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에게 '숙제 싫을 때 쓰는 조커'를 주었더니
[지금 우리 교실은] 책에 나오는 선생님을 흉내내... 학습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 방학에도 학원에 가고 문제집 푸는 아이들에게 카드 한 장을 내밀어 원하는 조커를 쓰게 해보면 어떨까? ⓒ 언스플래쉬
매달 '함께 읽기' 도서를 정해 아이들과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달 읽은 책은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라는 책으로 제목에서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어린이책 중 이처럼 강렬하고 과감한 제목을 가진 책이 또 있을까? 옆 반 선생님은 이 책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아이들한테 읽어주기 괜찮은 책 맞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땐 모두가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책을 보면서 롤러코스터를 탄 것마냥 환호할 때도 있었고, 책수다 시간에는 너도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왁자지껄했다.
모든 아이들이 집중한 책 한 권
책에는 노엘 선생님이라는 뚱뚱하고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선생님이 나온다. 아이들은 처음엔 선생님의 겉모습만 보고 실망하지만 선생님이 주신 선물 꾸러미를 받고 이제껏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특별한 가르침을 얻는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받은 선물은 조커(카드 놀이에서 궁지에 빠졌을 때 쓰는 카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숙제를 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떠들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수업 시간에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쓰는 조커 등등. 당연히 안 된다고 믿었던 것들을 노엘 선생님은 가능하게 만들어주신다.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해방되는 순간을 맛보게 된다. 그런 노엘 선생님 반 아이들을 보며 우리반 아이들은 "와! 대박!", "진짜 좋겠다!", "부럽다!" 소리를 연신 내뱉었다.
이 책을 읽고 나도 아이들에게 조커를 나눠 줘 보았다. 노엘 선생님처럼 여러 가지 조커를 제시하지는 못했고, '숙제를 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를 주었다. 우리반은 평소 숙제가 좀 있는 편이다. 매일 e학습터 게시판에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짧은 글로 써서 댓글로 달아야 하고, 학교에서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는 영어독서프로그램을 한 권 이상 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독서 카드와 글쓰기 숙제를 내야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지역도서관이나 서점을 방문해야 한다. 공부의 밑거름이 되는 문해력과 독서 습관을 탄탄하게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내준 숙제로 아이들이 빠짐없이 해올 수 있도록 지도해왔다.
그런데 노엘 선생님을 보며 내 교육법을 한 발 떨어져 다시 보게 됐다. 그동안 아이들의 성장만을 기대하며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아이들의 습관이 무너질까 염려스러워 빡빡하게 굴었던 것이 후회됐다. 때론 좀 느슨해져도 괜찮았을 텐데.
▲ 아이들에게 조커를 나눠주었습니다. ⓒ 진혜련
조커를 주면 마냥 기뻐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진짜 써도 돼요?"
"응. 왜 숙제 하기 싫을 때 있잖아. 그럴 때 쓰고 쉬어."
"와! 얘들아. 안 해도 된대!"
그제야 아이들은 흥분하기 시작하며 어떤 숙제를 뺄 것인지 요리조리 따져보며 고민했다. 모범생인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물었다.
"선생님. 조커 꼭 써야 돼요? 안 써도 되는 거죠?"
예전 같았으면 "그럼! 안 쓰겠다니 기특하네"라고 말하며 칭찬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써야 돼. 노엘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조커를 사용하는 사람과 조커를 쓰지 않는 사람 중 더 잘 한 사람은 조커를 쓰는 사람이라고. 조커는 쓸 때 가치가 있는 거라고 하셨어.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조커를 쓰면서 즐기는 시간도 가져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커는 나의 '권리'네요."
방학 때도 '조커'를 사용했으면
숙제를 어쩌다 한 번쯤 안 한다고 큰일이 나진 않았다. 조커 때문에 학습 습관이 흐트러진다거나, 계속 안 하고 싶어 한다거나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숙제를 기꺼이 즐겁게 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커를 통해 한숨 쉴 틈을 갖게 되자 학습 분위기는 더 활기차졌다. 해방구가 있다는 믿음이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나를 더 믿고 따르게 되어 사이가 돈독해졌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조커를 주기적으로 주려고 한다.
방학이다. 방학 전 아이들에게 계획을 물으니 학기 중보다 학원 스케쥴이 더 많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지난주 학원가 근처를 지나가다가 도로에 학원차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방학을 학원에서 보내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방학에도 학원에 가고 문제집 푸는 아이들에게 카드를 건네어 원하는 조커를 쓰게 해보면 어떨까?
아이는 어쩌면 조커 카드에 '게임 실컷 하기', '하루 종일 유튜브 보기', '학원 빠지기', '아이스크림, 과자 마음껏 먹기' 등을 쓸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보기에는 하나도 유익하지 않고,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한껏 쉬고 나면 다시 또 시작할 힘을 얻기 마련이다.
노엘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은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조커들을 갖게 된단다. 인생에는 조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아이들은 공부할 권리만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온전히 즐길 권리도 갖고 태어났다. 이번 방학에는 조커를 쓰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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