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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계획한 시골살이... 드디어 감행했습니다

강화도 교동 평화의 섬, 봉소리에서의 첫날 밤

등록|2022.08.13 18:46 수정|2022.08.13 18:46

▲ 강화도 교동도 봉소리 오지마을에서의 첫날밤의 추억 ⓒ 이정민


10년을 계획해 궁핍한 전 재산을 투자한 강화도 교동 주말 시골살이는 그야말로 땀과의 전쟁이었다. 가칭 '무소유의 방'으로 규정해 아주 단순하고 검소하게 살려고 했건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간단한 살림살이는 몸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부평에서 약 2시간을 걸려 조그만 승용차에 집안 살림을 꽉꽉 채워 하나하나 옮기는 것 자체가 고된 노동이었다. 텅 빈 마음처럼 텅 빈 황토방만으로 비워내면서 살아낼 순 없었는지. 삭막한 도심 생활에서 눅눅해진, 가슴 한 켠 귀퉁이에서 슬슬 기어오르는 편리함의 탐욕이 역시나 머리를 어지럽혔다.

세간살이가 자꾸 자꾸 늘어나네

가을과 겨울까지 입을 여벌 옷을 챙기고 최소한의 먹을거리에 필요한 수저와 젓가락, 밥공기를 챙겼다. 타는 듯한 폭염에 불면증까지 생각하니 선풍기는 기본으로 구매했다. 외로움을 달래줄 음악이 필요하니 라디오를 사고 오지마을 오롯이 홀로 감내하는 무서움과 두려움에 텔레비전을 사들였다.

바닥은 돌같이 딱딱하니 푹신한 기본 매트리스가 필요했고 벌레와의 전쟁을 생각하니 모기장 텐트는 필수 아이템이다. 마냥 눕고 앉아 있으니 허리가 아파서 조립식 소파를 구입했다. 거기에 파라솔과 접이식 의자, 삽과 낫과 호미까지. 그야말로 산다는 건 도심이나 시골이나 매한가지였다. 왜 그토록 탐욕의 늪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처음 시골살이의 설렘을 보여주던, 지극히 가난하고 고요한 황토방은 작은 살림살이들의 어수선한 공간 메움으로 도심 속 월세방과 별반 차이가 나질 않았다. 아, 이토록 가난하고 단순한 교동 유배지 시골 선비의 삶의 깊이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건가.
 

▲ 논두렁 밭두렁 포도밭의 생명들을 되살리는 지하수의 근원 청정수로 ⓒ 이정민


근 2주 동안 수시로 강화대교와 교동대교를 오가다 보니 해병대 검문소까지 정겹다 못해 스스로 해병이 된 기분이다. 요 며칠 태풍의 영향으로 계속해서 세찬 비가 온 마을을 품었기에 그나마 마음 언저리에 둥지를 튼 부담감의 무게가 잠시나마 해소 되었다.

강화도 봉소리 북녘땅이 어슴푸레 보이는 해안선 철책 마을에서의 첫날 밤이 드디어 개봉박두! 오직 이 우주엔 나만 존재하는 아득한 오지마을 평화의 섬은 낮보다 저녁이 더 아름답고 황홀했다. 오렌지빛 길게 뻗은 군부대 오솔길과 논두렁 산책로는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아득한 흔적을 남겼다. 온갖 참붕어들이 뛰어노는 시골의 청정수로는 그 자체로 유년시절의 긴 머리 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고추잠자리와 호랑나비는 연신 길을 잃은 방랑자 뒤로 어엿한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우렁 농법으로 아끼바리 무공해 벼농사를 짓는 해병대 중사 아저씨는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나를 붙잡고 교동의 청정공기와 건강한 토양과 음이온이 가득한 냉동 지하수를 자랑했다.
 

▲ 아직 여름이지만 이미 가을같은 교동의 산책로 ⓒ 이정민


저 멀리 야트막한 산꼭대기 해병대 초소(GOP) 밑 좁은 수로 수면을 감싸는 물안개의 몽환적인 풍경은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그 해안초소를 부대끼며 자리잡은 해안선 철책 산책로는 더는 밟을 수 없는 금도의 땅이 되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봉소리 원주민들이 숭어를 잡고 뛰노는 황금모래빛 해수욕장이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2시간을 천천히 음미했다. 논두렁 밭두렁을 걷고 숲길을 산책하고 수로 멍을 때리면서 저녁놀의 황혼과 작별을 고했다. 집으로 오는 도중 봉소리 이장님의 쌀 도정 농장을 찾아 어엿한 교동 주민이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전입 신고를 마쳤다. 필승!

이장님은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풍족한 인심으로 화답했다. 함께 사는 고양이 오형제도 '안냐옹~~'하며 친근하게 나를 반겼다.

찬란한 자연과 사랑에 빠지다
 

▲ 야트막한 산으로 뻗어나간 작은 숲길의 아름다움 ⓒ 이정민


이튿날 시골 마을 새벽이슬의 영롱함과 마주하면서 또 다시 아침 산책을 서둘렀다. 주말마다 찾는 시골살이는 걷고 또 걷고 계속해서 걸음의 미학을 배우는 평화로움의 연속이다. 인근 야산 고추밭으로 들어가 마음씨 좋은 할머니에게 유기농으로 재배한 가지와 고추, 참외를 공짜로 얻었다. 수로 옆 포도밭 할아버지도 알알이 까맣게 잘 익은 포도송이 하나를 건넸다.

걷는다는 건, 천천히 걸어간다는 건, 때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돈독하게 해주고 마음의 평화를 전하고 텅 빈 고요를 적신다. 도심에서 찌들고 벗겨내지 못한 서늘한 독기와 냉기마저 스스로 녹여버린다. 특히나 시골 투박한 산책로의 정겨움과 평화로움은 아무것도 비길 데가 없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교동 시골 마을에서 불과 2주일 만에 풍족한 인심의 이웃을 만나고 찬란한 자연과 사랑에 빠졌다. 열애다. 물론 밤마다 울부짖는 고라니의 오싹함과 적막강산의 공기를 가르는 이름 모를 동물의 기괴한 웃음소리는 작은 사치의 덫이다. 그러나 곧 적응 시계로 이어지는 긴 시간의 장막은 이 작은 어둠에 휩싸인 공포의 덫마저도 스스로 무장해제시킬 것이다.
 

▲ 논두렁 밭두렁에서 뛰어 놀던 유년시절의 그리움 ⓒ 이정민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짧지 않은 3일 여정이었지만 아주 긴 가로 시간과 세로 공간의 큐빅에 갇혀 산 느낌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개입하지 않으며 온전한 나의 마음에게 오롯이 의지할 수 있는 풍족한 고독의 방. '내밀 예찬'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독 예찬'까지만으로도 족히 행복하리라.

한낮의 주말, 강화도 교동도 봉소리 오지마을은 바람이 전하는 잔잔한 시그널로 가득하다. 과연 이 뜨겁고도 찬란한 교동 바람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려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바로 '비움과 내려놓음'이 아닐는지. 비운다는 건 평화요, 내려놓음은 고요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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