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 수 있던 이유
서로 미안한 마음 하나 갖고 산다면 이해를 낳는 공동체 생활
2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 왔다.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의 고래고래 소리가 불안했다. 놀러 오자마자 5분도 안 돼서 벨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긴장한 상태. 이런 예감은 정확하게 맞았다. 그분이 올라왔다.
미안한 표정을 하고 문을 살포시 여니, 정말 거대 폭격기가 나를 공격하는 것마냥 따다다다다다다 악을 쓰는 분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2년 동안 어떻게 살지? 사실 5분은 내 체감이고 정확하게 12분이 지난 후에 올라오셨다.
늘 이사를 가서 처음 하는 일이 아래층에 인사를 가는 일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했어도 이 이웃과 잘 지낼 수는 없었겠다 싶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좀 살살 말하지 않나? 살면서 손가락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입으로 하는 삿대질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사를 가려고 하신 분이라 더 정을 떼려고 했었나? 곧 이사를 가셨다.
아래층에 새로운 이웃이 왔다. 케이크라도 사 들고 내려가야 하는데, 당시 일상이 지친 탓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날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할머니를 만났다. 납작 쪼그라진 얼굴로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하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저희 때문에 불편하시죠? 내가 귀가 잘 안 들려서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아파서 집에서 뜸을 자주 해서 냄새가 올라갈 거예요. 좀 이해해 주세요."
할머니의 말씀이셨다.
"아이고, 아니에요. 저희 아이가 매일 뛰어서 제가 죄송하죠."
말하는데 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인사를 하고 내리셨다. 내가 한 말은 듣지 못하신 것 같다. 나는 가끔 깼을 때 새벽 3시부터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에 다시 잠 못 이루기도 했다.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남편은 자주 오디오 드라마를 들으면서 잠을 잤다. 그러나 아이가 쿵쾅 거리는 소리에 비하면 이건 좋은 음악이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다.
어느 날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를 들고 내려갔다. 할머니가 아닌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분이 나오셨다. 까만 봉지를 내밀며 "위에서 너무 울려서 불편하시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니 "어머 위에 아이가 있었어요? 전 애가 없는 줄 알았어요" 하신다.
넉살 좋은 품으로 웃으면서 답해주시는데 뭐 이런 감사한 사람들이 있나 싶었다.
또 언젠가는 아이가 "엄마 아래층 할머니 좋아! 할머니 중에 세 번째로 좋아"라고 양가 할머니 다음으로 좋다는 것이다.
농구복을 입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날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네가 농구하는 거구나. 농구 열심히 해'라고 했단다. 그렇게 2년을 감사하게 지냈고, 아이는 그 2년 사이에 커서, 집과 놀이터를 몸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 아이에게 쿠키 상자 하나 들고 다녀오라고 했다. 뭐라고 말하냐고 하길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라고 했는데 잘했는지 모르겠으나, 할머니가 부자 되라고 했단다. 그냥 살면서 상대에게 미안함 하나 갖고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미안함으로 상쇄시키면서 말이다. 공동체가 사는 곳에서 서로 미안함이 이해를 낳고, 고마움을 남기는 것.
아이는 부끄럽다며 인사하러 가는 것에 망설임이 있었지만, 자신이 배려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가 준비한 쿠키 상자를 들고 좋은 이별 인사를 하고 왔다. 서로 미안함으로 시작된 선순환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미안한 표정을 하고 문을 살포시 여니, 정말 거대 폭격기가 나를 공격하는 것마냥 따다다다다다다 악을 쓰는 분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2년 동안 어떻게 살지? 사실 5분은 내 체감이고 정확하게 12분이 지난 후에 올라오셨다.
아래층에 새로운 이웃이 왔다. 케이크라도 사 들고 내려가야 하는데, 당시 일상이 지친 탓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날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할머니를 만났다. 납작 쪼그라진 얼굴로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하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저희 때문에 불편하시죠? 내가 귀가 잘 안 들려서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아파서 집에서 뜸을 자주 해서 냄새가 올라갈 거예요. 좀 이해해 주세요."
할머니의 말씀이셨다.
"아이고, 아니에요. 저희 아이가 매일 뛰어서 제가 죄송하죠."
말하는데 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인사를 하고 내리셨다. 내가 한 말은 듣지 못하신 것 같다. 나는 가끔 깼을 때 새벽 3시부터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에 다시 잠 못 이루기도 했다.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남편은 자주 오디오 드라마를 들으면서 잠을 잤다. 그러나 아이가 쿵쾅 거리는 소리에 비하면 이건 좋은 음악이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다.
어느 날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를 들고 내려갔다. 할머니가 아닌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분이 나오셨다. 까만 봉지를 내밀며 "위에서 너무 울려서 불편하시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니 "어머 위에 아이가 있었어요? 전 애가 없는 줄 알았어요" 하신다.
넉살 좋은 품으로 웃으면서 답해주시는데 뭐 이런 감사한 사람들이 있나 싶었다.
또 언젠가는 아이가 "엄마 아래층 할머니 좋아! 할머니 중에 세 번째로 좋아"라고 양가 할머니 다음으로 좋다는 것이다.
농구복을 입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날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네가 농구하는 거구나. 농구 열심히 해'라고 했단다. 그렇게 2년을 감사하게 지냈고, 아이는 그 2년 사이에 커서, 집과 놀이터를 몸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 할머니에게 전한 쿠키 상자아이가 할머니에게 들고 간 쿠키 상자 ⓒ 임현순
오늘 아이에게 쿠키 상자 하나 들고 다녀오라고 했다. 뭐라고 말하냐고 하길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라고 했는데 잘했는지 모르겠으나, 할머니가 부자 되라고 했단다. 그냥 살면서 상대에게 미안함 하나 갖고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미안함으로 상쇄시키면서 말이다. 공동체가 사는 곳에서 서로 미안함이 이해를 낳고, 고마움을 남기는 것.
아이는 부끄럽다며 인사하러 가는 것에 망설임이 있었지만, 자신이 배려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가 준비한 쿠키 상자를 들고 좋은 이별 인사를 하고 왔다. 서로 미안함으로 시작된 선순환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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