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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거센 바람에 휩쓸려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2] 피할수도 있었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등록|2022.10.15 17:32 수정|2022.10.15 17:32

▲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현 한국지부) 창립총회에서 한승헌 변호사가 창립선언문을 읽고 있다. ⓒ 국제앰네스티


산민 선생이 살았던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엽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변화ㆍ굴곡이 심한 격동기였다. 많은 사람이 시대의 수레바퀴에 치어 목숨을 잃거나 낙오되었다.

일제말기의 징용ㆍ징병에서 해방기의 좌우투쟁, 6.25전쟁으로 남북한 300만 명의 희생, 이승만과 박정희ㆍ전두환 군사독재 시기의 정치적 살해... 여기에 굶주림과 역병, 자연재난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 명대로 살지 못했던가.

이런 시기, 이런 땅에서 80여 년을 올곧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그러나 비범한 삶을 영위한 것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생의 일관된 삶의 가치는 그의 표현대로 "역사 앞의 죄인과 의인이 뒤범벅이 된" 시대에 "의롭고 억울한 사람들의 고난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주석 1) , 그리고 변호사의 자리에서 피고인의 자리로 위치가 바뀌면서도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는 점이다.

나는 본시 조용히 살고 싶었다. 내 성품도 야성(野性)과는 촌수가 멀었다. 그런데 내 희망과는 달리 세상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거친 들판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내 인생은, 앞에서도 썼듯이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데, 바람이 멎어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말 그대로였다.

세상의 수난에는, 그냥 앉아서 영문 모르고 당하는 희생(victim)과 불의와 맞서 싸우다가 당하는 희생(sacrifice)이 있다고 한다. 나의 작은 고난이 그 어느 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선두의 사람, 즉 앞장서서 일을 꾸미고 이끄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대열의 어중간한 자리에서나마 결코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따라다녔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군사독재 아래서는 다른 선택이 없기도 했다. (주석 2)

▲ 한승헌 변호사 ⓒ 정대희


그는 시대의 광풍에 지식인(법조인ㆍ검찰ㆍ교수ㆍ언론인)이 제 구실을 하지 않을 때 음지 쪽에 서서 역사적 소임을 맡게 되었다. 피할수도 있었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촌철살인의 유머로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유머 관련 책을 3권이나 쓸만큼 내용이 풍부하고 절묘했다. 그의 '유머철학'이다.

'웃기는 비법' 몇 가지를 알려 드린다. 첫째 요체는 압축이다. 말을 길게 할수록 유머의 필수요소인 박진감과 간결함이 떨어진다. 유머에는 의외성 또는 반전이 따라야 한다. 상식으로 귀결되면 웃기지 않는다. 유머는 직관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어야 하는데  다양한 경험과 낙천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사고력, 꾸준한 지식의 함양 같은 것이 어우러져야 품격 있는 유머가 나온다. (주석 3)

선생은 군사독재 시절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구형과 판사의 선고가 똑같아서 '자판기 판결' '정찰제 판결'이란 명언을 남기고, 군법회의 법정이 구형량에서 한 푼도 깎아주지 않던 유신ㆍ5공시대의 판결을 한국의 정찰제는 백화점보다 군법회의에서 최초로 확립되었다고 '판시'했다. 100마디의 비판보다 훨씬 약효가 있는 '판결문'이다.
 

▲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소견서’ 발표할 때의 모습. 1993년 11월 24일, 좌측에 서서 발표하는 인물이 한승헌 변호사.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선생을 평하는 글 중에 한 편을 뽑는다.

내유외강이라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라 바위와 이끼라는 말로밖에는 한 변호사의 그 품성을 표현할 길이 없다. 겉으로는 늘 푸르고 부드러운 이끼가 돋아 있다. 그것이 한 변호사 특유의 휴머니즘이다. 한 변호사는 만나면 늘 농담을 한다. 사람을 정면에다 대고 싫은 소리 하거나 면박을 주는 것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식물성 온정이나 휴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 이끼가 돌에 붙어 있을 때만이 비로소 이끼답듯이 한 변호사의 그 온화함은 강인한 의지와 정의감 같은 견고성 위에서만 생명력을 지닌다. 이를테면 어려운 자나 약자를 그냥 동정하고 가슴아파하는 인정에서 끝나지 않고 그는 그들을 돕고 때로는 자신의 몸을 던져 방패가 되기도 한다. (주석 4)

세상에는 덜 알려져 있으나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시집에 실린 <백서>의 한 대목이다.

 거센 비바람이야 어제 오늘인가
 아직은 목마름이 있고
 아직은 몸부림이 있어
 시달려도 시달려도 찢기지 않는
 꽃잎 꽃잎
 꽃잎은 져도 줄기는 남아
 줄기 꺾이어도 뿌리는 살아서
 상처난 가슴으로 뻗어내려서
 잊었던 정답이 된다. (주석 5)

산민 선생의 파란 많은 삶, 사이사이에 유머가 깃든 음지와 양지를 향해 떠난다.


주석
1> 한승헌, <내 마음 속의 그들>, 114~115쪽, 범우문고 091, 범우사, 2002.
2> 한승헌 자서전, <한 변호사의 증언>, 406~407쪽, 한겨레출판, 2009.(이후 <자서전> 표기)
3> <박정희 때 '정찰제' 판결, 백화점보다 에누리 없었다오>, <한겨레>, 2017년 10월 2일.
4> 이어령, <바위의 이끼는 늙지 않는다>, <한승헌선생 회갑기념논문집, 한변호사의 초상>, 226쪽, 범우사, 1994.
5> 한승헌 시집, <하얀 목소리>, 서정시학, 2017.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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