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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양재동', 실제 있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된 강남, 70년대 영동 개발을 거쳐 급격히 발전

등록|2022.09.24 19:54 수정|2022.09.24 19:55
'영등포구 양재동'으로 시작하는 낡은 문패를 본 기억이 있다. 학교 근처 말죽거리의 어느 폐가였다. 1970년대 말 기자가 서울 영동중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인데 지금껏 인상 깊게 남아있다.

강남구와 서초구를 포함한 강남이 남서울이나 영동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 남쪽에 위치해서 남서울이었고 영등포의 동쪽에 있어서 영동이었다. 한강 이남의 중심지가 영등포였던 시절 지금의 서초구 대부분 지역은 영등포구에 속했었다.
 

양재역 4거리의 말죽거리 표지석양재동 일대는 오래전에 말죽거리로 불렸다. ⓒ 강대호


시흥군에서 영등포구로

1963년 1월 1일부로 한강 이남의 많은 지역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했다. 강남구와 서초구도 이때 서울이 되었는데 강남은 광주군 언주면이, 서초는 시흥군 신동면이 서울로 편입된 지역이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이 된 옛 경기도 땅에 구청의 출장소를 개설했다. 출장소는 본청과 멀리 떨어진 지역 주민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본청 직할의 행정기관을 말한다. 지금의 강남구 지역에는 성동구 언주출장소가, 서초구 지역에는 영등포구 신동출장소가 설치되었다. 그러니까 강남은 성동구, 서초는 영등포구였다.

당시 자료들을 종합하면 경기도에서 서울이 된 지역들의 모든 행정 업무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관된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면사무소에서 보유한 재산은 물론 부채까지 서울시가 인수했는데 소속 공무원도 신분을 보장해 주었다. 경기도의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공무원이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이 된 것이다.

경기도민에서 서울 시민으로 신분이 바뀐 주민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우선 '도민증' 대신 '시민증'이 발급되었다. 도민증은 한국전쟁 후부터 각 도의 규칙에 따라 도민에게 발급되었던 신분증명서를 말하고, 시민증은 서울특별시에서 발급했던 신분증명서를 말한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신분증인 주민등록증 발급은 1968년 주민등록번호 제도와 함께 시행되었다.

이외에도 농촌과 도시가 각기 다르게 적용하는 건축 규제와 농업 정책 때문에 혼란을 겪는 사실을 당시 신문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남땅은 예로부터 농촌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서울시 고위 공무원으로 도시개발 과정에 관여한 '손정목'은 회고록에서 강남의 1950년대와 60년대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강남의) 농업경작 형태가 벼농사 중심에서 소채재배 중심으로 변해갔다. 한국전쟁 후 (중략) 서울 시민의 채소 공급은 주로 강남 지역 일대에서 맡을 수밖에 없었고, 당시 한강의 남북을 왕래한 나룻배는 채소 보따리로 가득 찼다고 전해진다. -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3권 본문 중

'말죽거리' 일대가 강남 농업중심지 중 한 곳이었다. 농지도 넓고 주민도 많아 뉴스에 많이 언급되는 지역이기도 했다. 과거 기사들을 보면 사람들에게 익숙한 말죽거리를 언급하며 동 이름은 괄호 안에 넣는 것을 볼 수 있다. 말죽거리(영등포구 양재동)라고.
 

양재동 농촌 마을 (1978)말죽거리로 알려진 양재동은 전형적 농촌이었다. 1978년 정부는 고속도로 주변의 재래식 농가 주택들을 현대식으로 개량했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1960년대 영등포는 서울의 공업 중심지라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번화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등포구의 과밀 현상을 언급하는 기사들을 볼 수 있다.

<조선일보> 1971년 7월 11일 '서울의 낙도 영등포 편입 지구' 기사는 "영등포구가 비만증에 걸렸다"고 지적한다. "영등포구가 면적은 넓지만 구청은 하나"여서 "시정의 손길이 고루 미치지" 못한다는, 그래서 "양재동과 서초동" 등 "외곽 주민들은" 마치 "낙도에 사는 외로움을 겪고" 있다며 구체적 사례들을 전한다.

만약 "영등포구 신동출장소" 관내인 양재동이나 서초동에 사는 주민이 구청으로 볼일 보러 가려면 시영버스를 타고 흑석동까지 나와서 영등포 도심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그나마 시영버스도 얼마 없고 배차 간격도 엉망이라고 기사는 밝힌다.

