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묻어주는 독거노인... "의미 없는 존재 없어"
[2022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사라지는 것들> 김창수 감독 인터뷰
▲ 애니메이션 <사라지는 것들>을 만든 김창수 감독 ⓒ 김진수
허름하고 스러져 가는 집들만 남은 재개발 지역. 죽은 길고양이 위로 파리떼가 들끓고 있다. 고양이를 발견한 사람은 이곳에 사는 여성 독거노인. 그는 고양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노랭이'라고 적힌 팻말을 세운다. 이 노인이 그렇게 묻어준 고양이가 이미 여러 마리. 그렇게 홀로 지내던 노인은 어느 날 종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간다. 길고양이들이 상여를 매고 지나가고 있다.
애니메이션 <사라지는 것들>은 10분 분량의 단편이다.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쓸쓸한 독거노인과 길바닥에서 죽은 길고양이의 짧은 만남을 통해 소외된 것들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어딘가 닮은 이들은, 말 한마디 없이 서로의 마지막을 보듬는다.
24일 만난 김창수(50) 감독은 "독거노인과 길고양이는 소외된 존재지만 그들이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관계가 생기면서 어떤 존재에게도 의미 없는 삶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세상에서는 보잘것없이 살았을 수 있지만 하나의 존재로 본다면, 내가 했던 선의의 행동으로 다른 존재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있다"고 했다.
"혼자 죽는 것에 대해 생각"
▲ 김창수 감독의 <사라지는 것들>의 한 장면.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이번 애니메이션의 출발은 김 감독이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연관 있다. 김 감독이 서른 살 초반일 때 지방에서 혼자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는 "자식으로서 혼자 돌아가시게 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도 있고 충격이었다"며 "혼자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나온 감독의 첫 작품 <어둠의 저편>(2015)은 아버지를 상기하는 작품이었다. 어머니와도 어쩔 수 없이 따로 살 수밖에 없었던 김 감독은 어머니를 떠올리고 들여다봐야 겠다고 결심해 작품을 만들었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탄생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올 초에 돌아가셔서 애니메이션을 보진 못했다고 한다.
김 감독과 함께 사는 고양이 콩이(9)도 애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됐다. 그는 "고양이가 나이 들어가는 걸 보며 사라진다는 건 사람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기획 당시 자료 사진을 위해 당고개와 아현동 재개발 지역 등을 돌아다녔는데 실제로 빈집과 지붕에 고양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 없는 김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단편을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고 졸업 후 홀로 만화책 등을 보며 홀로 습작하고 군 제대 후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게 시작이다.
▲ 애니메이션 <사라지는 것들>의 한 장면.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중국 티비시리즈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했고 <마법천자문: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2010)와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3)에서는 작화감독을 맡았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2011)에서는 애니메이션팀 소속으로 원화와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러다 남들보다 꽤 늦은 마흔네 살에 첫 단편 <어둠의 저편>을 만들고 세 번째 단편 <먹이들>(2020)을 만들 때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작품에 몰두했다. 이제 단편을 네 편 만든 그는 언젠가는 장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나이가 있으니까 (작품을 만들)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섯 번째 단편 애니메이션 <엄마를 부탁합니다>(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노인부양에 관한 내용으로 이번에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병든 부모를 요양원에 보냈다 돌아왔을 때 겪는 이야기예요. 어머니가 혼자 계시다가 요양원에 가셨고 그 이후 다시 나오시는 과정을 봤어요.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도, 요양원에 계시는 걸 보는 것도 힘들잖아요. 그런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사라지는 것들>은 9월26일 오후 1시 <독립보행2> 상영 때 볼 수 있으며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 홈페이지 <http://www.ianifest.org/index.asp>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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