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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이 불러 온 문해력 논란... 불통은 가장 쉽다

문해력은 세대가 아닌 현대인들의 문제... 소통 의지가 관건

등록|2022.09.04 11:18 수정|2022.09.04 11:18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 여러 기사들을 양산한 '심심한 사과' 논란은 의사를 전달하려는 사람의 "심심"과 의미를 전달받는 사람의 "심심"이 일치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이었다. 의사소통 오류가 낳은 이 논쟁은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를 바라보는 제삼자의 의견이 추가되면서 청년들의 어휘력/문해력 논란과 한자 사용의 최소화 등 다양한 담론이 나왔다.

어휘력의 문제일까
 

▲ 소통하려는 노력 ⓒ 픽사베이


"세비 반납... 국회 장기 파행 면목없다."

'언어 감수성 테스트' 링크를 공유받아 참여해본 적이 있다. '파행 국회'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파행'의 정확한 뜻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맥락상 깨뜨릴 파(破)를 사용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의 의미로 짐작할 뿐, 엄밀히는 모르는 단어였다.

그래서 '파행'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의미는 비슷하지만 절름발이 파(跛)를 사용한 차별 언어라서 사용하면 안 되는 용어라고 한다.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 중에는 '차별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 의미를 모른 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많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생각보다 나의 어휘력이 좋지 않구나'를 자각했던 순간이었다.

직장 선배들에게도 파행의 뜻을 알고 있는지 물었을 때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심심한 사과의 '심심(甚深)'도 깊을 심(深)으로만 알고 있지 심할 심(甚) 자가 들어간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젊은 청년들의 어휘력 수준 차이를 논하기에는 윗 세대들도 생각보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고, 사람마다 편차도 컸다.

문해력의 문제인가

일각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문해력이 낮다고 지적한다.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데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10대들은 문자보다는 이미지와 영상매체에 친화적이며, 검색에 익숙해 사실을 빨리 찾아내는 데 뛰어나다. 이러한 빠른 정보 획득,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한 Z세대의 특성들이 오히려 폭넓은 단어 사용과 행간 읽기를 방해해 문해력을 낮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부터 3년간 중3 및 고2의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국어과 '보통학력 이상(3수준)' 비율이 하락했고, 여러 조사 결과 청소년들의 어휘력/문해력 저하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는 문해력 향상을 목표로 초등학교 1, 2학년의 국어 수업시간을 34시간 늘리고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문해력 관련 과목이 신설됐다.

그렇다. 문해력이 문제다. '심심한 사과' 논란처럼 낮은 문해력이 의사소통의 오류를 낳는다. 그러나 문해력에 있어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 우리는 알고리즘 추천 기반으로 다량의 콘텐츠들을 소비한다. 효율지상주의 사회 분위기 안에서 감상과 사유는 멀어지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주입하는 게 똑똑한 것으로 간주된다. 대다수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활동이다.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화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행위나 말의 목적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단순히 시간 걸림, 비효율, 불친절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레 표면의 어휘만을 단편 정보로써 얻게 되고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의 의사 소통
 

▲ 소통 ⓒ 픽사베이


일반화할 수 없지만 직장에서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심각한 문제라고 느낀 적은 없다. 아직 '찐 Z세대'가 들어오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해력에 의한 세대 간 소통 문제는 과도한 우려일 수 있다.

직장은 나이에 상관없이 일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기본적으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 써서 의사소통해야 한다. 보고서나 메일을 쓸 땐 읽는 사람을 생각해 요점과 핵심 위주로 정리를 하고, 문장 구성에 있어서도 가독성을 고려한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단어를 바꾸거나 부연설명도 넣는다.

직장에서의 의사소통은 결국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노력이 깔려 있다. 물론 잘 해내기 어렵지만 누구나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오독과 소통 오류를 줄이는 것이다.

또한, 직장에서는 모르면 물어본다는 룰이 있다. 모르는 채로 임의대로 일을 처리했다가는 시간 낭비, 자원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사는 신입들에게 확실하지 않은 건 꼭 질문하라고 요구한다. 질문하는 절차를 통해 서로가 가진 이해의 간극을 좁히고, 의사소통 오류를 줄이는 것이다.

이기적이면 소통할 수 없다

어느 시대에나 "요즘 애들은 버릇없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건 순전히 기성세대의 입장이니, 조선시대의 요즘 애들 의견을 들어보면 지금처럼 "어른들은 말이 안 통해"라고 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세대의 다름은 언제나 있었고 대개는 내가 정답, 상대가 오답 또는 문제라고 인식한다.

각박한 사회 분위기에서 세대 갈등이 너무나 쉽게 점화되는 요즘, 오히려 의식적으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사흘, 나흘, 금일을 모르는 것과 기성세대가 알잘딱깔센, 누칼협 등의 신조어를 모르는 게 과연 같은 무게와 심각성으로 취급될까?

최근 신조어가 특정 커뮤니티 중심으로 사용되고 생존 주기가 짧다는 이유로 전자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기성세대 친화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당연하다'는 생각은 내 기준이 정답임을 전제한다. 따라서 '이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정상이다'라는 상식의 기준도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당연한 것은 원래 없으니까.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은 원래 없기에 모르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내 기준에서 상식인 것을 모른다고 상대를 저격한다면 그건 나의 상식을 강요하는 폭력이자 무식일 수 있다. 결국은 내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새로운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소통이 가능하다.

사실 불통이 가장 쉽고 간편하다. 내 기준에서 당연히 알아야 할 '심심한'을 모른다고 저격하는 것, 내가 모르는 것은 어려운 것이고 어려운 표현을 쓰는 것은 문제라고 치부해버리는 것 모두 불통의 예시로, 나를 정답으로 두면 되니 매우 편하고 쉬울 수밖에 없다.

화합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고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식하고 이기적이기만 한 사람은 절대 타인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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