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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를 읽는 아침] 이문재 시인의 시 '물휴지'

등록|2022.07.24 16:11 수정|2022.07.24 16:11
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물휴지

- 이문재

물휴지 뚜껑을 열었더니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엄마에게도
주말이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엄마에게 어디 주말뿐이랴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 <혼자의 넓이>, 창비, 2021년, 24쪽


평일 아침은 다섯 시 삼십 분쯤 일어납니다.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출근하는 아내에게 인사를 한 뒤, 클럽하우스에서 방을 열어 여섯 시 삼십 분부터 삼십 분간 시를 읽습니다. 10여 명의 독자와 함께 합니다. 그리곤 아침을 준비합니다. 세탁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말리고 딸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이고 출근합니다. 제 직장은 가깝고 아내의 직장은 멀어서 평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입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비슷한 일상입니다. 딸들이 쌓아놓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저녁 준비를 합니다. 딸들과 함께 저녁까지 먹고 나면 7시가 조금 넘습니다. 아내가 퇴근해 집에 돌아올 시간입니다. 아내 저녁을 차려주고 잠깐 앉아 있다가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일곱 시 삽 십분, 이제부터 두 시간가량 제 시간입니다. 보통의 제 일상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집안일에 열심을 낸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부엌에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신 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맞벌이하는 아내 혼자 집안일을 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 이문재 시인의 시집 ⓒ 창비


제가 집안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7년 육아휴직을 하면서부터입니다. 막내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1년간의 육아휴직을 결심했습니다. 큰딸과 둘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한 직장에서 세 번의 육아휴직은 무리였습니다. 막내만큼은 제가 돌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그 이전까지는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은 없었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말리는 선배들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은 지금도 익숙하지 않은데 제가 육아휴직을 결심했던 2016년은 어떠했을까요. 저에게는 직장에서의 승승장구보다 더 중요한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단순하지만 참 많았습니다. 초등 1학년 아이까지 돌봐야 하니 쉬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건조기도 없었으니, 깔끔 떠는 딸들이 벗어놓는 옷이며 우리 부부의 옷까지 많게는 하루에 두세 번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막내딸은 하교 이후 몇 시간씩 운동장에서 놀다가 인근 아파트 놀이터로 이동해서 또 놀았습니다. 땀과 열기로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아이를 지켜보는 일이 기쁜 일이었기에 가능했지만, 밖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해야 할 집안일이 쌓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7년 3월부터 복직을 한 2018년 1월까지 10개월 집안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육아휴직 이후 가사노동의 70% 정도는 제 일이 되었습니다. 육아휴직이 아니어도 제가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내의 직장은 멀고 제 직장은 가깝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하는 아내에게 집안일까지 고스란히 맡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어떠할까요. 지난 4월 여성가족부는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를 발표했습니다. 2016년 조사 결과보다는 전통적 고정관념은 완화되었지만, 가사·돌봄의 책임은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60% 이상, 주로 아내가 가사와 돌봄을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아직까지 전통적인 가족관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엄마에게도 주말이 있으면 좋겠다고.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평일이나 주말이나 해야 하는 일은 같기 때문입니다. 맞벌이여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일에는 회사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했다면, 주말에는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습니다.

의자에게도 의자가
소파에게도 소파가
침대에게도 침대가
필요하다

이영광 시인의 시  '휴식' 중에서


시를 읽으니 제 군대 생활도 생각납니다. 저는 1992년 11월~1995년 5월까지 31개월 동안 공군 사병으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맡은 보직은 급양 보급이었습니다. 모든 급양 보급병이 식당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급양 보급병은 '취사병'으로 근무합니다. 공군사병이 꺼리는 보직이 몇 개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취사병입니다. 취사병을 왜 꺼릴까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쉬는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밥을 해야 합니다. 엄마처럼요.

제가 제일 맛있어하는 밥은,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입니다. 맛이 없어도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이 좋습니다. 왜, 내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이 맛있을까요. 가사노동에 지친 엄마들은 그 까닭을 잘 압니다.

이런 얘기도 듣습니다. 딸들에게 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동감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일을 시킵니다. 그러나 딸들이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느라 바쁩니다. 시키면 하기는 하는데, 누구일이 더 많으니 자매들끼리 투덕거리기 일쑤입니다. 결정적으로 제 마음도 안쓰럽습니다. 독립해서 혼자 살면 자연스럽게 할 일, 집에서부터 힘들일 시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도 그러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딸들도 언젠가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서 살아보면 자연스럽게 알 것입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을요. 아니,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가정과 사회에서 성평등이 이뤄졌다는 말일 테니까요.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문재 시인은

1982년 동인지 『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등이 있으며 산문집 『내가 만난 시오 시인』 등이 있습니다. 김달진 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는 한편, '전환을 위한 글쓰기' 촉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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