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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청계천 여공이 있다면, 현재엔 콜센터 노동자가 있다

웃으며 눈물, “전화기로 미싱하는” 이들... 콜센터 상담사로 본 여성노동의 현 주소

등록|2022.07.21 11:57 수정|2022.07.21 11:58
콜센터 상담사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21년 4월, 공단이 한 유명 광고인과 함께 만든 포스터를 공개하며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고객의 폭언 등으로 상처를 받아도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 노동자의 아픔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고 알렸다. "슬퍼도 웃어야 하는 사람들", "위험! 마음 다침 주의!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들을 보자.
 

▲ 안전보건공단에서 마련한 감정노동 관련 캠페인 포스터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어쩐지 서정적으로 보이는 이 문구들은 공단의 자화자찬과는 별개로 조금 진부하게 느껴진다. 한편 친구를 만날 때도, 가족을 만날 때도,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도, 예의 '사회적 웃음'이란 것을 지어야 하는 모든 상황에 사람들은 '나도 감정노동을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며 볼멘소리 하는 와중에 콜센터 상담사와 감정노동 이야기를 하는 건 "이미 다 푼 문제집"(책 <사람입니다, 고객님(창비, 2022)>) 같을지도 모르겠다. 정답이 오래 전에 나와 버린, 다 알고 있어서 더 새롭게 들여다 볼 필요가 없는 문제 말이다.

콜센터 여성 노동자, 흡연율이 유독 높았다... 이유는

지난 7월 13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건강권팀은 <사람입니다, 고객님> 저자인 김관욱 교수(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를 초청하여 "콜센터 상담사를 통해 본 여성 노동의 현주소"라는 제목으로 7월 월례 토론을 열었다. 미리부터 말하자면 콜센터 상담사와 그들의 노동조건은 정답 란에 '감정노동'을 써넣은 "다 푼 문제집"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를 해당 책이 설명하고 있다. 아래에서의 인용 문구는 모두 저자의 발표 자료 및 책에서 따온 것이다.

저자가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국내 성인 여성 흡연율인 6.2%(국민건강영양조사, 2013)와 비교해 크게 높은 콜센터 여성 노동자의 흡연율 때문이었다(서울시 울산대 산학협력단(2012)은 37%, 금천구청(2013)은 26%, 한국노동사회연구소(2014)는 18.9%로 파악했다). 아니라곤 하지만 흡연 여성이 여전히 백안시되곤 하는 한국에서, 콜센터 상담사들의 흡연율은 유독 왜 이리 높은 것일까? 저자는 콜센터들이 밀집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아파트형 공장들에 주목해 현장 연구를 시작한다.

이 디지털 산업단지는 196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 지역 수출산업단지였던 구로공단이 1990년 후반에 들어 이름을 바꾼 곳이었다. 저자는 구로공단 50주년 행사가 진행되던 당시 "50년 전에는 공순이 인생, 50년 후에는 비정규 인생"이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던, 과거 자신이 여공이었다고 말하는 노동자를 만난다.

그리고 과거 여공들이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쌓아두고 먹이던 업주 밑에서 쉬지 않고 일했다면, 지금은 전국 어디에도 없는 2m 짜리 재떨이와 야외 테라스 흡연실을 갖춘 공장형 콜센터에서 하루 113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0분의 휴식 시간(점심시간 제외) 대신 2분 안팎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일하고 있다고 보았다. 저자가 만난 한 노동자는 친절하고 정확하고 신속하게 많은 콜 수를 채워야 하는 자신의 노동 조건이 부과하는 심리적 압박감과 신체적 피로에 대해 "전화기로 미싱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각성제 먹으며 버티던 여공들, 현재엔 친절노동 부담 받는 콜센터 노동자들 
 

▲ 지난 5월 1일 '멈춰! 반노동 엎어! 불평등 - 2022세계노동절 대회'가 서울광장 부근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집회에 참석한 콜센터 노동자들이 ‘콜센터 상담사들을 존중해주세요’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보장하라’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가는 지나친 관리와 통제 중단하라’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강연에서 주목되었던 것은 "총체적 노동 통제의 현장"으로서 콜센터였다. 화장실 이용 모니터링, 콜 실적 인센티브 경쟁, 전자감시, 자동 콜 분배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세세한 노동통제는 콜센터가 "감정 이상의 노동현장"임을 말해 준다. 콜센터는 그저 "슬퍼도 웃어야 하는" 것을 넘어 신체 활동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의 몸을 통제 및 관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두통, 만성피로, 수면장애, 청력장애, 위장장애, 방광염, 피부질환, 근골격계 통증, 안면마비, 공황장애를 앓고 있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한 콜센터의 노동실태 조사에서는 설문에 참여한 790명의 노동자 중 80%가 입사 후 새롭게 생기거나 악화한 질병이 있다고 응답했고, 이들에게 생긴 질병은 50%가 근골격계 질환, 30%가 청력장애, 방광염, 20%가 공황장애 등 정신과 문제였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어깨 결림과 손목 통증은 상담사에게 "일종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러한 통증 없이는 노동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처럼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대안 찾기, 화장실 손들기-팔뚝질 손들기-몸 펴는 손들기

