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물난리... 35년 전에도 '수중상가 된 지하상가'
수십 년간 세운 수해 방지 대책에도 되풀이... '대심도 빗물터널'이 막아줄까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기자는 반포동 고속도로 진출로 근처에서 버스를 내려야 했다. 폭우로 터미널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 방향인 강남역을 향해 걸었는데 그 일대도 물바다였다. 고지대인 테헤란로에 들어서자 길이 드러났다. 거기서 기자는 집이 있는 역삼동까지 걸어가야 했다.
지난 8월 8일의 폭우로 경험한 일이 아니다. 35년 전인 1987년 7월에 기자가 겪은 일이었다. 한강에 면한 강남 지역은 예로부터 큰 비가 내리면 물난리가 반복되곤 했고 재발 방지책도 꾸준히 마련되곤 했다. 그런데도 비슷한 침수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저지대인 강남 일대의 지형적 요인과 근시안적인 수방 대책이 만나서 극대화된 결과였다.
비만 오면 고립되는 잠원동?
한남대교 남단 아래에는 예로부터 나루터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사평나루가 있었고, 해방 후 신사동에는 새말나루가 잠원동에는 잠원나루가 있었다. 이 나루터들은 한국전쟁 후 강북 도심으로 채소를 공급하는 강남 지역 농민들의 물류기지 역할을 했다. 또 한강 이남이 서울로 편입한 뒤에는 강북의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강남 주민들이 이용하는 나룻배 정류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큰 비가 오면 뱃길이 끊겨 한강과 가까운 강남 지역은 고립됐다. 1969년 8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린 '서울의 나루터 근대화 속의 낙도 (하) 비만 오면 고립되는 잠원동 일대' 기사를 보면 나룻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오래전 강남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기사는 오랜 장마가 끝나고 한 달 만에 뱃길이 열린 잠원동 나루터의 모습을 전한다. 나루터는 서울로 오가는 직장인과 학생들로 새벽 5시부터 붐비고 있었는데 그동안 뱃길이 끊겨 제대로 출근하지 못한 직장인이나 등교하지 못해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학생의 말을 인용해 외진 강남에서 사는 주민들의 불편한 생활상을 알린다.
잠원동 나루터는 또한 "영등포구 반포동 잠원동과 성동구 신사동의 3천여 주민들의 서울에 나다니는 유일한 교통로"라며 만약 나룻배가 운행하지 않는다면 인근 주민들은 "최소한 10여리 길을 걸어 동작동 끝 이수교까지 나가" 버스를 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기사는 비만 오면 고립되는 잠원동을 "근대화 속의 낙도(落島)"로 칭하며 주민들이 "꼬박 고립된 섬 생활"을 한다고 묘사한다. 다만 1969년 말에 제3한강교, 즉 한남대교가 완공되면 잠원동 등 강남 주민들의 고립된 섬 생활은 나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한남대교가 완공된 수년 후인 1973년 2월 <동아일보>에 '강남 연안이 강북보다 물에 약하다'라는 기사를 볼 수 있다. 1972년 서울 등 수도권에 큰 홍수를 겪은 후 정부는 한강 연안의 항공사진으로 지형분석을 해서 수해 대책을 세웠는데 이에 관한 분석 기사다.
정부는 잠원동 등을 홍수 시 한강이 범람하는 침수 취약 지역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일부 강남 지역도 배수가 잘 안 되어 침수되는 곳으로 지목했다. 기사는 강남 지역이 한강에 면한 저지대라 범람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데다 인근 지역에 배수 시설까지 부족하다는 점들을 지적한다.
정부는 이렇게 파악한 침수지역에 대해 수방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힌다. 그 대책으로 하천 주변 제방 쌓기와 배수시설 정비 등을 들었다. 그런데 이 대책은 실천으로 이어졌을까?
위 기사가 나간 4년 후인 1977년 7월 <동아일보>는 '문제점 강타당한 겉치레…. 하수불비(下水不備)의 참변'이라는 기사를 낸다. 서울에 큰 비가 내렸는데 "하수시설이 제대로 안 된 강남 지역의 피해가" 컸음을 밝히는 기사다. "대부분 인명과 재산 피해는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주택가로 몰려드는 바람에" 발생했다고.
기사는 특히, "하수시설이 된 곳은 대부분 강북지역으로 강남 지역 등 신개발 지역 변두리 지역은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특히 '영동', 즉 강남을 꼽는다. 배수시설이 부실해 큰 비만 오면 물난리가 나는 강남 등 변두리 지역에 배수시설 확충 등 실질적 수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기사는 강조한다.
기시감이 든 강남역 물난리
위 <동아일보> 기사가 나온 후 10년이 흐른 1987년 여름, 기자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남은 또 물난리를 겪었다. 당시 기자는 여름방학을 만끽하던 대학생이었는데 여행의 기억보다 홍수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 장면들은 과거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87년 7월 27일의 '새벽잠 덮친 기습 폭우' 기사는 서울 지역에 폭우가 내린 모습을 전한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새벽이 되며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로 쏟아져 서울 저지대 곳곳이 침수되었다고.
