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주제삼은 많은 시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 42] 아리랑은 솔직한 사랑의 실토이며 이별의 한이 잠겨 있다
▲ 영암기찬랜드에 세워져 있는 하춘화의 '영암아리랑' 노래비. 엄길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환의가 노랫말을 썼다. ⓒ 이돈삼
아리랑은 많은 시인들의 시의 소재가 되었다.
노래보다 시의 숫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한말과 일제강점기 이래 시인들에게 아리랑은 좋은 글감이었다. 사랑과 이별, 원한과 해원. 우국과 저항 그리고 넉넉하고 넘치는 후렴이 글쟁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바로 시와 소설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향토색'은 물론 각자의 성향이 다른 시인들이 아리랑 관련 시를 남겼다. 따지고 보면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처럼 난감한 문제이지만, 구전민요는 시가가 없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데 비해 현대에는 시에 곡을 붙혀 노래로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남 아리랑>과 <홀로 아리랑> 등이 이에 속한다. 아리랑을 소제로 하는 시 몇 수를 소개한다.
▲ 5월 30일 노산공원 중턱에 세워진 최송량 시인의 ‘삼천포 아리랑’ 시비(詩碑). ⓒ 뉴스사천
아리랑 영감
고 은
박판술 영감이 지나가면
우리는 육자배기가 지나간다고 했지
그가 논두렁에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육자배기가 뻗어 있다고 했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에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 동지섣달이 뻗어 있다고 했지
육자배기하고
동지섣달하고 그렇게도 잘 부르더니
그 늙은 홀아비 판술 영감은
죽기 이틀 전에도
병든 몸 끌고 토방에 나와
한바탕 진도아리랑 불러댔지
죽 한 사발 끓여줄 사람도 없어서
혼자 기어나와 죽 끓여먹고 간장 먹고 앓은 영감
그러던 그 영감 토방에 나왔으니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저 영감 살아날라나보다 힘차다 했는데
다음 다음날로
그만 힘차게 이 세상 후딱 떠나버렸지
동네사람들 새로 짠 가마니 두어 장 내다가
둘둘 말아
남생이 언덕 바람 속에
홀아비 송장 묻으며
이구동성으로 날 좀 보소 불러 주었지
그 뒤 괜히 바람 치는 밤이면
남생이 언덕 평토장한 무덤에서
그 영감 육자배기도 진도아리랑도 들린다 했지
생전보다 더 기막히게 부르는 진도아리랑 들린다 했지. (주석 2)
아 리 랑
정공채
캄캄한 날에
그저 지게 목발이야
어이 그저 앞에 간달 수도 없고
어이 그저 뒤에 간달 수도 없네
인생의 구비야
마음에는 한
육신에는 골병인걸
아무리 잘 살아도 제 마음 속일 수야
아무리 못 살아도 제 팔자 버릴 수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해 뜨면 꽃 볼 거냐
달 뜨면 님 볼 거냐
아리랑 아라리요 긴 아리랑.(후략) (주석 3)
주석
1> 임동권, <한국의 민요>, 34쪽.
2> 고은, <만인보1>, 창작과비평사, 1986.
3> 정공채, <아리랑>, 오상, 1986.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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