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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세금 내는 국민에게..." 비극적인 여가부 장관의 사과

[주장] 배제의 시작 보여준 김현숙 장관, 성평등 추진 부처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등록|2022.08.22 10:05 수정|2022.08.22 10:06

▲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여당 원내대표 한 마디에 하루아침 중단된 사업이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3년 동안 진행해온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사업이다. 지난 7월 4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SNS에 이 사업을 지적하는 글을 남기자마자 여가부는 사업 전면 재검토를 통보하더니, 기어이 사업 중단을 단행했다. 4기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운영 단체 '빠띠'는 이에 반발하며,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여가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사업 중단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8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에 관한 질의가 쏟아졌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사업 출범식에서 축사까지 하고 5일 만에 사업 전면 재검토를 통보했으니, 사업 중단 이유 및 권 원내대표의 의견 동의 여부 등에 관한 질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가부 장관은'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업'이라거나 '남성 참가자가 적어서' 등 장관이 전한 사업 출범식 축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유를 대 오락가락 대응을 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어안이 벙벙한 그 답변 

장관의 문제적 인식이 드러난 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질의에 답변했을 때였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이미 출범식까지 마친 사업에 참여한 참여자들과 해당 사업을 진행한 단위에게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고 질의하니, 김현숙 장관은 "국민들에게 사과했다"라고 답변했다. 용혜인 의원이 재차 "버터나이프크루 참여자들은 국민이 아니냐"고 물으니,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사과했습니다"라고 답변한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답변이다. 사업 중단 통보받은 당사자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고, 애초에 세금으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추진한 것 자체에 대해 납세자들에게 사과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답변은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국민을 갈라치고 위계를 나눈다. 국민은 세금 내는 사람과 지원받는 사람으로. 사과받을 자격 있는 사람은 세금 내는 사람이며, 지원받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사업이 중단돼도 사과 받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된다.

둘째,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동료시민의 노력을 짓밟는다. 성평등 확산을 위한 노력을 당장 필요치 않거나 특이한 것 취급하며, 사업 참여자를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 세금 쓰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또, 성평등을 바라는 시민의 염원 역시 무시하며, 여가부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셋째, 긴축을 이유로 혐오와 배제를 부추긴다. 시민을 세금 납부 여부로 갈리치기 하면, 많은 세금을 낼수록 큰 목소리 낼 환경이 만들어진다. 세금 내는 사람만을 향한 사과는 국가 지원을 받는다면 국가 지원에 군말 말아야 하는 존재거나 세금 축내는 사람 취급을 받게 한다.

김현숙의 '배제'

김 장관의 사과는 '세금 낸 적 있냐' 비아냥을 넘어서 '성평등 확산에 세금 쓰기 아깝다'는 인식에서 나온 게 아닐까 의심이 된다. 긴축은 결국 기존 예산을 줄이거나 폐지한다는 의미다. 긴축의 벽을 넘지 못하면 폐지돼도 무방한 쓸모없는 사업이 된다. 이에 반발하면 '그게 지금 중요하냐' 혹은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식의 논리로 우위를 정해 누군가에게 절실한 삶의 문제가 삭제되거나 배제된다. 긴축으로 인한 배제의 시작을 김 장관이 보여준 셈이다.

김 장관 사과 발언의 또 다른 문제는 모든 시민이 어떤 식으로든 세금 납부한다는 사실도 숨긴다. 심지어 한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소비 등을 통해 끊임없이 간접세를 납부한다. 하지만 '세금 내 본 적 있냐' 다그치거나 '더 많이 세금 낸 국민' 운운하는 것은 간접세 아닌 직접세만을 세금으로 여기는 옹졸한 인식이다.

무엇보다 김현숙 장관은 차별에 민감하고 평등을 지향해야 할 여성가족부 부처의 수장이다. 그런데도, 김 장관은 국민을 갈라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국회 여성가족위 회의에서 보여줬다. 부처 '폐지'를 위해 부처 수장이 되는 것도 모순이지만, 인권감수성이 뛰어나야 할 부처의 수장이 본인의 차별 발언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도 큰 비극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기본소득당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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