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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안하겠다던 딸, 장사꾼에게 반하고서야 알았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 위기에도 '아침'을 지켜온 사람들... 옥천 공설시장 이야기

등록|2022.09.02 15:13 수정|2022.09.02 16:15

▲ 전통시장의 아침을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사진은 충북 옥천 공설시장. ⓒ 월간 옥이네


새벽 5시 30분, 조기현씨의 손길을 따라 남부상회 좌판에 싱싱한 고추와 열무, 마늘과 양파가 진열됩니다. 충북 옥천 공설시장에 불이 켜지기도 전입니다.

조기현씨가 누구냐고요? 남부상회 조영미 사장의 아버지입니다. 젊은 시절 너무 바쁘게 살아서일까요? 세 딸의 학창시절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맏딸 조영미씨에게 물려준 이 남부상회가 이부순·조기현씨의 모든 젊음이자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 조기현씨는 여전히 남부상회에 나와 딸의 자리를 데워줍니다.

같은 시각, 적막한 새벽 공기를 걷어내는 오토바이 불빛이 보입니다. 정운야채 박찬희씨의 흰 오토바이입니다. '정운'은 박찬희씨가 가장 사랑하는 큰딸의 이름입니다. 딸의 이름을 내건 박찬희씨는 도무지 게을러질 수가 없습니다. 불 꺼진 고요한 시장에서 홀로 부산스런 소리를 내는 정운야채는 박찬희씨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자 자랑입니다.

공설시장 사람들은 참 재밌습니다. 피곤한 내색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웃습니다. 남는 게 없다면서 남김없이 줍니다. 한평생 장사로 자식을 가르치고 삶을 건사했다면서 아직도 장사가 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시장이 변해서 좋다면서도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게 있다고 합니다. 매일 나오면서도 내일이 기대된다고 합니다.

이런 시장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전통시장의 위기가 계속되는 지금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온라인 상점이나 대형마트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게 됐지요. 무엇을 사는지는 알아도, 누구에게 사는지는 모르는 것이 당연한 삶이 됐습니다.

전통시장의 아침을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시장에는 또다시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아침이 온다는 건 결국 새로운 이야기가 쓰여진다는 의미겠지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공설시장의 아침을 지켜온 사람들과 지켜갈 사람들을 기록해 봅니다. 여기서는 남부상회와 늘찬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월간 옥이네> 8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3대째 남부상회 이어가는 조영미·하충오씨
 

▲ 3대째 남부상회 이어가는 조영미·하충오씨 ⓒ 월간 옥이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젊음처럼 제 유년도 남부상회와 늘 함께였던 것 같아요. 가게 문 닫을 시간을 기다렸다가 엄마를 도와 가게를 정리하고, 엄마 손 붙잡고 마암리 집까지 걸어 다니던 기억. 주문 전화가 끊일 새가 없던 밤. 새벽 3시에 고된 몸을 일으켜 대전에 물건을 떼러 가는 모습. 한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부지런히 밥 먹던 모습..."

조영미씨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집 창고에는 배추와 파, 무가 매일 가득했다. 세 자매가 동원돼 엄마의 배달 오토바이에 싣고 또 실어도 창고는 빌 틈이 없었다. 이상했다. 왜 엄마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시간보다 빠르고, 또 바쁘게 흐를까. 그런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절대 장사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남부상회 이야기가 시작된 건 이부순씨의 시어머니이자 조기현씨의 어머니, 그러니까 조영미씨의 할머니인 임영자씨 때부터다. 옥천읍 마암리 할머니의 작은 청과물 가게. 그곳이 바로 58년 전 최초의 남부상회다.

"여름에 할머니가 가게를 닫고 집에 돌아와 등목하던 모습이 떠올라요. 방문을 열고 영미야, 하고 저를 불렀죠. 그럼 저는 차가운 물을 퍼다가 할머니 등에 열심히 부어드렸어요."

가게 일을 돕던 맏며느리 이부순씨가 남부상회를 이어받은 건 어쩌면 당연했다. 남부상회 사정을 맏며느리 이부순 씨만큼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조영미씨의 할머니에게 이부순씨는 믿음직스럽고 야무진 며느리이자 후계자였지만, 세 딸은 매일 바쁜 엄마가 미울 때도 많았다.

"운동회며 소풍이며, 학창시절에 엄마랑 찍은 사진이라곤 몇 장 없어요. 기억하는 한 엄마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어요. 대전에서 새벽같이 떼어온 물건을 동이면 솔밭집(지금은 사라진 식당)까지 배달을 다닐 정도였죠. 할머니가 장사하실 때부터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배달 다녔어요. 그 자전거가 오토바이가 되고, 오토바이가 트럭이 되는 동안 남부상회 역시 마암리에서 뚝방길 앞으로, 뚝방길 앞에서 공설시장으로 옮겨왔죠."

바쁜 나날이 이어지면서 이부순씨의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지자 이번엔 맏딸 조영미씨가 장사를 돕게 됐다. 물건을 떼기 위해 대전 오정동 새벽 시장까지 차를 몰고 간 그날은, 면허를 딴 지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은 날이었다.

"어스름한 새벽길 어찌저찌 차를 몰고 시장 앞까지는 갔는데 주차가 문제인 거예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리는데 주차장 앞 가게에서 제 또래 청년이 나와 주차를 도와줬어요. 그분도 아버지 가게를 도와주러 이른 새벽부터 시장에 나왔더라고요."

