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동안 몽골만 5번 여행, 이유가 뭐냐고요?
[몽골동부여행기1] 사람의 허벅지뼈로 만든 피리부터 두개골 법구까지
▲ 초이발상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로 오른쪽에 전시된 물품은 18세 처녀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이고 왼쪽 바가지 모습으로 반짝거리는 물품은 죽은 사람의 두개골로 만든 법구이다. ⓒ 오문수
몽골을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는 초원이 주는 자유로움과 지척에서 수천 마리의 동물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수는 2020년 기준 6700만 마리(몽골통계청)로 몽골인 1인당 평균 20두 이상을 기르고 있다.
몽골을 여행하다 보면 길을 가로막는 수많은 동물을 만난다. 몽골 동부에 위치한 도르노드 아이막과 수흐바타르 아이막을 10일간 여행할 동안 도로를 가로막는 몽골 5축(말, 낙타, 소, 양, 염소)을 100번 이상 만났다. '아이막'은 우리의 도와 같은 행정구역 명칭이다.
▲ 몽골을 대표하는 칭기즈칸 동상 앞 나무에도 단풍이 들었다 ⓒ 오문수
▲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활쏘기 연습하는 관광객 모습으로 과녁이 소가죽으로 되어 동물이 얼마나 흔한지 짐작할 수 있다. ⓒ 오문수
인간이 자신들을 크게 위협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아는 동물들은 느릿느릿 거리를 활보하다가 운전사가 경적을 울려야만 가는 길을 비켜주었다.
필자는 2014년 지인 3명과 함께 아프리카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잠비아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를 2박 3일간 여행한 적이 있다. 택시를 빌려 2박 3일간 2400㎞를 여행하는 동안 새벽 3시까지 운전사 옆에서 이야기했다. 영어를 제법 잘하는 운전사 '아이사'가 졸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졸음을 참으며 차창 너머를 바라보던 내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도로 옆을 걸어가고 있었다. 운전사 '아이사'에게 "저러다 사자라도 나오면 어떡해?"하고 묻자 깔깔웃던 그가 말했다. "길거리에서 가끔 하이에나는 나와도 사자는 없어요. 사자는 사파리에서만 살아요." 그때서야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영상매체가 지나치게 연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박3일 간의 장거리 여행 중 만난 육상동물은 하이에나 한 마리에 불과했다.
고조선유적답사단 안동립 단장과 필자가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자 반갑게 맞이해준 이는 저리거씨. 한국말이 유창한 가이드이자 운전사이기도 하다. 야영 장비를 미리 준비한 저리거씨가 두 명의 배낭을 트렁크에 실은 후 곧바로 동몽골을 향해 출발했다.
▲ 창기스시를 거쳐 초이발상까지 가려다 중도에서 야영텐트를 친 일행 모습. 아침 일찍 일어나니 몽골초원의 주인인 말들이 구경하러 왔다. ⓒ 오문수
브라질 아마존 한 가운데에 깊은 정글이 있고, 북극에 훼손되지 않은 툰드라가 있다면 몽골 동부에는 또 다른 생태계를 품은 스텝지대가 드넓게 펼쳐진다. 몽골 동부에는 끝없는 밀경작지와 몽골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전지대도 있다.
몽골 서부에 아름다운 경치와 볼거리가 있다면 동부는 승용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몽골 동부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서 몽골 동부여행을 선택할 여행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헤아려보니 2018년 필자가 몽골 여행을 시작한 이래 다섯 번 여행한 길이가 3만 킬로미터쯤 된다. 한반도의 8배 크기에 달하는 몽골의 동서남북과 4계절을 경험해보았고 몽골 21개 아이막 중 19개를 돌아보았다.
볼거리와 놀거리 먹거리를 찾는 관광지와는 멀 것 같은 동부임에도 불구하고 안동립 대표와 필자가 몽골동부여행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한국인의 뿌리가 숨어있다는 자료를 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인터넷과 백과사전을 찾으면 관련 자료가 널려 있는데 굳이 시간을 낭비하고 경비를 들여서까지 현지를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고.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는 "우리 인간은 분산지능으로 이뤄졌기에 마음은 뇌만의 작용이 아니라 온 몸의 작용이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현장을 찾지 않고 논문이나 학술서적만 읽으면 현장에서 풍겨오는 정확한 분위기와 맛이 나지 않는다.
현장을 보고 나면 현장이 주는 감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물론 시공간의 한계와 학술 연구에 바탕을 두지 못한 한계는 있어도 책상머리에서 글 쓰는 탁상공론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칭기즈칸 동상 인근지역에 서있는 간판으로 '수원시민의 숲 조성지'란 팻말이 보인다. 몽골 곳곳에는 몽골산림녹화를 위해 한국인들이 심은 조림지가 여러 곳 있다. ⓒ 오문수
5대양 6대주를 돌아본 필자가 몽골을 다섯 번이나 방문한 이유가 있다. 2005년에 부조리한 사회에 분노해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1400여 개의 글을 썼고 일흔을 코앞에 뒀으니 이제 글을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라지고 평정심으로 돌아왔으니 펜을 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가진 자들의 오만함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을 찾아낸 건 덤이다. 당시 분노로 치를 떨며 울었지만 이제 더 이상 울지 않고 웃으며 산다. 몽골을 열심히 돌아보고 공부하는 이유는 죽기 전에 뭔가 하나는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나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한반도인의 뿌리 찾아 나선 몽골 동부 여행
울란바타르를 떠나 칭기즈칸 동상을 지난 차가 '칭기스' 시가지에 들러 기름을 넣고 동부 최대도시 초이발상을 향해 가는데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 아스팔트 도로가 움푹 패어 도저히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칭기스시에서 초이발상으로 가는 50킬로미터는 도로 곳곳에 웅덩이가 패여 달릴 수가 없었다. 운전사들은 일명 '지옥길 50킬로미터'를 피해 도로옆 초원길로 달리고 있었다. 이 길은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초원길이 훨씬 빠르고 승차감이 좋았다. ⓒ 오문수
'지옥길 50㎞'라더니 지독하다. 패인 웅덩이를 피해 차가 비틀거리고 트렁크에 실은 짐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자 저리거씨는 아예 길옆에 난 초원길로 비켜나 달린다. 흙먼지는 나지만 오히려 훨씬 잘 달리며 푹신한 승차감이 더 좋았다.
