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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리치' 탈북인 모자의 진짜 남한 정착기

[인터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엄마, 영순> 이창준 감독

등록|2022.10.04 20:08 수정|2022.10.05 10:44

▲ 다큐멘터리 영화 <엄마, 영순>의 한 장면.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순씨는 바쁘다. 경마장 푸드트럭 사장님으로,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며 하루하루 늘어나는 통장 잔고를 보는 낙에 산다. 영순씨는 엄마다. 말 안 듣는 둘째 아들 소사랑 푸드 트럭 일도 같이 하는데 좀처럼 대화가 안 통한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아들이 말을 도통 안 듣는 데다 힘들게 번 돈을 자꾸 허투루 써버려서 골치가 아프다.

여기까진 여느 한국사회 중년의 엄마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영순씨는 탈북인이다. 남한 사회에서 '억척 엄마'의 생존기는 그리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탈북인이 남한 사람과 똑같이 사는 건 얘기가 조금 다르다. 게다가 영순씨는 아들과의 일상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그야말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센' 캐릭터다.

북한에서 천재소리를 들었지만 2004년 아버지의 학대를 못 이기고 행방불명된 첫째형의 그늘 밑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소사는 억척 같은 어머니를 고마워하기는커녕 퉁명스럽기 그지 없다. 그와 반대로 친구들이나 목사님 가족에겐 또 세상에서 둘도 없을 '사람 좋은' 북한 청년 그 자체다.

이 모자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이 모자의 남한 생활 적응기는 평탄할 수 있을까. 전작 <왕초와 용가리>에서 영등포 쪽방촌 구성원들에 카메라를 가져갔던 이창준 감독의 신작 <엄마, 영순>은 3년에 걸쳐 이런 흔치 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이창준 감독이 노숙자에 이어 탈북인에 카메라를 돌린 작품이라 할 만하다. 지난 EIDF2020 인더스트리 'KOCCA-EIDF Pitch' 부문에서 인더스트리 초이스 상을 수상하고, 올해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출품됐다(이 감독은 2018년 역시 DMZ 영화제에 출품됐던 <테이크 미 홈>은 의뢰를 받아 뒤늦게 합류한 작품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영화제 기간이던 지난 9월 24일 첫 상영에 앞서 만난 이창준 감독은 "원래 제목이 '수퍼 노스 코리안'이었다"며 자신보다 많은 통장 잔고를 자랑하던 영순씨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2017년 남북정상회담이 예고되며 남북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고 덩달아 탈북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

10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한 방송 취재차 만난 탈북인들 중 영순씨는 뭐가 달라도 달랐단다. 그 이후로 3년을 '팔로잉'했다는 '엄마, 영순'씨의 특별한 차별점이 도대체 뭐였길래 이 중견 다큐 감독은 얼마를 찍어야 '그림'이 나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던 탈북인 이야기에 매달리게 된 걸까.

'수퍼 노스 코리안'에서 탈북인 모자 이야기로
 

▲ <엄마, 영순>의 이창준 감독.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람 자체가 좀 다르더라. 다른 탈북자들은 숨기는 게 많고, 중국에서 도망자 생활도 많이 하고 그래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남한에 들어와서 워낙 사기도 많이 당하니까 경계심도 많고. 탈북인들이 남한에 들어와서 적응하는 얘기는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잘못하면 징징거리는 다큐가 될 수도 있고.

원래 콘셉트는 모자 얘기가 아니었다. 탈북자들이 기초수급자들도 많고 남한 생활 적응도 어려워해서 돈을 잘 못 번다. 근데 영순씨는 돈이 나보다 많았다. 어 뭐지? 아파트에 산다고? 탈북자 이미지를 이 참에 바꿔보자 싶어서 시작했다."


그렇게 2018년부터 내리 3년을 찍었다. 2019년까지 제대로 찍었는데, 이후 영순씨가 사기를 당한 다음엔 더 찍을 수가 없어서 에필로그처럼 촬영했다. 그 사이 시선이 엄마 영순에게서 아들 소사에게 자연스레 옮겨갔다. 일반적인 모자 관계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 소사가 영순이란 캐릭터를 설명하는 서사 전개의 심리적 연결고리가 되어줬다. 그런 아들이 왜 비뚤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선 먼저 엄마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영순씨가) 보통 밀수했던 분이 아니었더라. 북한 국경수비대 대장 짚차를 그냥 맘대로 쓰던 사람이고, 엄청난 밀수꾼이었다. 밀수 규모가 엄청 크고, 경비대장, 보위부장부터 해서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뇌물 다 먹이고. 압록강변에서 100kg짜리 동배낭을 짊어지고 갔다더라. 배낭을 메고 바닥에 누워서 데굴데굴 구르고. 압록강 수풀 안에서 턱까지 물이 차는 만조시 밤까지 숨어 있고. 직접 뛰는 걸 봤는데, 구름 위를 걷는 거 같더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멘탈도 엄청 세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경험을 했을 테니. 북한 말투도 안 고친다. 당당한 거다. '뭐 어쩔래' 싶은. 완전 강한 캐릭터다. 멘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 같다.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사는 거다. (영순씨) 아버지도 국군포로 출신인데, 당시 북한에서 여기서처럼 탈북자 취급을 당한 거니까."


