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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은평한옥마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요"

곳곳 높은 턱에 휠체어 장애인들 "배제된 느낌"... '베리어프리' 턱없이 부족

등록|2022.10.06 09:44 수정|2022.10.06 09:44

▲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는 턱 앞에서 휠체어를 돌리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 은평시민신문


"은평한옥마을은 휠체어 장애인이 관람하기 힘든 곳이었다. 내부는 전혀 들어가지 못 하고, 주변만 둘러볼 수 있었다. 셋이서문학관과 삼각산금암미술관은 차라리 '휠체어 장애인이 들어올 수 없다'는 표시를 했으면 좋겠다. 헛걸음 하지 않게."

지난 달 30일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을 찾은 한국장애인경영자협회 대표 서정호씨가 전하는 말이다. 휠체어 이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휠체어 장애인을 배제한 은평한옥마을 시설에 실망한 서정호씨가 전한 '차라리 휠체어 장애인이 들어올 수 없다는 표시를 해달라'는 전언은 큰 씁쓸함으로 남았다.

완연한 가을을 맞은 이날, 은평한옥마을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휠체어 장애인 당사자들과 활동지원사들이었다.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온 사람, 대중교통을 타고 온 사람으로 나뉘었는데, 장애인콜택시는 너무 오래 걸리고 대중교통은 어려움이 많아, 다 모이는 데도 한참이었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구파발역이다. 구파발역에서 다시 버스로 15분을 이동해야 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장애인 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교통약자의 접근권 보장이 법률상의 권리로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더 나아가 동법 제6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많은 공중이용시설과 편의시설은 여전히 '배리어-프리' 하지 않고,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이 어렵다.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은평한옥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전반을 둘러볼 수 있는 길은 비교적 잘 닦였으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휠체어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곳도 많았고, 제대로 된 안내 표지판 등이 없어 자칫 넘어지거나 다칠 뻔한 상황도 있었다.

한국장애인경영자협회 대표 서정호씨는 "은평한옥마을에 처음 와봤는데 주마간산격으로 보고 가는 정도에 그칠 뿐"이라고 전했다.
 

▲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는 도로변 높은 턱을 가리키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 은평시민신문

 

▲ 은평한옥마을 담벽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 은평시민신문


내부 시설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입구로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셋이서문학관은 입구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5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물론 이 계단을 오른다고 해도 문학관 내부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마당 역시 자갈과 울퉁불퉁한 돌 바닥으로 돼 있어 휠체어 바퀴가 자꾸 멈춰섰다. 내부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지하와 지상의 관람 장소를 연결하고 있었다. 이동약자가 원활히 관람할 수 없는 구조였다.

문학관 바로 옆에 위치한 삼각산금암미술관도 마찬가지였다. 문학관과 미술관을 연결하는 통로에는 큰 턱이 있어 휠체어 이동이 불가능했다. 문학관 밖으로 나가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삼각산금암미술관은 출입구부터 높은 계단으로 이뤄져 있어 출입 자체가 제한됐다. 계단 좌측으로 경사로가 있었지만 굳게 잠겨있는 문 앞에는 장애인 이용에 관한 어떤 안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밖으로 잠겨있는 걸쇠를 여니 왼쪽 문이 열렸고 오른쪽 문은 안쪽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왼쪽 문을 연 상태에서는 수동휠체어가 겨우 들어갈 수 있었고 오른쪽 문까지 열어야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었다. 장애인 혼자서는 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설사 타인의 도움으로 걸쇠 문을 열었더라도 경사로 역시 울퉁불퉁한 돌 바닥으로 되어 있어 휠체어가 올라가기에는 어렵고 위험했다.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올라갔지만 다시 내려오는 길에서는 울퉁불퉁한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휠체어 장애인 박영옥씨는 "둘러볼 수 없는 게 대부분이라 너무 아쉽고, 높은 문턱을 보면서 바로 배제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휠체어 장애인의 출입이 불가능했던 곳은 문화시설만이 아니었다. 주민이라면 누구나 이용가능하고 접근이 쉬워야 하는 '마을회관'조차 높은 계단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회관 안에서는 전통 음악을 공부 중인지 흥겨운 가락이 흘러 나왔지만 휠체어를 타고서는 안으로 들어가 주민 문화생활을 같이 향유하는 게 불가능했다.

한옥마을 내 편의점도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겨우 경사로를 따라 올라갔지만 문턱을 넘어갈 방법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마련한 휴게 공간 접근도 불가능했다.
 

▲ 셋이서문학관 출입구에 위치한 높은 계단을 앞에 두고 휠체어가 멈춰 선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 은평시민신문

 

▲ 은평한옥마을 마을회관의 높은 계단을 앞에 두고 휠체어가 멈춰 선 모습 (사진 : 김연웅 기자) ⓒ 은평시민신문


은평한옥마을은 북한산 자락 아래 현대식 한옥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관광지이자 주민 생활공간이다. 가을 코스모스가 예쁘게 펴 한옥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공들여 만든 공간인 만큼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만끽했으면 하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은평한옥마을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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