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미 화백 ⓒ 이종미
서울 도봉구에 사는 이종미 시인은 나이가 팔순이 다 되어 첫 시집을 펴냈다. 1944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치면 내년에 팔순이 된다. 그녀는 이미 이십 년 전에 수필가로 등단했고, 그로부터 십 년 만에 수필집을 냈다. 사진과 수필을 함께 엮은 사진 수필집이었다. 그리고 또 십 년이 지난 요즘 그녀는 시(詩) 쓰는 일에 빠져있다. 매일 시를 쓴다. 오랫동안 시를 써왔던 시인들도 매일같이 시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늦바람이 아닌가!
수필가였던 그녀가 시에 빠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종미 시인은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사진작가라는 말은 아니다. 요즘은 성능 좋은 카메라가 탑재된 휴대폰이 일반화되어 누구나 쉽게 어디서나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일이 많다.
▲ 이종미 시인 ⓒ 이종미
그렇게 건강한 취미를 갖고 지내던 이종미 시인에게 어느 날 눈이 번적 뜨이는 소식이 전해졌다. 구청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에 사진을 찍고 그 느낌을 시로 표현하는 디카시 창작교실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틈틈이 수필을 쓰면서도 언젠가는 시를 써 보겠노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야말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사진을 찍어서 시를 쓴다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이종미 시인은 구청에서 진행하는 디카시 창작반에서 공부했다. 그곳에는 나이가 대체로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종미 시인은 좀 더 많은 편인데, 누구보다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시를 썼다. 들은 바로는 몇 개월 만에 수백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니 정말 늦바람이 나도 단단히 난 것이다.
이종미 시인의 시집 '거미 화백'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녀는 그 책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반성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짧다. 아름다운 자연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내 감정선은 둔해질 것이고, 딸들과의 이별의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다."
정말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그대로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이별해야 하는 대상을 이야기하며 노년의 회한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한 노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을 하나 소개한다.
▲ 너를 보러 가는 길 ⓒ 이종미
너를 보러 가는 길
붉은 여뀌가 멀리서 손짓한다
징검다리를 건너서 오라고
튼튼한 돌다리 건너는 것도
조심스러운 내 몸의 둥근 나이테
구청에서 진행하는 디카시 창작교실의 지도강사인 손설강 시인은 그 책에 실린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종미 시인을 떠올리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대중가요가 떠오른다. 두 해만 지나면 80세인데, 딱 열여덟 수줍은 소녀다. 매사에 열정이 얼마나 많은지 디카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이종미 시인의 글이 꼭 있다. 백 편을 상재했으니 아마 오백 편 이상은 썼을 것이다."
끝으로 송재옥 수필가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나는 늦바람 난 청춘을 알고 있다. 그는 동창으로 번지는 아침노을을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하늘 사진을 찍으며 바람난 디카시로 노래한다. 저녁노을이 지면 열정으로 산 하루를 돌아보며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디카시로 마무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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