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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과 인생은 닮았다

계획대로 되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등록|2022.10.16 15:34 수정|2022.10.16 15:34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다녀왔던 속초 출장길. 시스템 납품 설치 및 운영 중인 시스템 이전까지 해야 하다 보니 야간 작업은 피할 수 없었다. 이전 작업이 늦게 시작하다 보니 작업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전날 업무가 늦게 끝나다 보니 다음 날 오전은 자투리 시간이 주어졌다. 가볍게 브런치를 즐기며 카페에 앉아 있는데 자연스레 첫 제주 출장길이 생각났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제주도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빠듯한 다음 일정 탓에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왔다가, 해 떨어지기 전에 다시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제주도까지 왔는데 퍽 아쉬웠다. 두고두고 다음 제주 출장을 손꼽아 기다리며 다음엔 기필코 개인 시간을 내리라 결연한 마음을 다졌다.
 

올레7코스올레길 ⓒ 정지현


첫 제주 출장 이후 두 달 만에 제주 출장이 잡혔다. 다시 찾은 제주의 하늘은 첫 출장 때보다 높아졌고, 바람도 선선해진 딱 놀기에 좋은 날씨였다. 지난번 출장의 아쉬움 때문에 이번 출장은 사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신속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서 2일 차에는 개인 시간을 마련하리기 위한 작전이었다.

다른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출장 업무 준비를 빠짐없이 체크했고, 스케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조정한 덕에 일을 마친 2일 차 남은 시간은 기대했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얻은 소중한 시간에 제주 올레길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모든 방문객이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는 바로 7코스.

예전부터 기회가 된다면 꼭 와 보고 싶은 곳이었다. 주변에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작 처음 올레길을 마주한 게 출장길에서라니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 여행을 위한 사전 답사라고 여겨 정성을 다해 올레길을 걸었다. 가을을 제대로 느끼기 좋은 쾌청함에 순간순간이 설렜다.

휴가는 남들 일하는 날에 쉬기 때문에 좋지만, 작정하고 떠나는 휴가보다 더 좋은 하루는 출장길 자투리 시간에 얻는 이런 자유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한창 얼어 있던 사원, 대리 시절 어렵기만 하던 직장 선배들과 함께 한 출장이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던 것도 업무를 빨리 마치고 함께 보냈던 이런 자투리 시간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나 혼자 누리는 호사다. 퍼즐 맞추듯 모든 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기회였다. 첫날 업무 처리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했으면 내겐 이런 시간은 있을 수 없었다.

사전에 출장지에서 진행할 업무에 대한 사전조사를 비롯해 동행하는 협력사와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완벽한 출장 준비를 마쳤다. 혹시 모를 몇 가지 변수까지 고려해 출장 업무를 설계했다. 이렇게까지 출장에 진심인 이유는 생애 첫 아프리카 출장에서 뼈아픈 경험을 통해 길들여진 습관 때문이다.

제주 출장처럼 계획한 대로 일이 척척 진행돼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업무가 계획대로 처리되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도 꽤 있다. 오래 전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로 출장 간 적이 있다. 목적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였다. 치안이 불안한 곳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출발 전부터 불안하긴 했지만, 막상 도착한 요하네스버그 도심 곳곳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재직 중이었던 회사에서는 자체 개발한 보안 제품을 남아공에 수출했다. 당시 해외 기술지원팀 팀장이었던 나를 포함해 담당 영업, 기술 담당자 세 명이 이번 출장길에 동행했다. 홍콩을 경유해서 가는 긴 여정이어서 20시간 가까운 시간을 비행기로 이동했다. 긴 비행 탓에 피곤할 법도 했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처음으로 밟은 아프리카여서 그런지 긴 비행 피로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남아공 시간으로 오전 8시 호텔로 이동해 바로 짐을 풀고 업무처리를 위해 남아공의 한 통신회사로 이동했다. 당일 바로 출장 업무 처리를 위한 업무협의와 추후 일정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긴 이동시간과 시차 때문에 몸은 피곤했지만, 업무 지원에 진심이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 아프리카 초원 ⓒ pixabay


바로 모든 업무 처리 후 주어질 남아공에서의 일정 때문이었다. 2일간 업무 처리 완료 후 남아공 통신회사 측에서 준비한 3일간의 투어가 계획돼 있었다. '제사보다 잿밥에 정신이 있다'라는 말처럼 업무보다 아프리카 투어 일정에 설렐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우리의 기대처럼 이틀 만에 업무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 업무 처리는 하루 더 지연돼 꼬박 삼일 만에 마무리됐다. 결국 아프리카 투어의 꿈은 사라졌다.

우리를 초대했던 남아공 파트너사는 일정에 맞춰 처리되지 않은 업무 탓에 사전 예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프리카 출장에 꿈같은 투어까지 이어졌다면 평생 잊지 못할 출장이 되었을 텐데... 시간이 흘러도 아쉬움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두 번의 출장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직장인에게 출장은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 계획한 대로 마무리가 되면 계획했던 업무 성과를 이뤘다는 보람과 덤으로 생각지도 못한 선물 같은 시간이 기다리기도 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가 되고 다시 일상으로 스며든다는.

준비는 늘 완벽에 가깝게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계획대로 되든 그렇지 않든 출장지로 가는 마음만큼은 늘 설렌다. 여행과는 결이 다른 '설렘'을 품고 출장지로 나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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