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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대전현충원65] 규정 바뀌면서 안장 순서 변경... 죽어서도 특별대우

등록|2022.09.19 10:34 수정|2024.08.18 13:54
1985년 11월 13일 준공된 국립대전현충원에는 2021년 9월 22일 기준 9만 6960명이 독립유공자묘역, 장군묘역,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장병묘역, 경찰관묘역, 순직공무원묘역 등에 안장되어 있다. 묘역은 일반적으로 번호 순서대로 안장되어 있는데, 묘비 번호는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진행된다.

맨 윗줄은 대장 전용 묘역으로 계획

그런데 장군 제1묘역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런 규칙에서 벗어난 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장군 제1묘역 1번은 장창국 대장(1924~1996)이다. 장 대장은 1996년 12월 30일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런데 1986년 11월 7일 안장된 장관(장성)급 장교인 전병수 준장은 장군 제1묘역 40번 묘에 안장되어 있다. 1번 묘역보다 40번 묘역이 10년 이상 먼저 안장된 셈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장군 묘역을 조성할 당시 가장 윗줄에 1번부터 39번까지 39기의 묘를 대장 전용묘역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대장들을 위해 1번부터 39번까지는 비워두고 장성급 묘역을 40번부터 먼저 쓴 것이다. 때문에 1995년 12월 5일에 김동하 중장이 50번 묘에 안장된 후에야 장창국 대장이 1번 묘에 안장되었다.

▲ 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맨 처음 안장된 전병수 준장의 묘. 전병수 준장은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 최초의 안장자로, 1986년 11월 7일에 제1묘역 40번에 안장되었다. 최초 안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묘지 번호를 40번으로 부여받은 이유는 맨 윗줄 1번~39번 묘지가 ‘대장’ 전용 묘지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 임재근

장창국에 이어 대장 전용묘역에 안장된 이는 2번 유학성(1997.4.7 안장), 3번 진종채(1998.3.30 안장), 4번 민기식(1998.10.15 안장) 등이다.

그런데 또 5번 묘역은 대장이 아닌 김만청 중장(2000년 1월 7일 안장)이다. 이유는 1999년 5월에 대장 전용묘역이 폐지되고, 맨 윗줄에 중장까지 안장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만청 중장에 이어 6번 김복동(2000.04.21 안장), 7번 정태석(2000.11.21 안장), 8번 함병선(2001.02.07 안장), 9번 김일환(2001.10.05 안장), 10번 김연상(2001.10.27 안장) 등 중장들도 장군 제1묘역 맨 윗줄에 안장되었다.

같은 중장이라도 1999년 5월 이전에 안장된 심언봉(41번, 1987.05.21 안장), 양봉직(47번, 1995.08.01 안장), 김동하(50번, 1995.12.05 안장), 김창룡(69번, 1998.02.13 안장), 김석범(71번, 1998.02.20 안장), 김대식(92번, 1999.01.12 안장) 등은 맨 윗줄에 안장되지 못했다. 규정이 바뀌기 이전에 묻혔기 때문이다.

▲ 1990년 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 항공사진. 맨 윗줄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줄 왼쪽부터 안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임재근

대전현충원은 장군 제1묘역이 만장되어감에 따라 묘역 추가조성에 들어갔고, 장군 제2묘역 조성을 2003년 5월 14일에 완료했다. 2006년 9월 11일, 장군 제1묘역 맨 아래 오른쪽 끝에 272번의 문석수 준장의 묘가 들어섰고, 9월 29일 이병엽 소장이 장군 제2묘역 1번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장군 제2묘역에 안장이 시작되었음에도 장군 제1묘역의 맨 윗줄, 즉 대장과 중장이 안장되는 곳에는 32번(김용배 대장, 2006-07-20 안장)까지만 채워져 있었다. 중장 이상의 장성급 장교 7명은 장군 제2묘역이 아닌 제1묘역에 안장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33번에 류병봉 중장(2006.10.16 안장)을 시작으로 김대욱 대장이 2007년 7월 30일 39번에 안장되면서 장군 제1묘역은 만장이 되었다.

찾기 힘든 친일반민족행위 이력의 신현준 묘

장군 제1묘역은 272번에서 끝나지 않았다. 만주국군 상위·간도특설대 활동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수록된 신현준이 장군 제1묘역 273번에 안장되어 있다.

신현준의 묘를 장군 제1묘역에서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신현준 묘는 장군 제1묘역 맨 윗줄 오른쪽, 39번 묘 옆에 자리잡았다. 대전현충원 관계자는 "당초 대장 전용묘역으로 조성되었던 장군 제1묘역의 맨 윗줄에 계획된 39기의 묘가 채워진 후에도 6기를 더 안장할 수 있도록 추가로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곳에는 신현준 중장(273번, 2007.10.20 안장), 이범준 중장(274번, 2007.12.03 안장), 장지수 대장(275번, 2008.01.28 안장), 박경원 중장(276번, 2008.02.22 안장), 김용금 중장(277번, 2008.05.03 안장), 최명재 중장(278번, 2008.09.11 안장)의 묘가 자리하게 되었다.

장군묘역을 보면 장군과 사병 사이에는 죽어서도 차별이 있었고, 4대 특권을 누렸던 대장 또는 중장은 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장군 제1묘역의 맨 윗줄 오른쪽 여유 공간에 6기의 묘지가 추가로 조성되었다. 6기의 묘지는 신현준 중장(273번), 이범준 중장(274번), 장지수 대장(275번), 박경원 중장(276번), 김용금 중장(277번), 최명재 중장(278번)이 차지했다. ⓒ 임재근

태어난 곳은 서로 달라도, 죽은 곳은 서울

장군 1묘역에서 눈여겨볼 것은 묘비 뒷면에 새겨진 출생지와 사망지다. 그들이 태어난 곳은 경북 예천, 충북 청원, 경남 밀양, 평남 대동, 강원 철원, 충남 공주, 황해 황주, 일본 오사카, 함남 북청, 경기 안성, 전남 구례, 서울, 강원 춘천 등 다양한 반면 죽음을 맞이한 곳은 대부분 서울이었다.

전체 278명 중 82%인 226명이 서울에서 사망했다. 이는 서울의 인구 비중 18.5%(2020년 11월 1일 기준)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로, 장군들은 예편한 뒤에도 서울에 거주할 수 있는 경제력을 획득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장군 제1묘역에는 만주국군 상위·간도특설대 출신의 김석범(장군1-071), 일본군 중좌 출신의 백홍석(장군1-176), 만주국군 상위 출신의 송석하(장군1-093), 만주국군 상위·간도특설대 출신의 신현준(장군1-273)을 포함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수록된 이들이 17명(6%)이나 된다는 사실도 되새겨 볼 부분이다.

▲ 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된 278명의 사망지가 ‘서울’인 사람의 묘지를 빨간색 테두리로 표시했다. 226명(82%)가 서울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 17명(6%)은 노란색 바탕으로 구별하였다. 주황색 바탕은 ‘친일인명사전’뿐 아니라 국가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명된 이들이다. ⓒ 임재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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