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옥헌원림 ⓒ 김숙귀
내가 사는 남쪽지방은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꽃이 귀한 여름, 꽃이 그리운
나는 지난 15일 사나운 폭염을 뚫고 전남 담양군으로 향한다. 5년만이다. 담양에 있는 명옥헌원림은 조선 중기 명곡 오희도(1583~1623) 선생이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이다.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꾸었다. 원림이란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정원과 달리 자연상태를 그대로 살려 적절한 위치에 집이나 정자를 배치하여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명옥헌으로 오르는 길. ⓒ 김숙귀
▲ 명옥헌 앞쪽 큰 연못에는 군데군데 녹조가 보이긴 했지만 반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 김숙귀
▲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로 호남 지방 정자의 전형이다.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 수도 있다. ⓒ 김숙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400미터 정도를 걷는다. 눈앞에 붉게 물든 연못이 나타나자
예전처럼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나온다.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의 둑방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못 한가운데 있는 섬 안에도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야말로 배롱나무는 이 원림을 온통 뒤덮고 있다. 못에 비친 배롱꽃의 반영도 아름답기만 하다. 명옥헌의 배롱나무는 모두 수령이 오래되었기에 더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우암 송시열선생이 썼다는 '계축 명옥헌' ⓒ 김숙귀
▲ 명옥헌 배롱나무 ⓒ 김숙귀
▲ 명옥헌 배롱꽃 ⓒ 김숙귀
정자 옆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본 송시열은 이 정자를 '명옥헌'이라 이름 짓고 바위에 '명옥헌 계축(鳴玉軒 癸丑)'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정자 옆의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소리와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정자 뒤쪽으로 가보았다. 작은 연못에는 배롱꽃이 떨어져 있고 바위 한쪽에는 우암선생이 새겼다는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뜨거운 여름날, 백일동안 피고지고를 반복하며 붉게 피어나는 배롱꽃. 명옥헌의
배롱꽃이 더 아름다운 것은 권력과 세속을 멀리했던 선비정신이 함께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 ⓒ 김숙귀
▲ 가지 끝마다 원뿔모양의 꽃대를 뻗고 굵고 콩알만한 꽃봉오리가 매달려 꽃을 피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아래서부터 꽃봉오리가 벌어지면서 꽃이 피어 올라가는데 몇 달이 걸린다 부처꽃과의 배롱나무는 붉은색 꽃이 7-9월에 걸처 피어난다. ⓒ 김숙귀
덧붙이는 글
명옥헌에서 10분 거리에 조선전기 문신이었던 양산보가 조성한 별서정원 소쇄원이 있다. 그리고 소쇄원 가는 길에는 고서포도가 한창 수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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