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울려퍼진 일본군 '위안부' 증언... "우리가 역사다"
'제5차 여성살해 및 성폭력 대항 액션주간'을 톺아보며
▲ 제5차 여성살해 및 성폭력 대항 액션주간 포스터 ⓒ 코리아협의회
소리를 내어 말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속으로 삭히지 않고 말해야만 하는, 억울하거나 답답한 상황이 존재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남에게 꺼내 들려준 용기에 감동과 연대의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누구나 원할 땐 목소리를 내는 발화의 자유는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말하기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벌써 5회차로 접어든 올해 '제5차 여성살해 및 성폭력 대항 액션주간'은 그러한 다양한 발화들을 가능케 한 공간이었다.
'코리아협의회' 내 AG Trostfrauen, 일본군 '위안부' 행동을 비롯한 독일 베를린 내 여러 여성단체는 8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전후로 약 2주간의 액션주간을 개최하고 있다. 이는 여성살해 및 성폭력에 대항하는 여성인권단체들의 연대 행사로, 인종과 연령에 상관없이 여전히 발생하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 14일 기림일 시위에 베를린일본여성모임이 현수막을 펼쳐놨다. ⓒ 코리아협의회
올해 액션주간 둘째 주에는 코리아협의회 산하 일본군 '위안부' 행동과 미투 아시안즈(Metoo-Asians e.V.)가 공동으로 주최한 아시안 플린타(FLINTA*: 여성, 레즈비언, 인터섹슈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및 에이젠더)를 위한 이야기모임 및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집회가 있었다.
모임은 코리아협의회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멀리 라이프치히에서 온 이도 있었다. 다 함께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공원에서 살사춤을 배우기도 하고, 다음날인 기림일을 기념해 소녀상 옆에서 나비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명상을 하며 몸을 정리하고, 저녁으로 비빔밥을 함께 만들어 먹는 등 4시간가량의 행사는 독일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이중으로 시달리는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해 서로 알아가기 위한 알찬 워크숍이었다.
'진실은 이긴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다'
▲ 14일 기림일 시위에서 베를린일본여성모임이 위안소 지도와 피해자 사진을 들고 있다. ⓒ 코리아협의회
다음 날인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다. 올해로 10회를 맞이하는 기림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추모와 연대를 위한 문화제가 진행됐다.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난 14일(현지 시간)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 1시간 30분 진행된 집회에는 대략 70여 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뜨거운 브란덴부르크 문 앞 파리광장에는 베를린일본여성모임이 직접 만들어 들고 온 대형 지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사진과 생애사가 적힌 패널이 둘러섰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을 위한 위안소가 설치됐던 아시아 일대를 사람 키보다 더 큰 지도로 제작하여,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줬고, '우리는 일본정부의 역사왜곡에 반대한다'라는 현수막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 회피와 역사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 정부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 14일 기림일 시위에서 피해자 사진 밑에 헌화를 하고 있다 ⓒ 코리아협의회
특히 이날엔, 참전 일본 군인 야스이 가네코, 마사미 야노 등의 '위안부' 관련 진술 내용을 차례차례 낭독하여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임을 다시금 보여줬다. 마시미 야노는 만주와 필리핀에 여러 곳의 위안소가 있었고, 그곳에 한국, 대만, 필리핀 여성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는 일본군이 자행했던 전시 성범죄를 생각하며 죄책감을 드러냈고, "내가 가해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진 2부에서는 코리아협의회 주도로, 다채로운 퍼포먼스와 연대발언을 통해 고 김학순을 비롯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자리를 가졌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이지헌님의 한국 무용과 바이올린 연주, 한국의 수요시위에서 항상 등장하는 '바위처럼' 노래와 율동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판아프리카 여성단체, 야지디 여성연합, 쿠르드족여성연합, 필리핀의 가브리엘라, 한민족유럽연대 등 많은 단체들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남수단에서 온 남성 등 몇몇 시민들은 무엇을 요구하는 집회인지를 자세하게 묻는가 하면, 처음 접하는 '바위처럼' 춤을 적극적으로 따라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 14일 기림일 시위에서 '바위처럼'을 추고 있다 ⓒ 코리아협의회
또한 집회 중간중간마다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날의 구호인 '진실은 이긴다'와 '우리가 역사다'가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한국 수어로 광장에 울려 퍼졌다. 마침 2부 집회 제목은‚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자!'였다. 집회 참여자들은 마지막으로 각국 피해자 사진 밑에 헌화를 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집회는 그야말로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과거사 청산, 역사 부정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연결된 수많은 관점들을 직시하고 여러 단체 및 시민들과 함께 이 문제들을 공유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수백 명의 여성들이 침묵을 깨는 계기가 됐다"면서 "말뿐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전쟁지역의 여성 폭력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실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제5회를 맞이한 액션 위크는 지금의 '우리가 역사'임을 생생히 보여줬다. 총 2주간에 걸친 액션 위크의 다양한 행사에서 세계 시민들은 이렇듯 과거의 폭력이 여전히 정의롭게 해결되지 않은 현실과 현재에도 만연한 전시 여성 성폭력 및 일상적 여성 성폭력에 대해 목소리를 드높였다. 31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님의 용기가 수십 년간의 강요된 침묵을 깨뜨렸듯이 세상 그 누군가도 마침내 목소리를 얻기를 바라면서…
▲ 14일 기림일 시위에서 한국 수어로 '진실은 이긴다' 구호를 전달하고 있다 ⓒ 코리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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