그런 여성이자 엄마인 영순씨만을 온전히 그려내는 것으로 부족하다 느꼈을까. 이 감독 눈엔 "돈을 잘 버는, 잘나가는 탈북인" 엄마로만 영화를 채우기엔 아들과 엄마 관계가 굉장히 이상해 보였다고 한다. 왜 저 엄마는 아들이 애기하려고 하면 말을 막을까. 아들은 왜 웃고 있지만 엄마를 못마땅해할까. 왜 엄마는 아들을 바보같고 무능력하며 의지박약이라 여기는 걸까. '슈퍼 리치' 탈북인 엄마에 맞춰졌던 포커스가 그렇게 이동하고 있었다.

"갈수록 소사의 껍데기를 벗겨 나가게 됐죠. 마지막엔 사기 당한 것에 대해 울분을 토하다가도 또 엄마에 대해 얘기하잖나. 그렇게 아들의 눈으로 엄마의 심리를 따라가게 됐다. 성격이 세고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의 캐릭터를 살리기보다 엄마는 왜 그랬는지,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거다.

살아오면서 쌓여온 트라우마도 있을 거고. 그러니까 보통의 가족 얘기다. 가족이니까 겪는 트라우마, 북한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지금 현재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엄마는 그걸 벗어나려고 죽어라고 일을 하고, 아들은 엄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 못 벗어나고."


"자극적인 이야기는 일부러 찍지 않았다"
 

▲ 다큐멘터리 영화 <엄마, 영순>의 한 장면.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물론 그런 감정들을, 속내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순탄지만은 않았다. 처음 1년은 가까워지는 데 주력했다. 영순씨 같은 경우 카메라 앞에서 2~3시간을 자기 얘기만 했다. 그걸 들어주고 나서야 듣고 싶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카메라 앞 대상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시간이었다.

"엄마도 그렇게 말을 할 사람이 없는 거다. 처음 인터뷰 가면 2~3시간 동안 저는 한마디도 안 해요. 그냥 저한테 쏟아 붓는다. 그걸 한 10번 정도를 하면 제가 듣고 싶은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일단은 마음 대로 얘기하세요, 다 들어 드릴게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면 진짜 얘기를, 듣고 싶은 얘기를 시작하거든. 그게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근데 소사의 속마음은 도저히 모르겠는 거다. 영화엔 안 넣었지만 팔에 칼자국, 자해 흔적도 있는데 제가 봐도 막 짜증이 나고 소사만 보면 답답해서 미치겠더라. 돈도 펑펑 쓰고 돈으로 다른 사람한테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첫째형에게 엄마의 사랑을 뺏긴 복수심도 있는 거다. 엄마가 자기를 바보 취급하니까."


그럴 만했다. 영순씨 말로는, 남편이 휘두른 도끼에 이마가 찍혀 피가 줄줄 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소사의 아버지는 북에서도 체제불만자이자 알콜중독자였다. 가족을 학대했고, 엄마를 때렸다. 첫째형도 그런 학대를 못 이겨 결국 가출을 했고 아직까지 행방을 모른다. 함께 북한을 탈출했던 아버지는 2013년 탈북자로서의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해 버렸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방황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10명 만나든 20명 만나든 술값을 다 낸다. 예를 들어 친구가 노트북 갖고 싶다고 하면 그냥 사준다. 다 북한 애들끼리 노는 건데, 약간 병적으로 돈으로 물질적으로 (집착한다). 엄마가 금목걸이 해주면 그냥 줘버리고. 북한에서 잘 살았던 기억도 있을 거고. 철딱서니없어 보여도 사람을 보면 진심이 있는지 없는지 보이잖나. 소사한테는 그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하고 관계, 교회 사람들 관계하는 거 보면 진심으로 하고. 저를 만나면 항상 끌어안더라. 저에 대한 호감도도 있고 외로운 애라는 걸 직감했고. 만족스러운 게, 소사의 그런 변화 과정을 하나하나 속마음을 다 끄집어 낸 게 성과라고 본다. 저도 굉장히 힘들었다. 소사가 굉장히 포커페이스고, 아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얘기를 안 하니까."


서두가 그렇게 서서히 두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후반부엔 본격적으로 모자 모두 자기 속내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일부러 자극적인 언행은 담지 않으려 노력했다. 눈에 확 들어올 순 있지만 그게 '진짜' 감정은 아니라는 어떤 철학과 신념에 따른 선택이었다. 영등포 쪽방촉 노숙인들을 카메라에 담은 <왕초와 용가리>의 연장선상이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길 바랬다. 모자라서 궁금해하고 상상할 수 있게. 영상을 줘버리면 감정이 거기서 끝나 버린다. 그 사람의 마음 속 상처를 이해하려면 상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영화 뒷배경인 실제 삶에선 뭐가 더 있을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으니까. 소사 얘기도 그렇고, 술자리를 찍은 게 많은데, 그런 엉켜있는 감정이나 이런 걸 보여주는 게 그 사람의 진짜 현실은 아니잖나.

