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굿판' 사과, 화해했으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59] 공식적으로 그가 필화사건 관련하여 사과한 것은 1999년 여름이다
▲ 1991년 4월 명지대 강경대의 죽음 이후 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시인 김지하는 5월 5일 <조선>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는 글을 게재, 학생운동을 비판했다. ⓒ 조선일보PDF
그에게 '죽음의 굿판'필화는 오랫동안 트라우마가 되었다.
생명운동ㆍ율려운동 등을 벌이고, 대학에 출강, 각종 매체에 기고와 인터뷰를 하면서 명성이 따라도 민주진영의 문인, 후배, 청년들은 여전히 그의 행위를 사시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고가 남긴 지우기 어려운 상처였다.
실제로 그는 '죽음의 굿판' 일주일 후 같은 신문에 쓴 기고문에서 <척분(滌焚)>이란 제목의 시를 덧붙여서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물로 불탄 곳을 씻음"이란 뜻이 내포된 <척분>이다.
스물이면
혹
나 또한 잘못 갔으리
가 뉘우쳤으니
품안에 와 있으라
옛 휘파람 불어주리니
모란 위 사경(四更)
첫이슬 받으라
수이
삼도천(三途川) 건너라. (주석 1)
공식적으로 그가 필화사건 관련하여 사과한 것은 1999년 여름이다. <월간 말>과 인터뷰에서였다.
- 진보진영과 불화를 겪으신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는데요. 이제 화해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 내가 오늘을 빌어서 두 가지 사과할게요. 첫 번째, 글이 너무 날카로워서 흥분해 있던 젊은이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 사과할게. 두 번째는 내가 그때 아팠기 때문에 선배로서 조금 더 따뜻하게 조언을 못한 거. 즉 적절한 루트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서 갈긴거, 이건 지금도 내가 그렇게 잘했다고 생각 안해. 이 점 사과할게요. 그런데 이건 잘 모를 거요. 그 글 쓰고 난 뒤 일주일 후에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문이 또 나갔어. 마지막으로 천도되도록 진혼가도 썼어.
나한텐 조금 이상한 게 있어요. 귀신의 울음소리를 다 들었다고, 삼도천을 못 건너는 거야. 내가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거, 아파했다는 거, 그것만은 기억해 달라고 하고 싶어. 내가 절대로 젊은이들에게 무자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이들한테 이 말은 부탁하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나에게 완전히 동의는 못하더라도 서로 끈을 만들면서 같이 갈 수는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같이 가다보면 과거 문제는 다 풀릴 것이라고 봐요. 그때 유행했던 말처럼 3억을 받았느니 뭐니,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그것은 좀 믿자. 그 말만은 하고 싶어요. 참 변명이 길었네. (주석 2)
두 번째는 <실천문학> 2001년 여름 김영현(발행인, 소설가)과의 대담 '대립을 넘어 생성(生成)의 문화로' 에서이다. 관련 부문이다.
김영현 : 어쨌든 그 당시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일반 청년들까지 전체 사회에 대해 큰 좌절감과 배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이 30대 초반에 이르렀는데 그 세대들에 대해서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씀은 없습니까?
김지하 : 지나간 10년은 참으로 덧없는 세월이었어요. 돌아간 분들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라려 그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수운 선생의 시에 호소호언고래풍(好笑好言古來風)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좋게 웃고, 좋게 말하는 것이 우리 조선의 오랜 풍습이고 인심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대신하며 이제 피차 서로 그만 잊고 웃음 속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일 서로 힘을 합쳐 했으면 좋겠어요. (주석 3)
그의 사과와 관련 다음과 같은 증언도 있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이후 어느 날 갑자기 김지하 시인이 박정희기념관 반대 1인 시위를 마치고 작가회의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생명운동'을 위한 네 개의 고언 중 하나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인데, 하필 그 글을 1번으로 조선일보에 발표한 게 잘못이라고 까마득한 후배들과 마주 앉아 사과했습니다. 이때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위대한 역사적 인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것이 우리 문학사에서 거장이 자기 발언을 사죄한 최초일 겁니다. (주석 4)
주석
1> <회고록(3)>, 222쪽.
2> <월간 말>, 1999년 9월호, 인터뷰어 안철홍 기자.
3> <실천문학>, 2001년 여름호.
4> 김형수, <생명사상의 선구자 김지하를 위한 변명>, (김지하 추모좌담), <쿨투라>, 53쪽, 2022년 7월호.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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