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아침부터 '킹받는' 직장인은 이걸 먹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힐링 푸드 마라탕

등록|2022.10.13 11:10 수정|2022.10.13 11:10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직장인의 삶에서 스트레스를 빼고 사회 생활을 논할 수 없다. 아니, 어디 직장인 뿐이랴. 학생이든, 전업주부든, 이미 퇴직한 이후의 삶을 사는 사람이든.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인생의 기본 값 중 하나로 딸려 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날이 있다. 계획하던 일이 어그러지거나, 상사한테 깨지거나, 뭔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펑펑 터지는 날. 원래 일은 일대로 쌓여 있는데 터진 일 수습하느라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날.

우울감과 허탈함이 동시에 온 몸을 감싸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회의를 느끼는 그런 날에는 마음 맞는 직장 동료를 소환하여 가는 곳이 있다. 우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혀를 얼얼하게 마비 시키는 매운 맛을 지닌 신비한 양념의 마라탕을 먹으러 간다.

마라탕 먹으러 가는 날
 

▲ 내가 좋아하는 조합의 마라탕은 푸주와 청경채, 숙주, 버섯이 듬뿍 들어간 마라탕이다. ⓒ 김지영


우선 식당에 들어서면 음식 재료를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양푼과 집게를 집어 든다. 잡채를 10인분은 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집에도 없는 크기의 커다란 양푼을 한 손에 들고 정갈하게 통에 담겨 있는 여러 식재료들을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웅장해진다. 재료를 매의 눈으로 스윽 스캔한 후, 내가 먹고 싶은 재료를, 내가 담고 싶은 조합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 양푼에 담아낸다.

버섯의 식감을 좋아하는 나는 팽이 버섯과 목이 버섯, 느타리 버섯을 취향껏 담는다. 마라탕에는 두부가 실로 다양한 형태로 들어가는데, 일반 두부와 포두부, 면두부나 유부 등을 통틀어서 나의 최애픽은 죽순 형태로 말린 두부인 푸주다.

푸주를 메인으로 먹을 정도로 너댓 줄기(?) 넉넉하게 넣고,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넙적 당면이나 일반 당면 혹은 떡이나 분모자(가래떡처럼 생긴 당면)를 추가하기도 한다.

채소 중에 숙주와 청경채, 배추는 빠지면 안된다. 숙주는 아삭함을, 청경채와 배추는 시원함을 담당한다. 가끔 폭닥한(포근하다의 방언) 게 당기는 날에는 얇게 저민 감자를 추가하기도 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유부도 추가한다. 마라탕 국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유부를 한 입 베어 물면 으슬으슬한 기운이 저 멀리 달아나는 느낌이다. 소시지나 새우, 어묵, 오징어 등을 추가할 수도 있다. 라면 사리와 옥수수면 등 면을 넣어 먹기도 하고, 간혹 추가 요금을 받는 고급 식재료를 골라 넣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고기를 고르는데, 나는 주로 소고기를 고른다. 내 주변에 마라탕 좀 먹는다는 친구들은 양고기를 먹더라. 양고기의 특유의 냄새가 마라의 향신료와 맛 궁합이 좋다는 이유에서이다.

마라탕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라 초급자인 나는 아직 양고기 마라탕은 시도해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양고기든 소고기든 상관 없다. 나의 취향대로 내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으니! 가볍게 먹고 싶은 날에는 고기를 선택하지 않기도 한다.

정말 매운 맛이 필요한 날에는 마라 양념을 넣은 볶음 요리인 마라샹궈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건 마라탕보다도 제법 매운맛이 세기 때문에 아주 가끔 정말 열 받고 속이 답답한 날에만 주문한다(마라탕보다 단가도 더 비싸기도 하다). 마라샹궈에는 해산물이 들어가는 게 개인적으로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솔방울 오징어나 새우 같은 것들 말이다.
 
무게를 달고 맵기 단계를 정해서 계산을 마치고 나면, 셀프로 가져다 먹는 짜사이나 양배추 피클 등의 반찬과 각종 소스를 먹고 싶은 만큼 가지고 자리로 와서 앉는다. 식재료 선택부터 맵기 선택, 거기다가 소스 선택까지 나의 할 일은 여기서 끝이 난다.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내 마음대로'가 주는 힐링
 

▲ 정말 매운 맛이 필요한 날에는 마라 양념을 넣은 볶음 요리인 마라샹궈를 선택하기도 한다. (같이 간 친구와 하나씩 시켜서 사이 좋게 나눠 먹기도 한다.) ⓒ 김지영


다행히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주문한 순서대로 1번 마라탕, 2번 마라탕 이런 식으로 각자의 마라탕이 요리 되어져서 나온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음식은 홀에 앉아 있는 나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콜라보 작품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하루에 마라탕 재료를 직접 골라 담는 행위 하나로 나의 마음이 조금 위로를 받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내가 담은 식재료들로 탄생한 마라탕은 식재료를 하나하나 담으면서 머리로 상상했던 바로 그 맛이기에 만족도가 더더욱 높다.

나의 첫 마라탕 입문은 불과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부터 마라탕이 어떤 맛인지 궁금하긴 했는데, 왠지 고난이도의 음식 같아서 도전을 미루고 미루었다. 마라탕을 잘 아는 사람과 가야 할 것 같아서 섣불리 도전을 하지 못하고 있던 참에, 내가 마라탕을 먹어 본 적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젊은 친구 둘에게 이끌려 처음으로 먹게 되었다.

한 번 먹고 묘하게 '어? 괜찮은데?' 하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먹고는 반하고, 세 번째 먹고는 중독이 되어버렸다. 처음 마라탕을 먹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아직 기억한다. 짜고 매운데 혀까지 얼얼하게 마비가 되어서, 뒤이어 마신 물 맛이 이상해졌던 경험. 치과 치료 마치고 나온 뒤 마취가 풀리기 직전의 입안과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 느낌을 음식에서 받을 수 있다니!!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내가 고심해서 고른 재료가 듬뿍 들어간 맵고 얼얼한 맛의 마라탕을 집중해서 먹다 보면, 직장에서의  머리 복잡했던 일들은 어느새 멀리 달아나 버린다. 중국식 스푼 위에 청경채 한 줄기와 버섯 그리고 푸주 한조각을 올리고 국물을 가득 떠서 한 입에 호로록 넣으면 아삭함과 쫀쫀함, 쫄깃함이 마라 특유의 맵고 간간하고 혀가 얼얼해지는 국물과 함께 입 안에 퍼진다.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하루에 온전히 내 마음대로 골라 담고 골라 먹는 마라탕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마라탕은 나의 힐링 푸드이지만 소울 푸드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열 받는 날에는 마라탕만한 음식이 없고 주기적으로 생각나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맵고 자극적이기에 자주 먹기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모름지기 소울푸드라고 하면 언제든 시시때때로 생각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가을이 성큼 다가오면서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바야흐로 국물이 당기는 계절이 온 것이다. 꼭 열 받는 일이 없더라도, 가끔은 마라탕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마라의 맵고 짜고 얼얼한 맛이 지금 당신의 머릿속을 배회하고 있는 걱정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테니.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