<왕초와 용가리> 때도 극적인 사건들, 피 터지고 난장판 같은 상황은 아예 안 찍었다. 감정이 분출하는 센 장면은 찍히는 사람도 '저 새끼가 저걸 찍네'라고 생각하는데, 잘못하면 신뢰가 깨진다. 자기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거지. 폭발하는 장면을 찍는 건 또 싫어하고, 그런 걸 안 찍을수록 속마음을 더 얘기한다. 일종의 전략이었는데 그때 느낀 게 컸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 건 아예 찍지 말고 시도도 하지 말자, 이들이 던진 얘기만 주워 담자."


'님과 함께' 피해 안 주고 살고 싶은 그들의 이야기
 

▲ 다큐멘터리 영화 <엄마, 영순>의 한 장면.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순씨와 소사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도 많다. 누구 말이 맞는지 대놓고 카메라를 오픈해 놓은 적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두 사람의 "기억의 왜곡"이 일어난 인터뷰 내용을 두고 중심을 잡는 것도 감독의 일이었을 터. 아울러 이창준 감독은 대상을 자극적이지 않게 보이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후반부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영순씨의 모습을 멀찍이서 담은 것도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건 어떻게 그리건 엄마 영순씨와 아들 소사의 이야기를 편견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남한 관객들의 시선을 염두에 둔 선택이기도 했다.

"일반 사람들은 탈북인들에 대한 편견이 엄청 많다. 그걸 조금이라고 건드리는 건 하지 말자. 가족 얘기로 가고, 가족의 과거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추자. 트라우마들을 어떻게 해결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저런 일을 전전하며 노동 착취 등을 당한 소사가 카메라 앞에서 털어 놓는 진심을 균형 있게 전달하는 것도 필수였다. "그렇게 징징댈 거면 중국으로 가 버리라"고 소사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단다. 그럴 땐 서운한 듯 "감독님도 똑같은 남한 사람"이란 소사의 항변이 돌아왔단다.

"북한 사람이라 그렇다. 추방 당하면 이 사람들은 갈 데가 없다. 하물며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집이라도 있잖나. 어디로 갈 건가, 탈북자들은. 북에서 받아주질 않지 않나. 대한민국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북한 고향에도 못 가고 중국에도 못 간다. 위험하다. 도망다니다 온 거잖나. 파도와 바다 이미지를 계속 넣은 것도, 이들이 섬처럼 고립된 사람들이라서 였다."

DMZ 영화제 버전엔 삽입곡이 딱 세 곡 들어간다. 남진의 '님과 함께'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그리고 외국인 여성 가수가 부른 '왓 어 원더풀 월드'. 이중 '님과 함께'를 제외하곤 저작권 문제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엔딩곡인 '왓 어 원더풀 월드'는 특히 탈북인 모자가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한 곡이라 조금 아쉽다. 이에 대해 묻자 의외로 너른 답이 되돌아 왔다.

"'님과 함께'가 사실 영화의 메시지다. 소사가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안 받고' 그러고 살고 싶다고 말하잖나. 영숙도 남한테 선물 받은 게 난생 처음이라고 하고. 탈북자들은 북한에 가족들도 있고 어디 나서서 얘기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 하고. '왓 어 원더풀 월드'도 그렇고, '님과 함께'처럼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인사 한 번씩 건네주는 거지. '난 당신만 있어주면 행복해'.

그 당신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될 수 있는 거고. 탈북인들을 저질국가에서 온 도망자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도 각자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건데. 남한 사람들은 안 그런가, 다른 지역에서 다르게 성장하는데. 믿음이거든, 믿음. 북한 사람들을 못 믿고 도망자 생활할 때 무슨 일을 했는지 범죄자는 아닌지 시나리오들을 쓰고 상상력을 발휘한다. 반대로 이 사람들은 전화 통화 할 수 있는 몇 명만 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게 영화의 메시지였다."


영등포 쪽방촉 노숙인, 트라우마를 지닌 탈북인 모자에 이어 이창준 감독이 또 2~3년 카메라를 가져가고 싶은 대상은 누구일까. 답변을 듣자 의외다 싶으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심보다 외부를, 메이저보다 마이너를, 몇 작품 이어 소외 계층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 감독 답다.

"종교인들에 대한 얘기를 해 보고 싶다. 남의 얘기를 들어주고 어루만져주던 퇴직한 목사님이나 신부님들. 이들은 퇴직하고 어떻게 사나.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이제는 자기가 위로를 받아야 하니까. 천주교 쪽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연찮게 저랑 일을 하는 작가가 남편이 신부님이라. 퇴직한 신부님 얘기를 들어 보니 재밌더라. 같이 모여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종교인도 인간이거든. 인간적인 고뇌가 있을 수밖에 없다. 퇴직한 신부님들이 가진 고민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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