그가 바로 조영미씨의 남편 하충오씨다. 하충오씨는 말이 잘 통했고, 책임감이 강했다. 비가 오는 날도 길이 꽁꽁 얼어붙은 날도 성실하게 시장에 나왔다. 무거운 채소가 가득한 박스를 여러 차례 옮기면서도 불평은 커녕 환히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

이후 조영미씨가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받게 되면서, 하충오씨도 대전의 일을 정리하고 남부상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장사꾼이 될 줄도 몰랐지만, 장사꾼 남편을 만날 줄은 더더욱 몰랐다는 조영미씨다.

"남편과 함께 장사를 해보니까 이제 부모님을 좀 이해할 것 같아요. 고생하는 남편이 애틋해지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어린 시절 느꼈던 외로움을 내 자식들이 느낄까 걱정도 되죠. 자식한테 소홀하지 말자고 남편과 자주 다짐해요."

아들 동윤이와 윤재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자꾸 어머니에게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며 조영미씨가 웃는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부상회는 언제나 저를 성장시켰어요. 어릴 적에는 저를 너무 빨리 커버리게 만들었지만요."

남부상회가 자신을 더 괜찮은 사람으로, 더 성실한 상인으로 만든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런 조영미씨에게 남부상회는 '나의 엄마'다.

시장에 반찬가게 '늘찬' 개업한 왕정옥·송금자·송재임씨
 

▲ 시장에 반찬가게 '늘찬' 개업한 왕정옥·송금자·송재임씨 ⓒ 월간 옥이네


"어렸을 때 엄마가 웬만한 음식은 다 집에서 해주셨어요. 짜장면, 탕수육, 감자탕, 샌드위치, 파스타... 전 모든 집이 다 그런 줄 알았어요. 하하."

왕정옥씨의 막내딸 송재임씨는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 맛있는 음식을 우리 가족만 먹을 수 있다니. 엄마의 손맛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억울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송재임씨는 엄마와 함께하는 반찬가게를 꿈꿨다. 직장생활 틈틈이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전에 사는 큰 언니도 야금야금 설득했다. 군서면 오동리가 고향인 두 자매는, 종종 엄마와 장을 보러 다니던 읍내 공설시장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에 홀린 듯 입찰을 신청했다. 그렇게 7월 16일 반찬가게 늘찬을 열었다.

"딸들이 그날그날 반찬을 만들면, 저는 옆에서 거드는 식이에요. 다만 손이 많이 가는 김치는 제가 다 담그지요. 열무김치, 겉절이 이런 것이요. 딸들이 워낙 제 음식을 좋아해 줘서 시작한 일인데, 다들 맛있다고 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네 딸을 키운 것이 '엄마의 도시락'이라면, 엄마의 손맛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 것도 '네 딸의 도시락'이다. 왕정옥씨는 딸 넷을 키우며 요리 솜씨가 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냐며 웃는다. 도시락을 싸면서 만들어보지 않은 반찬이 없을 정도다.

"어느 날은요, 도시락을 싸고 나면 기운이 쪽 빠졌어요. 날 밝을 때 반찬을 시작해도 도시락 네 개를 다 싸놓으면 금방 밤이 됐죠. 그래도 그땐 그 고민이 재밌었어요. 뭘 싸줄까, 뭘 맛있어하고 좋아할까 고민하는 거요."

반찬가게를 시작한 지금, 왕정옥씨의 그때 그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이제 함께하는 두 딸이 있어 훨씬 풍성하고 즐겁게 식단을 꾸리고,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왕정옥씨의 도시락이 네 딸의 '날개'였던 것처럼, 왕정옥씨에게 두 딸 역시 자신을 훨훨 날 수있게 하는 '날개' 같은 존재라고.

"옆을 보면 딸들이 있으니까 마음이 든든해요.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옆에서 딸들이 용기를 주고,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해주니까 마음먹은 거죠."

요리뿐만 아니라 손재주가 좋고 창의력이 있는 막내딸 송재임씨가 가게 운영 전반을 맡는다. '늘 옹골찬 맛'을 선보이자는 뜻으로 '늘찬'이라 붙인 가게 이름도, 늘찬을 상징하는 정겨운 로고도 그의 솜씨다. 엄마를 닮아 손맛이 좋은 큰언니 송금자씨는 부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제철 식재료의 맛을 살리고, 날씨에 맞는 반찬으로 구성돼 더 인기를 끄는 '오늘의 메뉴'는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골똘히 논의한 결과물이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계절의 맛을 최대한 느끼게 하는 식이에요. 제철 식재료 소비는 농촌과 시장에도 활력이 되고, 사람들의 입맛도 돋울 수 있죠. 날씨에 맞는 메뉴는 식탁을 더 재미있게 만들 테고요."

개업 전 집기를 들여놓고, 시장 조사를 위해 매일 같이 시장을 드나들며 공설시장의 매력도 알게 됐다. 부지런한 상인들의 모습과 분주한 손님들의 모습이 삶에 강한 활력을 준다는 것. 이 같은 활력이 언젠가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생겼다.

"반찬 가게의 장점은 자취생도, 워킹맘도, 어르신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지요. 장사한 지 3일(7월 19일 기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이 관심 가져 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 가게 덕분에 시장을 잘 몰랐던 사람들이 시장을 찾아오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초보 장사꾼'이 바라본 시장은 아직 다른 세상처럼 낯설지만,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의 삶의 무대라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해진다. 그래서 세 모녀가 늘찬을 개업하며 세운 첫 번째 목표는 시장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가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직 정신없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옆 가게들을 보며 생각해요. 언젠가 우리도 공설시장 '베테랑'이 되겠지? 그때까지 '늘 옹골찬 맛으로' 잘 버텨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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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옥이네 통권 62호(2022년 8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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