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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도 치명적인데 약효까지? 대단한 치자

죽림수 이영윤의 화조도와 치자

등록|2022.09.03 19:46 수정|2022.09.03 19:46
꽃과 새를 그린 화조화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전통회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산수화, 인물화 다음이라고 할 정도이다. 꽃과 새는 그 자태가 아름다워 그림 뿐 아니라 자수, 도자기 등 다양한 공예품과 생활용품의 장식에도 활용했다.
 

화조도(부분)이영윤, 비단에 채색, 53.9 x 160.6 cm ⓒ 국립중앙박물관


죽림수 이영윤(1561~1611)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화조도이다. 이영윤은 학림정 이경윤의 동생으로, 왕실의 종친이다. 죽림수는 봉호(왕이 봉하여 내려 준 호)로, 형인 이경윤은 처음에 학림수에 봉해졌다가 학림정으로 승격했다.

이경윤은 절파 화풍을 대표하는 화가로, 16세기 후반 조선 중기 화단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절파는 중국 명대의 화파로, 복잡한 구성과 거친 필치가 특징이다. 이경윤은 산수인물화, 영모화를 잘 그리고, 이영윤은 화조화, 영모화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영윤의 화조도는 사계절을 8폭 병풍에 그린 것으로, 위 그림은 여름의 풍경을 담은 것 중 하나이다. 위아래로 긴 구성 중 일부로, 아래쪽에는 원앙 한 쌍이 있다. 화면은 위쪽부터 소나무와 새, 바위에 핀 꽃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중 하얀 꽃과 주위를 둘러싼 푸른 잎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여름의 싱그러움이 잘 나타난 대상이 아닌가 싶다.

이 하얗고 어여쁜 꽃은 치자나무의 꽃이다. 치자나무는 높이 1~2m의 상록관목으로 꽃은 6~7월에 핀다. 그림 속 치자 꽃은 5장의 꽃잎으로 표현되었으나, 실제 치자나무의 꽃잎은 6~7장이다.
 

▲ 치자나무의 꽃 ⓒ 픽사베이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강희안은 자신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치자의 네 가지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극찬했다. "꽃빛이 흰 것이 첫째, 향기가 맑고 풍부한 것이 둘째, 겨울에도 푸른 잎의 윤채나는 싱싱함이 셋째, 열매는 염료나 약재로 쓰이는 것이 넷째이며, 치자는 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양화소록은 꽃과 나무의 재배, 이용에 관하여 서술한 농업서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라고도 한다.

치자나무의 학명은 Gardenia jasminoides J. Ellis으로, 이때 jasminoides는 '자스민과 향이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처럼 치자꽃은 그 향이 좋아 향료로 이용되며, 예로부터 많은 시인들이 치자꽃 향기에 대해 시를 남기기도 했다.
 

▲ 꽃치자 ⓒ 픽사베이


치자나무속(Gardenia) 식물은 전 세계에 약 250종이 있다. 이 중 높이가 60cm로 치자나무보다 작고 7~8월에 개화하는 꽃치자가 있는데, 꽃이 여러 겹으로 치자나무에 비해 화려하다.

치자 열매의 다양한 활용

치자의 열매는 타원형으로, 세로 능선이 뚜렷한 특징적인 모양이다. 길이 1~3.5cm, 너비 1~1.5cm의 크기이며, 9월에 주황빛으로 익는다. 노란 색소를 가지고 있어 종이, 옷감 등을 염색하는데 쓰이는 천연 염료이다. 빈대떡이나 전, 튀김을 노릇하게 하거나, 단무지를 노랗게 보이는데 사용하는 등 식용 색소로 음식에 활용할 수도 있다.
 

▲ 치자 열매 ⓒ 음식_800078,아사달,공유마당,CC BY


약용으로 쓸 때는 치자나무의 익은 열매를 건조해서 사용한다. 성질은 차고 맛은 쓰다. 열을 식히고 화를 꺼주는 작용이 있어, 가슴이 답답할 때 좋다. 습열(濕熱)이 쌓이고 맺혀서 소변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복용하면 효과적이다. 열로 인해 피를 토하거나 코피가 나고, 하혈을 할 때도 사용한다. 황달성 간염, 담낭염, 담석증 및 신우신염, 요도염 등에 응용할 수 있다.

용도에 따라 치자를 법제하여 사용하면 더욱 효과가 좋아진다. 법제란 한약재의 치료 효능을 높이는 등의 목적으로 가공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가슴의 열을 내리는 데는 생 것을 사용하고, 지혈할 때는 약재의 겉면은 까맣고 속은 밤색이나 진한 황갈색으로 되도록 볶아서(초흑; 炒黑) 쓰면 좋다.

열기와 붓기를 가라앉히고 해독하는 작용이 있어, 외상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밀가루에 치자 물을 넣고 반죽하여 발목을 삐거나 멍이 들었을 때 그 부위에 붙여두는 것인데, 일명 '치자떡'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파스에 치자 성분이 들어간 것도 있다.

과연 강희안의 예찬 글처럼, 치자는 꽃과 향기가 뛰어나고 사철 푸르른 아름다움을 가졌을 뿐더러 그 쓰임새까지 훌륭한 귀한 식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nurilton7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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