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저는 우연한 기회로 유기견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워낙 개를 좋아하기도 하고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평소라면 늦잠을 잤을 주말, 저는 아침 일찍 방진복과 검정 장화를 챙겨 신고 견사로 향했습니다.
대형견 수 백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서울 외곽의 A 견사. 견사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들리는 개 짖는 소리는 우렁찼습니다. 견사 상주 봉사자님이 강조한 주의사항은 세 가지.
'마음대로 간식 주지 말 것, 물릴 수 있으니 함부로 만지지 말 것, 사진 찍느라 일에 소홀하지 말 것.'
전 마침 코를 철망에 콕 박은 채 킁킁대는 진돗개 한 마리를 찍으려 올린 손을 슬그머니 내려야 했습니다.
가장 처음 맡았던 일은 '연주'란 이름의 노견이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령의 연주는 매일 늘어져라 잠을 자며 하루를 보내는 편입니다. 이날도 봉사자가 산책을 가자며 어르고 달랬지만, 연주는 큰 눈만 끔뻑일 뿐 미동도 보이지 않았죠. 낯선 사람이 방 이곳 저곳을 쓸고 닦아도 연주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몸을 뉘었습니다.
제가 방 청소를 다 끝낸 뒤 바닥에 주저 앉자, 가만히 누워만 있던 연주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 본 그 녀석. 유난히 검고 깊은 눈망울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의 푸석한 금빛 털과 축 늘어진 입 가죽은 녀석이 지내 온 세월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이곳 견사에 들어 온 아이들은 모두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차도에서 뺑소니를 당한 아이, 보신탕 집에서 구출된 아이, 파양을 거듭한 아이···. 연주는 어떤 사연으로 이 곳에 오게 됐을까요. 손을 살짝 코에 갖다대니 '킁킁' 대며 꼬리를 흔드는 녀석.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서도,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연주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른 봉사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나서며 다시 한 번 더 연주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 자리 그 대로. 봉사자들의 등을 가만히 지켜보던 연주. 그리곤 늘 그랬다는 듯 다시 고개를 천천히 뉘이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역할은 아이들의 밥 그릇 수십 개를 세척하는 일이었습니다. 견사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수 백 개의 눈동자가 저를 향했습니다. 철장에 갇힌 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왈왈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흰 진돗개 한 마리가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고집있게 짖어댔습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제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말입니다. "난 너 도와주러 온 거야. 그렇게 짖으면 되겠어?" 저는 결국 한숨을 쉬며 그 녀석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아, 그 녀석의 날선 울음소리가 순간 이렇게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너도 한 번 오고 말거지?"
그 말이 어찌나 생생히 들렸던지, 전 할 말을 잃고 녀석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자신의 메시지가 전해진 걸 아는 걸까. 그 아인 킁킁 대더니 짖는 걸 뚝 멈추지 뭡니까.
문득 한 견사 봉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의 애정만 주고 또 오지 않는 봉사자들이 많아요. 아이들은 찰나의 애정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가요."
저도 처음엔 그저 경험 차 방문한 봉사였습니다.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견사의 하루는 매일 변함없이 흘러갑니다. 철장 안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때에 맞춰 배부되는 사료를 먹습니다. 철장 내 같이 사는 친구들과 투닥대고, 푸른 하늘을 몇 번이고 올려다 보면, 또 다시 밤이 찾아옵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그러니 봉사자들은 녀석들에겐 '특별한 사건' 입니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얼굴, 따스한 눈빛과 손길, 이름을 부르는 밝은 목소리. 한 번의 방문이라도 녀석들에게 사람과의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보자, 애들아."
봉사가 끝난 뒤 견사를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한 녀석이라도 분양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여유 있는 상황이 못 된다는 것도 속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주 찾아 오는 것만이 제가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겠죠.
등 뒤로 파도처럼 밀려 들리던 녀석들의 짖는 소리. 그게 작별 인사인지, 원망인지, 배웅인지는 아쉽게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 견사에 있는 녀석들견사 철망 안에 갇힌 녀석들이 봉사자를 쳐다보고 있다. ⓒ 송혜림
대형견 수 백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서울 외곽의 A 견사. 견사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들리는 개 짖는 소리는 우렁찼습니다. 견사 상주 봉사자님이 강조한 주의사항은 세 가지.