영하 40도에 이르는 극한 추위와 여름에 30도를 웃도는 날씨. 12톤 이상의 트럭이 다녀 길이 망가졌을 수도 있지만 부실공사가 원인이지 않을까? '지옥구간'을 지나 만난 도로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 도로를 달리다가 독수리와 싸우는 여우를 발견하고 차를 돌리니 독수리가 날아가버렸다. 놀라서인지 아니면 독수리를 쫓아준 인간이 고마워서인지 한참 동안이나 멋진 포즈를 취해줬다. 스포츠 모드로 촬영한 장면이다. ⓒ 오문수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던 운전수 저리거씨가 갑자기 "저기 독수리와 여우 좀 봐요"라며 차를 돌려세웠다. 창밖을 보니 독수리가 여우를 낚아채려고 하고 있었고 여우는 맞서 싸우고 있었다. 카메라를 재빨리 스포츠 모드로 바꿔 사진을 찍자 독수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자신을 살려 준 인간이 고마운지 여우는 한참동안 우리를 바라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고마워서일까? 아니면 놀라서일까?
초이발상, 몽골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행정중심지
초이발상은 몽골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행정중심지다. 초이발상은 몽골의 다른 도시와 달리 러시아식 건물이 많았고 약간 음울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의 절반은 1990년 러시아가 갑자기 철수한 뒤 심각하게 약탈당했다고 한다.
▲ 초이발상 시가지에 서있는 알랑고아 동상. 몽골족의 어머니로 여겨지는 알랑고아 전설은 고구려의 주몽이나 유화전설과 유사하다 ⓒ 오문수
수백년 전 몽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던 초이발산은 무역중심지였고, 동북아시아를 관통하는 대상로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1941년 스탈린의 추종자였던 독재자 호를로강 초이발산이 권좌에 있을 당시 그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초이발상은 바이칼에서 홉스골, 불칸산으로 이어지는 초원길로 중국 후륜페이얼 초원과 흥안령을 너머 우리 민족의 이동로의 중간 기점으로 지금도 북한에서 탈출한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오는 곳이다.
전염병이나 질병으로 사망한 처녀의 뼈로 만든 피리
흙먼지에 찌들린 몸을 씻기 위해 대중목욕탕에 들른 후 곧바로 초이발상 박물관을 관람했다. 다양한 소장품은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부터 공산주의 시대와 그 이후까지 아우르는 도르노드의 역사를 보여준다. 3년전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에는 힐힌골 석인상 모형이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 지 없다. 당시 박물관을 관람하던 중 궁금한 게 있어 확인차 관리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 초이발상 박물관 모습으로 전면에 초이발상의 동상이 서있다. ⓒ 오문수
▲ 초이발상 박물관 앞에 있는 몽골 영웅기념물로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군인 조각상이 있는 거대한 아치형 기념물이다. 스탈린 양식으로 지어진 기념물 뒤에는 전쟁터로 향하는 기병의 모습이 담겨진 모자이크가 있고 옆에는 1939년 할힌골 전투 당시 사용되었던 구소련제 탱크가 전시되어 있다. ⓒ 오문수
"2층 관람실에 전시된 피리가 살아있는 사람의 뼈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예! 남자와 성관계 경험이 없는 살아있는 18세 처녀의 뼈로 만들었어요."
"정말이냐?"고 물어도 "사실이란다" 살아있는 사람의 뼈로 피리를 만들었다는 말을 수긍할 수 없어 귀국 후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했던 궁인창씨에게 물었더니 답장이 돌아왔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살인은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결혼하기 전인 젊은 처녀들이 전염병이나 사고로 갑자기 죽으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 뼈를 이용해 악기를 만듭니다."
티베트불교에서 사용하는 법구(法具)는 사람의 뼈로 만든 '깡링(KangLing)'과 '퇴빠(Thipa)'가 있다. 부처를 공양하기 위해 만드는 도구를 사람의 뼈로 만듦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한순간이며 무상(無常)함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티베트어로 다리는 '깡(Kang)'을 뜻하며, '링부(Lingbu)는 피리를 뜻해 둘을 합성한 '깡링'은 '다리뼈로 만든 피리'라는 뜻이다.
법구는 죽을 때 청정한 죽음을 맞이한 16~60세 사이의 죽은 이의 뼈로 만들며 가장 완벽한 뼈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브라만계급의 아이 뼈라고 한다. 또한 뼈는 반드시 불교 신자의 것이라야 한다.
전시실 왼쪽에 바가지처럼 생겨 반짝거리는 것은 사람 두개골로 만든 법구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처녀 허벅지뼈로 만든 피리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한순간이며 무상임을 깨닫게 하기위해 만든 법구라지만 묘한 생각이 들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