그러나 월례 토론에서는 상담사들의 고된 노동환경을 조명하는 데서만 그치지 않았다. 저자는 상담사들이 행했던 세 번의 손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 번째는 상담사를 세세하게 통제하는 콜센터의 억압 속에서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손을 들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손 들기다. 두 번째는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모인 노동자들이 드는 손(팔뚝질)이다. 세 번째는 몸 펴기 운동을 하며 노동과 노조 활동을 하며 지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손 들기다.

모욕적인 손들기는 저항의 손 들기를 거쳐 일상에서 자기 몸을 펴는 손 들기로 변화했다. 이때 펴는 몸은 더 이상 노동 통제를 당하는 억압 속의 몸이 아닌, 일상에서 서로를 돌보면서도 한편으로 새로운 저항의 지지대가 되는 몸이 된다.

강연 이후 이어진 토론과 질의응답 시간에 참여자들은 콜센터 상담사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의 전반적 특성과 연결 지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한 참여자는 콜센터 노동환경과 유사하게 계속해서 양산되는 하청구조로 인해 열악해지는 조선 노동자의 근무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참여자들은 콜센터 상담사 외에도 돌봄 노동, 청소 노동 등 여성이 다수 종사하고, 모두 숙련이 필요한 일들이자 대체가 어려운 일들이지만 그 노동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하청업체에서 장기근속하며 원청의 정규직 상담사보다 더 많은 내용을 숙지한 상담사들조차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을 때 이들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시험도 안 보고 떼를 쓴다'고 치부하는 경향에는 이들의 노동이 여성이 하는, 그저 '슬프지만 웃으면 되는', 미숙련의, 배터리처럼 쓰고 버릴 수 있는 감정노동이라는 폄하가 자리해 있다고 보았다.

이에 저자는 3분 이내로 업무에 대해 육하원칙으로 후처리, 1분 30초 안에 입력을 완료한 후 다음 콜을 받아야 하는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을 수행하는 콜센터 상담사를 칭하는 말이 과연 '감정노동자'가 적절한지, '정보노동자' 혹은 '전자노동자'가 더 적절한 명칭이 아닌지 제안했다.

참여자들은 상담사뿐만 아니라 모두의 손 들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노동자 건강권을 고려한 상담사 평가지표의 설계 방향에 대한 질문에서 강연자는 '적정 콜'을 핵심으로 꼽았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 노동'인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아직 노동자보다는 고용주의 것에 머무는 현실이 크지만, 여기에 더 많은 노동자의 목소리가 필요함을 모두가 공감했다.

상담사 건강 상태에 대한 집단산재 신청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손상이 아니면 업무 관련성을 입증받기 어려운 산재 인정 체계와 여러 요인 중 명확한 인과관계를 단언할 수 없는 의학의 본질적 한계 속에서, 결국 여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오갔다. 이는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데서도 마찬가지다.

본 월례 토론의 말미에서 저자는 영국의 여성주의 노동연구자 어슬러 휴즈의 말을 빌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상품 제조나 새로운 서비스 제공을 위해 언제나 가장 싸고 유순한 노동력을 찾아왔고 그렇게 창출된 새 일자리를 여성들이 채워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한 일자리들은 과거에는 가정 내 '여성의 일'로 여겨지던 일이라는 것도 함께 말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면, 그 값싸고 유순한 노동력들은 또한 항상 저항하는 취지의 '손 들기'를 해왔다는 점이다. '밥꽃양'의 조리 노동자, 기륭전자의 전자산업 노동자, 이랜드의 마트 계산원,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코레일 승무노동자, 톨게이트 노동자, 청소노동자, 파리바게트 제빵사, 그리고 콜센터 상담사들까지… 그 외에도 수많은 '값싸고 유순한' 노동력들의 "지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강연이었다.

여성노동건강권 월례토론회는 매달 1회 열린다. 다음 토론은 9월에 예정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류한소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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