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 평범함을 강요받는 젊음들에게
[김성호의 씨네만세 396] <옥토버 스카이>
▲ 옥토버 스카이포스터 ⓒ 유니버설 픽처스
'청소년의 특권은 꿈을 품고 키우는 일이다.'
한때는 모두가 진리로 여겼을 이 말조차 옛것이 되었나 하고 의심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 부자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특권과 아무렇지 않게 가난한 이들로부터 꿈을 앗아가는 부조리가 그렇다. 누군가가 수년을 들여 두드린 자리에 누구누구 백으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이들을 마주할 때가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대학교 부정입학과 금융사 및 공기업 채용비리 사건 역시 끊이지 않는다. 교수 부모가 동료나 제자 논문에 제 자식 이름을 올리는 사건은 시시껄렁하게 느껴질 정도다. 덩치 큰 아이와 작은아이가 같은 두께 장갑을 끼고 링에 오르는 게 불공평하다는 얘기는 이미 식상하게 느껴진다. 큰 아이는 아예 장갑을 끼지 않고 오르고 있으므로.
다음 세대의 꿈을 응원하는 영화
▲ 옥토버 스카이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불과 몇 년 전 한 중학교 교장이 학생들을 모아두고 "집 형편이 어려우면 너무 꿈을 크게 갖지 말라"고 말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교장이 할 말이 아니라고 불만을 털어놨지만 교장은 진로를 고를 때 형편을 고려하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하였다. 공정과 평등, 정의를 부르짖는 정치인들이 득세했을 때조차도 아이들의 꿈은 산산이 부서져나가곤 하였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옥토버 스카이>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조 존스톤 감독이 연출하고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한 작품이지만 국내에선 따로 개봉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호머 힉캠이라는 전 미항공우주국(NASA) 로켓과학자가 바로 그다. 그는 제 경험을 살려 소설가로 전업했고 직접 제 이야기를 글로 쓰기까지 했다. 그 이야기가 곧 영화가 됐다. 꿈을 향한 청년의 도전과 극복의 드라마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진솔한 감동을 전해준다.
영화는 냉전시대 콜우드라는 미국 탄광마을에서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뉴스를 본 소년의 성장드라마다. 호머(제이크 질렌할 분)는 우주를 향한 꿈을 품고 주변의 반대를 극복하며 조금씩 전진해나간다.
특별하지 않아 평범함을 강요받는 젊음에게
▲ 옥토버 스카이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세상엔 특별하지 않아 평범함을 강요받는 수많은 젊음이 있다. 1957년의 콜우드와 지금의 한국사회가 별반 다르지 않아 나는 이 영화를 더욱 안타깝고 쓸쓸하며 짜릿하게 느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꿈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특별하거나 우러러보여지지 않는 꿈이라면 비웃음을 사게 되는 세상이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그 꿈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이다. 꿈이란 바로 나 자신이기에.
영화 속 호머의 꿈을 응원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에도 학생들을 믿고 응원해주는 라일리 선생님(로라 던 분)이 그렇고, 남몰래 아들을 지원하는 어머니가 또 그렇고, 로켓을 만드는 걸 도와주던 마을 사람들이 또 그렇다. 아이의 철없는 꿈 뒤엔 이런 어른의 도움이 있다. 그게 사회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지금껏 생존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과연 한국사회는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고 있는가. 19세기 삿포로농학교(홋카이도 대학의 전신) 교감으로 취임한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클라크가 입버릇처럼 말했다던 그 유명한 말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 Boys be ambitious"는 작금의 한국에도 유효한가. 우리 곁엔 그런 어른이 있는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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