특히 지금의 신논현역 일대와 논현초등학교 근처에 수재민이 발생했고, 강남역 지하상가와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가 물에 잠겼다고 전한다.
기자는 폭우가 내린 전날 밤 지방의 친구 집에서 올라오던 길이었다. 자정쯤 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폭우로 고속도로의 차들은 거의 기다시피 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는데 반포동 일대는 물바다가 되어 버스가 진입할 수 없었다.
<매일경제>는 1987년 7월 27일 신문 1면에 물바다가 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 도로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수중상가 된 강남 지하상가' 기사에서 강남 지역의 수해를 자세히 전한다.
특히 서울 강남구 반포1·2·3동, 역삼동, 잠원동, 서초2동, 신사동 일대 주민들이 대피했고, 강남역 앞길과 영동시장 앞길, 그리고 교대 앞길 등이 물에 잠겨 차량 통행이 어렵다고 전한다. 또한 도로 곳곳에는 시동이 꺼진 차들이 방치되어 있고 출근을 포기한 시민들도 있다고 전한다.
강남의 물난리를 다룬 과거 기사들을 보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그 모든 장면이 35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2022년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장면이 벌어졌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책을 알면서도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대책
1987년 강남 등 수도권 폭우로 인한 수해를 다룬 기사들을 보면 워낙 많이 내린 비를 원인으로 꼽지만, 평소 수방 대책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인재라고도 이유를 댄다. 반포동 등의 유수지들은 쓰레기로 배수로가 막혀 인근 지역으로 물이 흘러넘쳤고 강남 지역은 하수관로 등 배수시설이 부족해 침수 피해가 났다고 분석한다.
이후에도 큰 비를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강남역 일대 및 침수 취약 지역 종합배수 개선대책>을 내놓았는데 1조 4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서 강남역 등 주요 침수 취약 지역에 수방 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지난 8월 8일 강남은 또다시 물난리를 겪었다.
이에 서울시는 기존 배수 시설 용량으로는 기록적 폭우를 견디지 못하니까 '대심도 빗물터널'을 뚫겠다고 밝혔다. 9월 들어 서울시는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수렴을 통해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지난 29일에는 '기본계획용역' 공고를 내며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강남 지역 수해 방지를 위한 새로운 대책이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주목해본다.
지난 8월 8일의 폭우로 경험한 일이 아니다. 35년 전인 1987년 7월에 기자가 겪은 일이었다. 한강에 면한 강남 지역은 예로부터 큰 비가 내리면 물난리가 반복되곤 했고 재발 방지책도 꾸준히 마련되곤 했다. 그런데도 비슷한 침수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저지대인 강남 일대의 지형적 요인과 근시안적인 수방 대책이 만나서 극대화된 결과였다.
한남대교 남단 아래에는 예로부터 나루터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사평나루가 있었고, 해방 후 신사동에는 새말나루가 잠원동에는 잠원나루가 있었다. 이 나루터들은 한국전쟁 후 강북 도심으로 채소를 공급하는 강남 지역 농민들의 물류기지 역할을 했다. 또 한강 이남이 서울로 편입한 뒤에는 강북의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강남 주민들이 이용하는 나룻배 정류장이 되기도 했다.
▲ 신사동 네거리의 나루터로 입구나루터로는 신사동 네거리에 잠원동 방향으로 가는 도로다. 오래 전 잠원동 한강 변에 나루터가 자리했어서 붙인 이름이다. ⓒ 강대호
하지만 큰 비가 오면 뱃길이 끊겨 한강과 가까운 강남 지역은 고립됐다. 1969년 8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린 '서울의 나루터 근대화 속의 낙도 (하) 비만 오면 고립되는 잠원동 일대' 기사를 보면 나룻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오래전 강남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기사는 오랜 장마가 끝나고 한 달 만에 뱃길이 열린 잠원동 나루터의 모습을 전한다. 나루터는 서울로 오가는 직장인과 학생들로 새벽 5시부터 붐비고 있었는데 그동안 뱃길이 끊겨 제대로 출근하지 못한 직장인이나 등교하지 못해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학생의 말을 인용해 외진 강남에서 사는 주민들의 불편한 생활상을 알린다.
잠원동 나루터는 또한 "영등포구 반포동 잠원동과 성동구 신사동의 3천여 주민들의 서울에 나다니는 유일한 교통로"라며 만약 나룻배가 운행하지 않는다면 인근 주민들은 "최소한 10여리 길을 걸어 동작동 끝 이수교까지 나가" 버스를 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기사는 비만 오면 고립되는 잠원동을 "근대화 속의 낙도(落島)"로 칭하며 주민들이 "꼬박 고립된 섬 생활"을 한다고 묘사한다. 다만 1969년 말에 제3한강교, 즉 한남대교가 완공되면 잠원동 등 강남 주민들의 고립된 섬 생활은 나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 1970년대 초 잠원동 일대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개통 무렵의 잠원동 일대의 모습이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그런데 한남대교가 완공된 수년 후인 1973년 2월 <동아일보>에 '강남 연안이 강북보다 물에 약하다'라는 기사를 볼 수 있다. 1972년 서울 등 수도권에 큰 홍수를 겪은 후 정부는 한강 연안의 항공사진으로 지형분석을 해서 수해 대책을 세웠는데 이에 관한 분석 기사다.
