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마니아들의 최고 축제... 'DMZ 피스트레인' 부활을 환영한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3년만에 철원으로

등록|2022.08.14 11:49 수정|2022.08.19 12:57
 

▲ 2019년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한국 페스티벌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의 페스티벌'로 소문난 곳이 있다. 2018년과 2019년,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렸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다. 사실 철원은 뮤직 페스티벌이 열릴 장소로 떠오를만한 곳은 아니다. 추운 날씨, 궁예가 세운 나라의 수도, 혹은 휴전선에 인접한 전방 군부대가 먼저 떠오른다.

DMZ 피스트레인은 이 독특한 지형적 조건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세계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인 영국 글래스톤베리의 메인 프로그래머 마틴 엘본은 이 지역에 큰 영감을 받았다. 분단의 상흔이 남아 있는 철원은 오히려 평화를 노래하기 좋은 곳이었다. DMZ 피스트레인의 모토는 "음악을 통해 정치, 경제, 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다. 'Peace Train'이라는 이름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캣 스티븐스(Cat Stevens)의 곡 제목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2018년, 한반도 평화의 분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이 페스티벌에는 더욱 힘이 실렸다.

이 페스티벌이 특별한 이유

타 뮤직 페스티벌들이 화려한 라인업과 인기 가수, 대기업의 스폰을 내세운다면, 이곳은 '노 헤드라이너' 정책을 고수한다. 모든 아티스트가 일정 수준의 공연 시간을 보장받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뮤지션이 저녁에 출연하기도 한다. 관객에 대한 규제 정책도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페스티벌은 다른 페스티벌에서 만나기 힘든 아티스트들을 섭외한다. 2018년에는 '펑크 록의 창시자' 섹스 피스톨즈의 원년 멤버인 글렌 매틀록이 크라잉넛, 차차(차승우)와 함께 합동 무대를 펼쳤다.

2019년에는 60년대 록의 전설인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원년 멤버인 존 케일이 내한했다. 존 케일은 새소년의 황소윤, 포크 뮤지션 정밀아 등 국내 뮤지션들과 함께 세대를 뛰어넘은 콜라보를 펼치기도 했다. 민중가요의 전설인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무대 위에 올랐고 중국의 록 거장 최건, 덴마크의 아이스에이지(Iceage)와 대만의 엘리펀트 짐(Elephant Gym) 등 대륙과 세대, 장르를 넘나드는 뮤지션들이 출연했다. 세계 다양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주최 측의 혜안이 빛난 라인업이다. 이승환, 혁오, 잔나비 등 대중적 친숙도가 높은 국내 뮤지션들 역시 출연했지만, 다른 어떤 페스티벌에서도 만날 수 없는 라인업 조합이다.

DMZ 피스 트레인은 지역 상생을 추구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사전 예약금 제도를 받고, 철원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역 상품권을 나눠 주었다. 이 상품권으로 이 상품권으로 지역 주민들이 페스티벌 행사장에서 파는 전병과 막걸리를, 그리고 인근 식당에서 매운탕과 두부전골 등 향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뮤직 페스티벌을 찾는 관객들은 2030 세대에 집중된다. 그러나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과 어린이, 철원 인근 군인이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보면, '축제의 본 기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뮤직 페스티벌은 결코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상쾌한 깨달음이다. 그뿐인가. 공연이 열리는 부지 바로 뒤에서는 고석정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고, 공연장 옆에는 오래된 놀이동산 '고석정 랜드'가 정겨운 분위기를 만든다.

3분의1로 삭감된 예산
 

▲ 2019년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그러나 남북 관계가 다시 험악해진 것처럼, 피스트레인을 둘러싼 상황 역시 녹록지 않아졌다. DMZ 피스트레인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열리는 공공 음악 페스티벌이다. 그러나 지난 7월, 올해 행사 예산 지원 규모가 2019년 대비 1/3 규모로 축소되었다. 주최측은 페스티벌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현실적인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DMZ 피스트레인은 오는 10월 1일부터 2일에 걸쳐,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개최된다. 코로나의 시간을 기억하고, 함께 모여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자는 기획 의도를 살려 올해의 메시지를 '우리의 평화는 음악'으로 정했다. 8월 22일, '우리의 평화는 화합'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1차 라인업이, 8월 29일에 '우리의 평화는 에너지'라는 슬로건과 함께 2차 라인업이 발표된다. 철원 군민과 철원 지역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은 사전 예약자에 한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무료로 진행되었던 페스티벌은 올해부터 자생성과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유료로 전환되었다. 지원이 축소된  만큼, 해외 라인업과 페스티벌 부지의 규모 역시 축소되었다. 6개국 25팀의 아티스트가 출연한다. 올해 피스트레인은 고석정 잔디광장과 한탄강 지질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피스트레인의 관객들을 열광시켰던 분수 무대의 위치 역시 변경된다. 1일 총 참여 관객도 5,000명으로 제한된다. 노동당사, 소이산 등 DMZ 피스트레인의 장소성을 살렸던 스페셜 스테이지는 월정리역 한 개로 축소되었다. 본 무대와 별개로, 월정리역에서 150명 한정의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 2022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페스티벌을 둘러싼 많은 상황이 변했지만, 볼멘소리를 내는 관객은 없다. 이 페스티벌이 2회에 걸쳐 심어준 신뢰 때문일 것이다. DMZ 피스 트레인은 전쟁의 상흔이 남은 지역을 음악과 춤, 힙(Hip)의 고장으로 만든, 뚝심 있는 열차다. 이 열차가 3년만에 예열 작업을 하고 있다. 음악과 춤이 만드는 일체화의 순간, 작지만 강한 축제를 기대해도 좋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