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서 한발짝도 못 나오고 8년을 산 남자
류변의 급진적 책 읽기 16회 <홀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 김홍모>
▲ 눈물 흘리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 류제성
지난 8월 27일 토요일 오후 부산의 어린이전문서점 '책과아이들'에서는 '안부 in부산'이라는 제목의 특별한 북콘서트가 열렸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20명의 목숨을 구해 '파란 바지 의인'으로 불린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의 이야기를 그린 김홍모 작가의 그래픽 노블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을 주제로 한 북콘서트였다.
이날 북콘서트에는 평화박물관 변상철 연구위원이 사회를 보고, 김홍모 작가, 김동수씨, 그의 부인 김형숙씨가 출연해 대담을 나눴다.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사실상 유일한 작품의 작가, 주인공, 주인공의 가족, 주인공을 지지하는 동료 시민이 함께 모여 서로 잘 지내는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북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늘은 맑고 봄기운이 완연한 날, 화물차를 모는 동수씨는 세월호 객실에서 쉬고 있었다. 세월호가 갑자기 기울어지자 급히 구명조끼를 입고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외쳤다. 같은 시각 배에서는 밖으로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배 위의 헬기는 내려오질 않았다.
동수씨가 사력을 다해 소방호스로 승객들을 구출하고 있을 때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승객을 버리고 탈출했고, 해경123정은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선원들만 태우고 멀어졌다. 작가는 안타깝게 반복한다. "이때 퇴선 명령만 내려졌다면, 이때 퇴선 명령만 내려졌다면..."
배는 90도 가까이 기울어지고 있었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동수씨는 어느 순간부터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정신과 의사는 그때 본 것들이 너무 괴로운 기억이어서 보호본능이 작용한 것일 수 있다고, 오히려 기억이 안 나는 게 좋을 거라고 한다. 기억하면 견딜 수 없을 것이기에.
나중에 해경이 찍은 영상을 보면, 배가 침몰 중인데도 동수씨는 혼자 다시 안으로 들어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동수씨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뛰어다니는 동안 해경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동수씨는 그날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 동수씨는 덜덜 떨리는 팔로 구명조끼를 입은 어린아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동수씨는 진도체육관에서 해수부 공무원들과 기자들에게 배 안에 아직 300명이나 있다고, 국가가 구조를 안 하고 있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들은 동수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뭐야. 어떻게 살아 나온 거야. 저 사람들은 살아 나왔는데 내 자식은 왜 못 나왔냐고!" 유가족들이 모인 곳에서 동수씨를 포함한 생존자들은 죄인처럼 밀려다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데 아저씨는 따뜻한 물에 있네요."
"우리는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데 아저씨는 따뜻한 물에 있네요." "내가 좀더 침착했다면, 학생들이 있는 방으로 달려가 기다리지 말고 다 뛰어내리라고 소리쳤으면, 배 안에 아직 300명이 있다고 끝까지 외쳤다면..."
동수씨가 되뇌는 말이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끊임없는 자책, 생존자를 외면하는 정부, 정부의 구조실패를 수없이 말해도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향한 분노는 동수씨를 그날의 세월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급기야 동수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세월호 청문회에서, 제주도청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자해하고, 폭발하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난동을 부려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한다.
무뚝뚝하지만 늘 두 딸이 먼저였던 딸바보 아빠 동수씨는 딸들에게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으로 변했고, 이런 동수씨를 지켜보고 돌보는 동수씨의 아내와 딸들도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아내 형숙씨는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고, 기쁜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저 매일 아무 일만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북콘서트에서 말했다.
북콘서트에서도 동수씨는 절규했다. 매일 자기 전에 내일 눈뜨지 말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왜 눈을 뜨게 했냐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내 딸이 8년의 세월을 나를 간호하느라 보냈다, 내가 그 시간을 빼앗았다, 나와 내 가족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필자는 막연히, 책도 나왔고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이제 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동수씨의 눈물을 보고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이어진 동수씨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북콘서트를 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도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울고, 말하는 게 동수씨에게는 힐링이 된다. 오롯이 우리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런 자리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감사하다.
만화를 그린 대가로 이명 증상이 심해져 고통을 겪는 등 <홀>을 창작하는 것은 김홍모 작가에게도 힘든 과정이었다. 작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세월호의 진실과 생존자들의 아픔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사회자 변상철 연구위원은 생존자의 증언이 세월호의 진실규명에 결정적 역할을 할 날이 오리라 믿으며, 그때까지 생존자들이 견디시기를, 생존자들이 견딜 수 있도록 독자분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길 부탁했다.
제주에 24명, 전국에 172명의 세월호 생존피해자가 있다. 이들의 삶 역시 동수씨보다 편할 리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을까.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방방곡곡에서 북콘서트를 열어 생존피해자의 안부를 물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세월호 북콘서트 안부 in 부산 ⓒ 류제성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