정부는 잠원동 등을 홍수 시 한강이 범람하는 침수 취약 지역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일부 강남 지역도 배수가 잘 안 되어 침수되는 곳으로 지목했다. 기사는 강남 지역이 한강에 면한 저지대라 범람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데다 인근 지역에 배수 시설까지 부족하다는 점들을 지적한다.
정부는 이렇게 파악한 침수지역에 대해 수방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힌다. 그 대책으로 하천 주변 제방 쌓기와 배수시설 정비 등을 들었다. 그런데 이 대책은 실천으로 이어졌을까?
위 기사가 나간 4년 후인 1977년 7월 <동아일보>는 '문제점 강타당한 겉치레…. 하수불비(下水不備)의 참변'이라는 기사를 낸다. 서울에 큰 비가 내렸는데 "하수시설이 제대로 안 된 강남 지역의 피해가" 컸음을 밝히는 기사다. "대부분 인명과 재산 피해는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주택가로 몰려드는 바람에" 발생했다고.
기사는 특히, "하수시설이 된 곳은 대부분 강북지역으로 강남 지역 등 신개발 지역 변두리 지역은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특히 '영동', 즉 강남을 꼽는다. 배수시설이 부실해 큰 비만 오면 물난리가 나는 강남 등 변두리 지역에 배수시설 확충 등 실질적 수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기사는 강조한다.
기시감이 든 강남역 물난리
위 <동아일보> 기사가 나온 후 10년이 흐른 1987년 여름, 기자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남은 또 물난리를 겪었다. 당시 기자는 여름방학을 만끽하던 대학생이었는데 여행의 기억보다 홍수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 장면들은 과거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87년 7월 27일의 '새벽잠 덮친 기습 폭우' 기사는 서울 지역에 폭우가 내린 모습을 전한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새벽이 되며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로 쏟아져 서울 저지대 곳곳이 침수되었다고.
특히 지금의 신논현역 일대와 논현초등학교 근처에 수재민이 발생했고, 강남역 지하상가와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가 물에 잠겼다고 전한다.
▲ 동아일보 '새벽잠 덮친 기습 폭우' 기사1987년 7월 27일의 기사다 ⓒ 동아일보
기자는 폭우가 내린 전날 밤 지방의 친구 집에서 올라오던 길이었다. 자정쯤 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폭우로 고속도로의 차들은 거의 기다시피 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는데 반포동 일대는 물바다가 되어 버스가 진입할 수 없었다.
<매일경제>는 1987년 7월 27일 신문 1면에 물바다가 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 도로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수중상가 된 강남 지하상가' 기사에서 강남 지역의 수해를 자세히 전한다.
특히 서울 강남구 반포1·2·3동, 역삼동, 잠원동, 서초2동, 신사동 일대 주민들이 대피했고, 강남역 앞길과 영동시장 앞길, 그리고 교대 앞길 등이 물에 잠겨 차량 통행이 어렵다고 전한다. 또한 도로 곳곳에는 시동이 꺼진 차들이 방치되어 있고 출근을 포기한 시민들도 있다고 전한다.
▲ 매일경제의 '물바다 서울' 기사1987년 7월 27일 기사로 물바다가 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 도로 사진이다. ⓒ 매일경제
강남의 물난리를 다룬 과거 기사들을 보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그 모든 장면이 35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2022년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장면이 벌어졌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책을 알면서도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대책
1987년 강남 등 수도권 폭우로 인한 수해를 다룬 기사들을 보면 워낙 많이 내린 비를 원인으로 꼽지만, 평소 수방 대책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인재라고도 이유를 댄다. 반포동 등의 유수지들은 쓰레기로 배수로가 막혀 인근 지역으로 물이 흘러넘쳤고 강남 지역은 하수관로 등 배수시설이 부족해 침수 피해가 났다고 분석한다.
▲ 2022년 8월 8일의 강남 물난리당시 큰비로 강남의 한 빌딩 지하주차장에 물이 들어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 강대호
▲ 2022년 8월 8일의 강남 물난리로 침수된 차량물이 빠진 뒤에도 침수된 차량이 서초대로에 방치되어 있다. ⓒ 강대호
이후에도 큰 비를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강남역 일대 및 침수 취약 지역 종합배수 개선대책>을 내놓았는데 1조 4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서 강남역 등 주요 침수 취약 지역에 수방 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지난 8월 8일 강남은 또다시 물난리를 겪었다.
이에 서울시는 기존 배수 시설 용량으로는 기록적 폭우를 견디지 못하니까 '대심도 빗물터널'을 뚫겠다고 밝혔다. 9월 들어 서울시는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수렴을 통해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지난 29일에는 '기본계획용역' 공고를 내며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강남 지역 수해 방지를 위한 새로운 대책이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주목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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