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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고 출퇴근 하는 40대 가장의 진짜 고충

장거리 출퇴근러 삶의 무게를 줄여주던 선반... 점점 사라져 아쉬워

등록|2022.09.28 04:53 수정|2022.09.28 07:57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3호선을 타고 출퇴근한다. 하루 왕복 2시간 34분 동안 3호선 안에 머문다. 아침에는 늘 자리가 없다. 지하철에 타면 가장 빨리 내릴 것 같은 사람을 추측해 그 앞에 서서 선반에 가방을 올린다. 물론 예측은 거의 실패다.

내 가방에는 책, 단백질 음료, 구운 계란 한두 알, 한끼 연두부, 명함 지갑, 마스크, 작은 우산 등이 들어 있다. 회사에서 먹을 아침 식사와 필수용품이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외근을 나갈 때는 노트북을 넣기도 한다.

요즘은 익숙하던 출근길에서 아침마다 가끔 난처한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바로 선반 없는 지하철 때문이다. 수년간 반복하던 출근길인데 최근에야 마주한 걸 보니 3호선에 도입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예전에 공항철도를 탔을 때 당연히 선반이 있는 줄 알고 무심코 가방을 던졌다가 그 아래 앉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 적 있다.

있어야 할 선반이 없다
 

▲ 지하철 3호선 신형 전동차 내부. 선반이 없다. 봉 하나 뿐이다. ⓒ 장한이


며칠 전, 비바람이 몰아치던 출근길 선반 없는 지하철에 올랐다. 좌석 아래쪽 바닥에 우산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몇몇 사람은 발밑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았고 문 옆쪽에 기대 놓기도 했다. 쇼핑백도 몇 개 보였다. 실외에 있는 역을 지나갈 무렵 지하철 바닥에 두어 줄기의 물이 흘러 들었다. 바닥에 놓인 면 소재의 백팩은 주인도 모르게 물을 머금었다.

둘 곳 없는 우산을 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지하철을 타고 약 50분 정도가 지나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서 있는 동안에는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본다. 책을 꺼냈다. 한쪽 팔에 토트백을 걸고 핸드폰과 책을 들었다.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책장을 넘기기도 수월치 않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앉아 있는 사람에게 가방이 닿았다.

눈이 몇 번 마주쳤다. 전철의 요동과 사람들의 밀도, 양팔의 불편함,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책을 접었다. 양팔을 내리고 음악을 틀고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점점 더 들어찼고 선풍기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이라 초가을인데도 등에서 땀이 흘렀다.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자꾸 불편한 일이 발생했다. 가방만 선반에 올리면 출근길의 질이 한 단계는 업그레이드될 텐데, 벌 서는 듯한 기분에 화도 났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피어올랐다. 이유가 궁금했다. '왜 선반을 없앤 거지?' 반복되는 불편함에 기사를 검색했다. 검색어 '선반 없는 지하철'
 

▲ 영화 <감시자들> 지하철 신 ⓒ (주)NEW


선반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테러로부터의 안전과 미관 때문이었다. 유실물 방지, 해외에서 사라지는 추세, 전동차 제작비 절감 등도 언급되었다. 선반 설치 유무도 노선별, 열차별로 달랐다.

2호선은 2017년 시범운행을 거쳐 순차적으로 선반 없는 열차를 도입했다. 2017년에 2호선 내 선반을 없앨 당시 시민 85%가 반대했다는 기사도 있다. 9호선은 애초에 개통 당시 노약자석에만 선반을 설치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8년까지 서울지하철 1∼8호선 전동차의 70%가 순차적으로 신형 전동차로 교체된다고 한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선반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서울교통공사에 세부 사항을 문의했더니 "2호선 3호선 신조 전동차는 현재 객실 내 선반이 없이 제작되고 있고, 5, 7호선은 앞으로 제작할 전동차에는 객실당 2개소의 선반이 설치될 예정이다"라며 "선반 이용 수요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하여 설계에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이미 결정돼 진행되는 사항이지만, '누구를 위한 조치일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선반 없는 지하철 도입을 결정한 이들은 지하철을 어떤 의미로 바라보았을까. 출퇴근길에 만원 지하철을 이용해 본 경험은 있을까. 실용성을 포기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풍경(미관)의 지하철을 선보이는 게 더욱 시급했던 걸까. 선반을 없애 비상 탈출을 용이하게 했다는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교통공사 운영 구간 기준 2021년 1~9호선 연간 총수송 인원은 약 19억 9935만 명이다. 지하철을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만, 출퇴근길 이용률이 가장 높다. 나 역시 사람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에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직장인이다. 철도 관계자가 제시한 명분이 과연 소시민들에게 크게 와 닿을까. 직접 들었지만 나는 아니다.

누가 이 무거운 짐을 이해할까
 

▲ 출근 시간 지하철 3호선 선반 위. 이 전동차에는 선반이 아직 있다. ⓒ 장한이


며칠 동안 지하철 선반을 유심히 둘러봤다. 대부분의 선반에 직장인의 가방이나 노트북, 쇼핑백 등 다양한 물건이 놓여 있었다. 새삼 소시민들의 어깨에서 작은 무게라도 덜어주는 동지 같은 기분을 느꼈다.

테러 방지. 중요하다. 만일의 사태를 위한 유비무환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만원 지하철에서의 두툼한 백팩 테러로 불편할 때가 더 많다. 선반에 오른 가방도 대부분 백팩이다. 뒤에 선 사람이 백팩을 앞으로 매고 출근하는 내내 등을 밀어대는 통에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서울메트로의 캠페인처럼 무조건 가방을 앞으로 멘다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

무더운 여름 땀 흘리며 승차한 지하철에서라도 등에 흐르는 땀을 식히고 싶다. 선반이 없으면 바닥에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내려놓지 못할 짐도, 가방도 있다. 노트북을 들고 출근하던 아침에 선반 없는 지하철에 올랐다.

아무것도 못 하고 양손 번갈아 가방을 들다가 발등에 살며시 올려 무게를 줄였다. 새로 산 가방을 차마 바닥에 내려놓기는 싫었다. 이따위 소소한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니 나 자신이 참 초라했다. 이래저래 소소한 일에 마음 상하는 직장인의 삶이다. 선반이 묵묵히 해결해 주던 불편함이다.

한낱 예민한 직장인의 거창하지 않은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직장인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공감하지 못할 만큼 소소한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새로 생긴 것과 있다가 사라진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더욱이 그것을 매일 이용하던 사람은 크게 체감한다.

특히 관절과 허리에 무리가 가는 중년 직장인의 출퇴근 길, 피곤함을 잔뜩 달고 다니는 직장인에게 작은 무게가 커다란 삶의 무게로 다가올 때도 있다. 어른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여주던 선반이기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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