'마음대로 간식 주지 말 것, 물릴 수 있으니 함부로 만지지 말 것, 사진 찍느라 일에 소홀하지 말 것.'
가장 처음 맡았던 일은 '연주'란 이름의 노견이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 노견 '연주'작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노견 '연주' ⓒ 송혜림
노령의 연주는 매일 늘어져라 잠을 자며 하루를 보내는 편입니다. 이날도 봉사자가 산책을 가자며 어르고 달랬지만, 연주는 큰 눈만 끔뻑일 뿐 미동도 보이지 않았죠. 낯선 사람이 방 이곳 저곳을 쓸고 닦아도 연주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몸을 뉘었습니다.
제가 방 청소를 다 끝낸 뒤 바닥에 주저 앉자, 가만히 누워만 있던 연주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 본 그 녀석. 유난히 검고 깊은 눈망울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의 푸석한 금빛 털과 축 늘어진 입 가죽은 녀석이 지내 온 세월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 견사에서 만난 녀석견사에 갇힌 진돗개 한 마리가 코를 내밀고 있다. ⓒ 송혜림
이곳 견사에 들어 온 아이들은 모두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차도에서 뺑소니를 당한 아이, 보신탕 집에서 구출된 아이, 파양을 거듭한 아이···. 연주는 어떤 사연으로 이 곳에 오게 됐을까요. 손을 살짝 코에 갖다대니 '킁킁' 대며 꼬리를 흔드는 녀석.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서도,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연주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른 봉사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나서며 다시 한 번 더 연주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 자리 그 대로. 봉사자들의 등을 가만히 지켜보던 연주. 그리곤 늘 그랬다는 듯 다시 고개를 천천히 뉘이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역할은 아이들의 밥 그릇 수십 개를 세척하는 일이었습니다. 견사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수 백 개의 눈동자가 저를 향했습니다. 철장에 갇힌 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왈왈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 견사에서 만난 녀석들견사에 있는 진돗개 2마리가 봉사자를 쳐다보고 있다. ⓒ 송혜림
그 중에서도 흰 진돗개 한 마리가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고집있게 짖어댔습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제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말입니다. "난 너 도와주러 온 거야. 그렇게 짖으면 되겠어?" 저는 결국 한숨을 쉬며 그 녀석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아, 그 녀석의 날선 울음소리가 순간 이렇게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너도 한 번 오고 말거지?"
그 말이 어찌나 생생히 들렸던지, 전 할 말을 잃고 녀석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자신의 메시지가 전해진 걸 아는 걸까. 그 아인 킁킁 대더니 짖는 걸 뚝 멈추지 뭡니까.
▲ 견사에서 만난 녀석견사에서 한 진돗개 한 마리가 서 있다. ⓒ 송혜림
문득 한 견사 봉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루의 애정만 주고 또 오지 않는 봉사자들이 많아요. 아이들은 찰나의 애정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가요."
저도 처음엔 그저 경험 차 방문한 봉사였습니다.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견사의 하루는 매일 변함없이 흘러갑니다. 철장 안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때에 맞춰 배부되는 사료를 먹습니다. 철장 내 같이 사는 친구들과 투닥대고, 푸른 하늘을 몇 번이고 올려다 보면, 또 다시 밤이 찾아옵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그러니 봉사자들은 녀석들에겐 '특별한 사건' 입니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얼굴, 따스한 눈빛과 손길, 이름을 부르는 밝은 목소리. 한 번의 방문이라도 녀석들에게 사람과의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보자, 애들아."
봉사가 끝난 뒤 견사를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한 녀석이라도 분양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여유 있는 상황이 못 된다는 것도 속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주 찾아 오는 것만이 제가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겠죠.
등 뒤로 파도처럼 밀려 들리던 녀석들의 짖는 소리. 그게 작별 인사인지, 원망인지, 배웅인지는 아쉽게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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