그동안 영국 정부는 이분들이 거주할 임대주택을 마련할 것이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각각 욕실이 달린 침실을 제공하고, 부엌과 다른 시설들은 우리 부부와 함께 사용한다.

처음 한 달이 가장 바빴는데, 왜냐면 이분들에게 영국의 다양한 복지와 의료제도를 이용하고 신청하는 방법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또 여러 회의에 함께 동행해 안내해 주었다. 우리 마을에 200여명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있는데 1주일에 한 번씩 함께 만나서 회포도 풀고 소식도 주고받는 모임을 알려드렸다. 그 외에도 비자연장을 위한 이민행정, 쇼핑안내 등 향후 실생활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여러 부분을 안내했다.

또한 나탈리아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 영어과정에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딸 크시나가 동네 학교에 취학등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크라 모녀, 직장과 학교 다니며 잘 정착 중... 비용은 영국 정부가 지원"

- 나탈리아와 크시나의 하루, 일주, 한 달 일정은 보통 어떤지 궁금하다.

"다행히 나탈리아는 우리 동네 한 식당에서 직장을 구했고, 현재 1주일에 5~6일을 일한다. 크시나는 한 달 전 동네학교에 입학했고 지금은 학교가 여름방학이라 집에서 쉬고 있다. 그 전까지 크시나는 원격으로 우크라이나 학교과정을 우리 집에서 공부했다. 크시나는 여름방학동안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고, 동네 테니스 클럽에도 가입했다.

크시나는 엄마를 위해 쇼핑을 하고 나탈리아는 딸을 위해 요리를 한다. 보통 식사는 우리와 따로 하는데 가끔은 함께 한다. 우리가 요리 할 때는 나탈리아와 크시나에게 영국음식을 대접하고 그들이 요리할 때는 우리에게 우크라이나 음식을 대접한다.

이외에도 나탈리아는 온라인으로 전에 일하던 우크라이나 직장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전망은 어둡다고 했다."

-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에서는 어떤 지원과 도움을 주고 있는지?

"먼저 정부에서 난민 1인당 1만 700 파운드(한화 약 1700만 원)를 지원해 준다. 그 외에도 난민들은 영국인들과 똑같은 사회복지혜택(실업수당, 의료비, 아동수당, 교육비 등)을 받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 부부는 한 달에 350파운드(약 55만원)를 최대 1년까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 이 분들이 얼마동안 댁이나 영국에서 머무를 것인가.

"물론 최소 6개월은 우리 집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 후에 대해서는 아직 서로 논의해보지 않았다."

- 난민들과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면서 느끼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사소한 것이지만, 부엌과 냉장고를 함께 사용하니 우리 부부만 살던 때와 비교해 냉장고 용량이 많이 부족하다. 또 식기도 부족해서 가급적 요리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게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우리 부부가 미리 각오하고 염두에 두었기에, 앞에서도 말했듯 이런 건 그저 사소한 불편일 뿐이다."

- 이분들이 우크라이나에 계신 분들, 영국 혹은 우리 마을에 있는 다른 우크라이나 분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는지?

"우크라이나에서도 여전히 인터넷이 가능해서 온라인으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친인척들과 접촉하고 지낸다. 종종 인터넷으로 통화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탈리아 남편이자 크시나의 아빠는 아직도 우크라이나에서 일하고 있다. 남편이 나이가 많아서 현역 군인은 아니고 후방에서 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나탈리아는 지금도 온라인 시간제로 우크라이나 회사와 일하고 있다.

크시나는 영국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외에도 온라인으로 우크라이나 학교 공부도 하고 있고 친구들과 온라인 대화도 한다.

한편 우리 동네에는 200여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있는데 이분들이 종종 만난다. 마을의 한 교회는 매주 토요일 아침에 이 분들에게 커피와 다과를 제공해주며 만남의 장소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난민들끼리 서로 집에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하고 회포를 풀기도 한다. 이 외에도 우리 동네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텔레그램 그룹이 있어서 서로 온라인으로 소통을 한다."

- 난민들을 댁에 받아들인 후 삶이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 삶이 많이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우리는 나탈리아와 크시나에게 가능한 편하게 대해 주고자 한다. 이 분들을 통해 우리 부부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문화, 전통, 관습을 많이 배웠다. 또 우리는 영국인들이 우크라이나인들보다 식욕이 많다고 느꼈다(웃음). 이분들이 영국에 차차 정착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우크라 모녀 "친절한 영국인들... 그래도 장래가 불투명한 게 두렵다"

우크라이나 모녀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아래는 기자가 나탈리아(엄마)와 크시나(딸)에게 직접 물어본 질문이다.

- 영국과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지?

모녀 : "영국인들은 아주 친절하고 길에서 만난 낮선 사람들과도 대화를 잘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 우크라이나인들은 훨씬 무뚝뚝한 것 같다."

나탈리아(엄마): "영국 음식은 우크라이나 음식에 비해 너무 싱겁고 밋밋하다. 우크라이나 음식은 냄새와 맛이 아주 강한 편이다. 이 동네에 와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처음 샀을 때, 냄새가 너무 나지 않아서 '이게 돼지고기 맞나?'하고 의구심을 가질 정도 였다. 영국음식은 우크라이나 음식과 비교해 포장이나 밀봉이 아주 많이 되어있다."

- 타향인 영국에 살면서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은 무엇인지?

크시나(딸) : "물질적으로는 편하지만, 엄마와 나는 요즘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다. 장래가 불투명한 것이 두렵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아빠와 친척들이 너무 그립기도 하다. 엄마와 나는 요즘 만성 신경쇠약증에 걸린 것 같다."

딸과 달리 엄마인 나탈리아는 기자의 이 질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렸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의 원고료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전액 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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