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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진짜 '비상상황'은 지금부터

[取중眞담] 비대위는 혼란의 출구 아닌 입구? '윤석열 당' 넘어 '도로한국당'으로 전락할 것인가

등록|2022.08.03 18:43 수정|2022.08.03 18:44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서병수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장이 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개최 및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현안 브리핑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비상상황

국민의힘이 지난 1일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체제 전환을 결정한 근거다. 혹자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이긴 정당이 어떻게 비상상황이냐고 반문한다. 또 다른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함께 폭락하는 당 지지율을 비상상황의 근거로 든다.

하지만 정말 그 때문일까. 이준석 대표의 성접대 및 증거인멸교사 의혹 파장도, 대통령실 사적채용 의혹을 감싼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발언 논란도, 심지어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내부총질 하던 당대표" 텔레그램 메시지 유출도. 이 비상상황의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진정한 비상상황은 이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짜 비상상황이 진짜 비상상황이 된 과정
 

▲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성일종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먼저, 비대위 구성을 위해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란 당헌 96조에서 앞서의 조건들을 날리고 "등"에만 집중해 현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겠다는 '신박'한 발상이 이 진짜 비상상황의 전조다. 그리고 의원총회에서 이런 해석에 근거한 비대위 체제 전환 결정을 반대한 의원이 89명 중 단 1명, 김웅 의원 밖에 없었다는 건 진짜 비상상황의 '시작'이다.

비대위를 꾸리기 위해 스스로 사퇴를 선언해놓고 '사직서가 접수되지 않아서' 최고위원 자격을 유지한 채 최고위에 참석한 배현진·윤영석 의원의 존재는 진짜 비상상황의 '상징'이다. 최고위 기능이 상실됐을 때 비대위를 꾸리는 것인데, 최고위가 모여서 '자신들의 기능이 상실됐으니, 비대위를 구성할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고치기 위한 상임전국위를 소집하자'고 의결한 건, 가히 진짜 비상상황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결국 여의도(여당)를 용산(대통령실)의 출장소로 만드는 것. 집권여당이 대통령실의 민원실로 전락하는 것. 소위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이 모든 당무를 좌우하고, '윤핵관(윤 대통령의 핵심 관계자)'이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 그 '윤핵관'마저 한정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분화하는 것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비상상황이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의 태양'을 위한 목소리가 지배했던 당은 선거 등을 통해 자멸했던 게 여의도의 역사다.

보수 정당의 역사, 그리고 두 개의 길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8일 국회 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의에 출석,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대해 소명한 뒤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한국의 보수 정당은 당내 소장파가 지워졌을 때마다 번번이 몰락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권이 무너진 건, 권력 실세들이 한나라당 '소장파'들을 찍어낸 결과였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이 비박(비박근혜)에게 칼을 쓰면서 망조가 들기 시작됐다. 자유한국당은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아스팔트 보수를 통합하겠다며 '우향우'를 선언했고, 이에 반대하는 '합리적 보수'의 목소리가 지워졌다. 태극기 부대에 잡아먹힌 한국당은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실과의 원 팀'을 내세우지만, 결국 '윤석열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로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며 "비대위 체제와 조기 전당대회는 혼란의 출구가 아니라 혼란의 입구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당이 위기에 몰린 이유는 윤석열 정권의 핵심 가치인 공정과 상식, 정의가 인사 등을 이유로 무너졌기 때문이고,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2030대와 60대의 세대 연합이 붕괴됐기 때문"이라며 "비상상황을 정리하려면 그 두 가지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데, 비대위와 조기 전당대회는 생뚱맞은 처방이다. 누가 비대위원장으로 와도 해결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도록 조언해야 하는데, 대통령의 의중을 고정 불변한 것으로 두고 모든 기조를 여기에 끼워 맞추다 보니까 생기는 오류"라고 덧붙였다.

결국, 대통령의 의중을 무작정 쫓거나 팔지 않는, 여당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실제 보수 정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건 언제나 현 권력과 거리가 멀었던 당내 반대쪽이었다.

'차떼기'와 '탄핵 역풍'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한나라당을 구한 건 '남(경필)·원(희룡)·정(병국)' 트리오로 대표되는 소장파였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던 2012년 당시 새누리당이 정권 연장에 성공한 건, 친이계로부터 학살당하던 친박계가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내세우며 개혁 보수와 중도층 공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이 점을 짚었다. 그는 "이준석 대표를 징계하는 초반 국면에는 비상상황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분명한 당의 비상상황"이라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비대위와 전당대회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지금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당과 대통령실의 관계를 건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는 중간의 목소리가 힘을 받을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향후 국민의힘이 향할 길은 어디일까. 지금도 몇몇 이들은 비대위 전환 및 해석을 두고 반대하면서 나름의 중재안이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당의 전반적인 흐름을 막기엔 미약한 편이다.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소신의 목소리가 이대로 거센 조류에 묻혀 완전히 종적을 감출까. 윤심보다 강한 민심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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