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울한 청년들 자꾸 느는데... 정책 마련은 어디에

등록|2022.10.09 14:09 수정|2022.10.09 14:09

▲ 택시를 기다리는 한예은(가명, 23)씨 ⓒ 한승재


"한예은, 그래서 너 누구 편인데?" 두 편으로 갈린 친구들이 물었다. 답을 할 수 없었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새 학기가 되자 여자친구들이 모두 떠나갔다. 남자인 친구들도 뒤에서 수군댔다. "한예은, 헤프다면서?" 어제까지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친구가, 뒤에서 터무니없는 소문을 흘렸다. 이 학교에 더 이상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학교를 벗어나도 편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집에 가도 쉴 수가 없었다. 집에서도 나는 못난 막내였다. 내가 세 자매와 어머니를 두고 떠난 아버지를 똑 닮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는 미운 사위, 언니에게는 미운 아버지, 그래서 아빠를 닮은 나도 밉다고 했다. 나 또한 내가 싫어졌다.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러 다닐 일이 없었다. 서서히 활발함을 잃었다. 학교는 출석과 성적이 인정될 정도만 신경 썼다. 종일 그림만 그렸다. 자연스레 입시 미술을 하게 됐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는데, 신이 나지 않았다.

동기들은 과제를 돈으로 해결했고 교수님들은 그런 동기들의 성과를 더 높이 평가했다.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휴학계를 냈다. 어느 날 병원을 찾았는데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예전에 잠이 오질 않으면 몸을 심하게 긁었다. 그때는 자신을 해치는 행위란 것도 몰랐다. 성인이 되고서 정도가 심해졌다. 스스로 행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무 괴로워 삶의 끝을 생각하기도 했다. 복학 후에도 어려움을 겪다 결국 대학을 중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암투병하게 됐다. 어머니 병간호로 인해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어머니를 돌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잠깐이나마 시간이 있었다.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 덕에 버틸 수 있었다. 편지가 차곡히 꽂힌 편지 앨범을 보면, 생각이 조금이나마 정리됐다. 나를 아끼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증거가 여기에 있구나. 상황이 좋지 않을 때면 편지 앨범을 들여다보곤 했다.

어머니 병간호가 몇 달째 이어졌다. 어느 날, 기자를 준비한다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요청이었다. 약속 장소로 나갔는데, 마지막 질문에 마땅히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자 편지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휴대전화를 켜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불이 나면 제일 먼저 들고 나갈 물건, 편지 앨범으로 할게요. 이 앨범은요…"

계속 증가하는 청년 우울증

반복되는 일상에서 역할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한예은(가명, 23)씨처럼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다. 청년 우울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9~29세 청년의 우울감 경험률은 13.0%이다. 70세 이상 노인의 우울감 경험률과 더불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 보건의료산업학회지에 실린 연구(오찬혁 외)에 따르면, 우울감 경험률은 2015년 62만여 명에서 2019년 82만여 명으로 4년 만에 33.0% 증가했다. 청년 자살도 심각하다. 2019년 사망통계에 따르면, 고의적 자살이 20~29세가 51.0%, 30~39세가 39.0%로 가장 높은 청년층 사망원인이다.

병원을 찾은 청년 또한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20대는 17만 3745명이다. 30대는 13만 7133명을 기록했다. 각각 2020년보다 15%, 14% 증가했다. 전체 우울증 환자 증가율 8%보다 훨씬 가파르다.

청년 우울증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정치·사회적 갈등,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더불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요인도 배제할 수 없다. 2019년 한국사회학회 연구(구혜란 외)는 물질적 풍요와 교육적 혜택으로 쌓은 '본인의 역량에 비해 취업 문이 좁아진 것', '가진 것만큼의 성취를 누리기 어려운 상황' 등도 꼽았다.

우울증 증가세와 관련해 글로벌경제신문 이재승 의학 전문기자(바이오의학공학 박사)는 "우울증은 나이가 들어 발생하는 정상적인 노화가 아니며, 결코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가벼운 우울증의 경우 인지행동치료나 대인관계치료 같은 심리치료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라고 조기 치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대전을지대병원 정성훈 교수는 한 인터넷신문 칼럼을 통해 "젊은이 중 우울증으로 스스로 병원을 찾는 환자 비율은 매우 낮고, 고통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늦지 않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면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도움을 줄 전문의들이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찾을 정신과 전문의의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의료정책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9만 7271명의 전문의 중 정신건강의학과에 종사하는 전문의는 3.9%이다. 우울감 경험률이 4년간(2015~2019) 33.0% 증가했지만, 전문의 수는 3년간(2015~2018) 13% 증가했다. 우울증 환자 증가세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셈이다.

청년 우울증 환자는 해가 거듭될수록 늘고 있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청년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전문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며, 학계가 꼽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선례별 실태를 파악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한 진실한 공감이 아닐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