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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소설 쓰는 열 살 아들, 엄마가 열심히 한 것

시간보다 중요한 건 꾸준하게 보는 것... DVD 선택은 아이가 재밌는 걸로

등록|2022.08.25 11:29 수정|2022.08.25 11:29
오랜만에 친구가 집에 놀러 왔습니다.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공책 한 권을 쓱 넘겨봅니다. 열 살인 제 아이가 틈날 때마다 조금씩 쓰고 있는 영어 소설인데요. 아이 말로는 끝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데 스무 페이지 정도 채워져 있어요. 친구는 묻습니다.

"학원도 안 다니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어?"
"책 많이 읽어주고, 영어 DVD를 꾸준히 보여줬어. 내가 열심히 읽어준 건 영어책이 아니라 우리말 책이야. 그게 지나고 보니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 국어가 탄탄하면 영어가 수월해져."
"책은 내가 좀 노력해서 읽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 영상 보는 건 도저히 안 돼. 애가 재미없다고 보기 싫어해. 이미 늦은 것 같아. 학원에 보내야 하나?"

 

▲ 아이가 틈날 때마다 스스로 쓰는 영어 소설입니다. ⓒ 진혜련

 

▲ 아이가 틈날 때마다 스스로 쓰는 영어 소설입니다. ⓒ 진혜련


영어 영상 잘 보게 하려면

아이가 영어 영상을 잘 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영어 영상을 거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원인을 파악해보고 차근차근 바꿔나가 보도록 해요. 먼저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영어로 된 영상을 보면 당연히 낯설고 답답합니다.

외국어 영상 시청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부모는 이 사실을 충분히 인정해줘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잠깐이라도 영상을 봤다면 아주 대견하게 생각해 주세요. "벌써 그만 보려고?"라는 말 대신 "힘든 일인데 잘했어"라고 말하며 칭찬과 보상을 듬뿍 해주세요.

영어 영상을 볼 때 자막의 사용 여부가 고민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영상은 자막 없이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한글 자막은 꼭 빼주셔야 하고요. 영어 자막도 가능한 안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듣기'에 집중할 수 있어 귀가 트여요.

무슨 뜻인지 몰라도 인물의 표정, 움직임 등을 보며 이야기의 흐름과 상황을 짐작해나갈 수 있고요. 그렇게 계속 보다 보면 조금씩 이해되는 순간이 오는데요. 이 지난한 과정을 잘 넘기기 위해서는 쉬운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자막 없이 영상을 보니 아이는 문장을 들리는 그대로, 통째로 받아들이며 언어를 습득해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말할 때도 발음, 억양, 강세 등이 자연스럽고, 번역식 영어가 아니라 원어민들이 쓰는 관용 표현을 많이 사용해요.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으셨으면 해요. 이번 주에는 5분만, 다음 주에는 10분만 이렇게 목표치를 낮게 잡고 조금씩 늘려가는 게 좋습니다. 다른 집 아이는 2시간씩 본다는데 우리 아이는 5분, 10분씩 보면 언제 제대로 보나 한숨이 나오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천천히 가면 그만큼 단단하게 다지며 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에요. 계속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날 껑충 뛰어 올라가는 게 아이들입니다. 5분, 10분, 15분 이어지다 20분이 아닌 1시간을 내리 보게 될 수도 있는 걸요.

아이에게 영어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 것 같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재미!"라고 말하더라고요. 무조건 남들이 많이 보고 추천하는 영상을 들이밀기보다는 현재 내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살피고 그에 맞는 걸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재밌게 봐요.

아이는 어렸을 때 책을 읽어주면 장난꾸러기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DVD 고르는 기준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사고뭉치나 개구쟁이가 나오는가였습니다. 지금은 모험, 탐정, 세계문화 등에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된 영상을 추천해 주고 있어요.
 

▲ 학원에 다니지 않는 제 아이는 매일 영어 영상을 실컷 봅니다. ⓒ 진혜련


가능한 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세요. 저는 DVD를 제가 알아서 구입하고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보라고 하지 않았어요. 서너 개 정도 찾아놓고 미리보기 영상이나 이미지, 설명 등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고르게 했어요.

선택을 통해 주체성과 능동성을 이끌어내야 재미를 느낍니다. 물론 본인이 직접 골랐다고 해서 다 잘 보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안목과 취향이 만들어지고, 영어 영상에 대한 부담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영상은 오로지 부담 없이 보기만 하게 했습니다. 영어가 공부가 되면 그때부터 영어는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에게 영상을 보게 하고 내용을 확인하는 워크북을 풀게 하거나, 의도적으로 집중듣기, 흘려듣기, 따라 말하기 등을 시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희한한 것이 어느 날 아이가 DVD 보는 걸 가만히 지켜보니 웅얼웅얼하며 보더라고요. 스스로 영상을 보며 따라 말하는 거였어요. 교육적이지 않을 때 가장 교육적인 효과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믿는 만큼 변하는 아이들
 

▲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우리말 책을 많이 읽어주고, 영어 dvd를 꾸준히 보여주었습니다. ⓒ 언스플래쉬


학교에서 4학년 아이들에게 영어 영상 시청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영어 영상을 즐겨 보는 아이가 많지 않더라고요. 대체로 유치원, 저학년 때까지는 좀 봤지만 학원에 다니면서부터는 거의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어렸을 땐 영어가 재밌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렵고 싫다고 했는데요.

이유를 물으니 학원에 가면 기본 2~3시간 이상 수업을 들어야 하고, 매일 단어 외우고, 숙제하고, 시험 보고 특히 레벨업 테스트 기간에는 통과하지 못할까 봐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영어가 지긋지긋한 공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영어를 편하고 즐겁게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학원에 다니지 않는 제 아이는 매일 영어 영상을 실컷 봅니다. 꾸준히 잘 보는 건 영상 보는 일이 아이에게는 휴식이자 오락이기 때문이에요. 아이는 오늘도 밀린 수학 문제집을 한바탕 풀고 나서 머리 좀 식혀야 한다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틴틴의 모험' DVD를 깔깔거리며 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아이가 영어 영상을 잘 보게 하는 방법을 소개했어요. 조금만 봐도 칭찬하고 인정해주기, 목표치를 낮게 잡고 조금씩 늘려가기, 아이의 관심과 흥미에 맞는 영상 보여주기, 선택권 주기, 학습활동 없이 오로지 보는 것만 하기 등을 제시하였는데요. 이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다음 편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할게요.

저는 이미 늦은 것 같다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교육에서 늦은 건 없다고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아이들은 믿는 만큼 변하더라고요. 안 된다, 늦었다 단정 짓지 말고 지금부터 하나씩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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