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즐기는 윤 대통령, 이순신 영화라도 보시라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지지율 폭락 속에서도 꿋꿋하게 휴가 즐기는 대통령
▲ 문재인 전 대통령 트위터 계정 글 ⓒ 트위터
"[평산마을 비서실입니다] 문 전 대통령은 월요일부터 며칠 동안 여름휴가를 갈 계획입니다. 시위하는 분들,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7월 30일 문재인 전 대통령 트위터 계정 글
현직도 아닌 전직 대통령의 휴가 계획이 이목을 끌었다. 함께 올린 사진 속 '우리들의 평화와 일상을 돌려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평산마을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사진으로 보인다. 지지자는 물론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욕설 시위' 중인 유튜버들이 헛걸음하지나 않을까 염려한 공지였다.
일거수일투족이 조명을 받기 마련인 대통령의 휴가는 언론과 국민들의 전통적인 관심사였다. 10년 전 '저도의 추억'이라 명명됐던 박근혜씨의 휴가 사진이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던 일을 상기해 보라.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들이 휴가 기간 읽은 책들은 어김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곤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일부터 5일간 여름휴가에 돌입했다. 지방 휴가 대신 자택 휴가를 택했다. 대통령실은 "일과 비슷한 일은 안 할 것"이란 설명을 내놨다. '영화도 보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겠다'는 취지였다. 대통령 휴가에 쏠린 관심은 납득이 간다. 출근길 문답을 위시해 언론 노출을 즐기던 대통령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마침 3일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평소 영화 관람을 즐긴다고 공언해 온 윤 대통령에게 휴가 중 <한산>과 전작 <명량> 관람을 강력하게 권하는 바다. '이순신 리더십'을 간접 체험할 기회요, <칼의 노래>와 같은 '이순신 서적'을 읽는데 걸릴 귀한 시간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2천만 관객이 호응한 이순신 리더십
▲ 영화 <한산:용의 출현>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관객 다수가 꼽은 <한산> 속 이순신의 명대사다. 무의미한 죽음이 난무하는 전투와 임진왜란의 의미를 회의하는 '항왜' 준사에게 영화 속 이순신은 자신의 철학을 긴 설명 대신 이 짧고 굵은 정언으로 대신한다.
'역사가 스포일러'일 수밖에 없음에도 관객들은 이순신과 조선 군사들이 왜군을 때려잡는 전투 장면에서 영화적 쾌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전작의 '반일' 논란을 의식한 듯, <한산>은 '항일'로 귀결될 수 있는 왜군의 잔악함 등을 강조하지 않았다.
'반일'이나 '항일'이란 일방적인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으려 상당한 자제력을 발휘한 것이다. 300억 원 넘게 들인 상업영화조차 이런 신중한 자세로 까다로운 우리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현 정부의 대일 외교는 정반대로 보인다. 한일 관계 개선을 빌미로 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지소미아)과 강제징용 배상, 한미일 군사협력 등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일본은 느긋한데 윤석열 정부만 몸이 단 것 아니냐는 평가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달 박진 외교부 장관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면담 직후 시민사회는 '굴욕적 대일외교'란 비판을 이어가는 중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반발은 예상 그대로였다.
<한산> 속 이순신의 과묵함도 눈여겨볼 만하다.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망쳤다. 전세는 수세에 몰렸다. 거북선(구선)의 출정도 불투명하고, 원균은 호시탐탐 이순신을 깔아뭉갤 틈만 노린다. 그럴수록 이순신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영화적으로는 심심하기까지 한 이순신의 과묵함과 신중함은 후반부 학익진을 통해 관객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반전의 기반으로 작용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은 어떠한가. 기자들 앞에 몸소 나섰던 출근길 문답은 '지지율 폭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형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가볍고 신중하지 못한 화법과 태도가 화근이었다. 공허하고 허울뿐인 대통령의 말 잔치는 고스란히 실제 정책 사이의 괴리로 나타났다. <한산> 속 젊은 이순신의 과묵함과 신중함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 말잔치는 결국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으로 나타나는 중이다.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의 '만 5세 조기 입학' 정책 추진 과정이 대표적이다. 오락가락 갈팡질팡 하루 이틀 사이에도 몇 번씩 말이 바뀐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안정감을 느끼고 신뢰할 여지를 본인들이 차단하는 꼴이다. 전투 끝까지 일관성 있고 신중하게 '바다 위의 성'이라는 학익진을 밀어붙인 이순신과 역시나 대비된다.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니라."
<명량> 속 이순신이 아들에게 건네는 이 유명한 대사야말로 이순신의 애민(愛民)정신을 함축한다. <한산>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거북선을 포함해 내부에서 실제 함선을 끌어나가는 일반 군사들의 피와 땀을 조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애민의식을 바탕으로 군사들의 사기를 고취시켰던 이순신의 리더십을 시각화한 설정이다.
아울러 <명량> 속 마지막 전투를 앞둔 이순신은 고뇌하고 또 고뇌한다. 불리한 형세로 인해 군사들과 백성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악몽까지 꿀 정도였다. 냉정한 상황인식과 처절한 자기 성찰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백성을 향한 충정. 이야말로 영화들의 완성도와 별개로 '리더 이순신'에 도합 2000만 넘는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일 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봉했던 <명량>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출연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명량>은 세월호 참사 직후이던 2014년 여름 개봉했다. 당시 관객들은 현실 속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질타하는 동시에 영화 속 이순신의 리더십을 통한 대리 만족을 호소했다. 공교롭게도, 8년 후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반 <한산>이 당도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8%까지 폭락했다.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을 향한 민심이 흉흉하다. 다만, 작금의 지지율 폭락은 외부적 요인보다 취임 이후 대통령과 정권 스스로 자처한 측면이 다분하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냉정한 상황인식과 겸손한 자기성찰은커녕 오만과 독선의 정치로 일반 서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인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지적은 여야, 보수진보, 지지층을 뛰어넘는 중이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순신 리더십에 호응해온 국민들이 취임 100일도 안 된 윤 대통령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3일 방한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 인사가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순방에 나선 것이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공개한 입국 사진에 우리 정부 인사가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외교 참사'와 '윤석열의 중국몽' 등 갖가지 반응이 쏟아졌다.
4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따로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 한다고 발표했다. 펠로시 의장이 아시아 타 정상들과 연쇄 회담을 가진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명량> 속 이순신의 대사가 떠오른다. 지지율 폭락 속에서도 꿋꿋하게 휴가를 즐기는 중인 윤 대통령이 향후 제시할 카드로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한미동맹일까, 그도 아니면 검찰공화국의 완성일까. 정국 구상 중이라던 윤 대통령의 휴가가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