특히 "영등포구 양재동"에 사는 한 주민은 "시골 사는 친척이 서울이랍시고 찾아올 때면 무엇을 자랑해야 할지 모를 형편"이라며 "서울 편입으로 도민증 소리를 안 듣게 됐고 땅값이 좀 올랐다는 것뿐 생활은 시골의 옛 그대로다"라고 불평한다.

영동 개발지구와 '영동출장소'

강남 지역은 1960년대 말 한남대교 부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연장선으로 토지구획정리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요동치기 시작한 땅값은 1970년 11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남서울 개발 계획'을 기점으로 크게 오른다.

이때부터 영등포의 동쪽에 있는 신동출장소 관내와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내에 영동이라는 지명이 붙게 된다. 남서울은 영동1지구와 영동2지구를 합한 지역을 말한다. 영동1지구는 경부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당시 영등포구 지금의 서초구 일대를 포함하고, 영동2지구는 압구정동, 논현동, 역삼동 등 당시 성동구 지금의 강남구 일대를 포함한다.
 

고속버스터미널이 건설된 1976년 반포동 일대의 항공사진강남 개발이 진행될 무렵 서초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빨간 원은 고속버스터미널, 노란 원은 경부고속도로. ⓒ 국토지리정보원


1970년대 초반 강남 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되고 있었지만 강북의 서울과 비교해서는 여전히 낙후한 지역이었다. <경향신문> 1972년 1월 13일 '우물 소독 철저히' 기사는 영동지구 등 서울 변두리에서 상수도가 없어 겪는 불편함과 우물 관리의 미흡함을 비판한다.

특히 "영등포구 양재동 등 6개 동 7만여 주민들은 식수난에 허덕여 흑석동 노량진"까지 나가서 물을 길어오는 현실이라며 "신시가지 개발도 좋지만 급수난부터 해결해 주길" 바라는 강남 주민들의 염원을 전한다.

영동 개발지구에는 생활 기반 시설이 미흡할 뿐 아니라 관할 구청이 두 곳이라 행정 절차와 민원 처리 차원에서 불편한 점도 많았다. 그래서 영등포구 신동출장소와 성동구 언주출장소를 통합해 1973년 7월 1일에 성동구 영동출장소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의 서초구 지역은 영등포구 관할에서 벗어나게 된다.
     

영동 개발지구의 1973년 항공사진노란 원은 현재 논현역 4거리다. 1973년 이전에는 사진 중앙의 아래로 향한 길(강남대로)을 기준으로 왼쪽은 영등포구 관할이었고 오른쪽은 성동구 관할이었다. 두 지역은 1973년에 '영동출장소'로 통합되었다. ⓒ 국토지리정보원

   
강남구 그리고 서초구

영동출장소는 영동1지구와 2지구에서 토지구획사업을 진행하며 이 지역이 농촌에서 도시로 변모할 수 있는 기초를 닦는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며 논현동 등 정리된 택지 단지에는 주택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한다.

역삼동과 서초동 등에는 향후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기반도 마련된다. 행정 수요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1975년 강남구가 성동구 관할에서 독립했다. 현재 서초구와 강남구인 영동출장소 관내는 물론 지금의 송파구와 강동구를 포함한 지역이다.
 

강남대로신사역에서 양재역 방향을 바라본 사진이다. 도로 왼쪽이 강남구, 오른쪽이 서초구다. ⓒ 강대호


만약 강남 개발의 상징을 꼽으라면 강남대로가 그 지위에 걸맞을지도 모른다. 한남대교 남단에서 양재역 방향으로 쭉 뻗은 이 도로는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를 이룬다. 강남 개발 초기 토지구획정리로 거의 일직선이 되었지만 과거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의 경계이기도 하고 50여 년 전 성동구와 영등포구의 경계이기도 하다.

강남과 서초가 공유하고 있는데 강남대로라는 이름은 왠지 편파적인 것 같지만 1976년에 그렇게 명명했다. 그때는 이 일대가 전부 강남구라서 강남대로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강 이남을 뜻하는 강남의 의미로 통용되는 듯하다.

한편, 서초구는 1988년에 강남구에서 독립했다. 이후에도 강남 3구로 불리며 서초는 여전히 사람들 뇌리에서 강남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영동이라는 지명은 언제부터인가 쓰이지 않는다. 지명에서 영등포의 영향을 느껴서일까. 지금은 오래전에 이름 지은 학교와 시장 그리고 지역 농협 등에만 흔적이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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