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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조용한 퇴사' 자랑하는 직장인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도 도태... 이성적으로 현실 직시해야

등록|2022.10.17 19:32 수정|2022.10.17 19:32
2010년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어이없었던 신입사원'의 유형을 설문조사 한 결과, 1위는 시키는 일만 하고 그 외에는 손을 놓고 있는 '나몰라라 형'이었다. 2015년 '가장 퇴사 시키고 싶은 직원의 유형'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도 '시키는 일만 적당히 하는 직원'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결국 조직에 남아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발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수동적인 사람보다는 능동적인 사람이 좋은 인상을 준다.

강산도 변할 만큼 시대가 진화한 탓일까. 세상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면서 과거 어이없는 직원, 퇴사시키고 싶은 직원들이 주로 하던 '시키는 일만 하기'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조용한 퇴사'가 한국으로 넘어온 탓이다.

요즘 젊은 직장인의 트렌드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 여론몰이용 과대광고가 아닐까 싶을 만큼 미디어에서는 관련 소식이 넘친다.

'조용한 퇴사'는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드 펠린의 틱톡 영상을 통해 확산했다. 그는 "조용한 퇴사는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용한 퇴사'에 동참하는 직원들
 

▲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컷.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의 모습 ⓒ ㈜이수C&E

"계약직일 때 열심히 일해서 정규직 전환 시켰는데, 새로운 일은 절대 안 하려고 해. 기존에 하던 일 딱 거기까지야. 중요한 일을 하다가도 퇴근 시간되면 어떻게 진행하고 있다는 말도 안 하고 퇴근하고, 툭하면 그만둔다고 하고..."

팀 분위기를 흐리는 직원 때문에 고민이라는 친구의 하소연이다. 시키는 일 위주로 조용히 일하다 퇴근하는 젊은 직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스스로를 '조용한 퇴사자'라고 선언하고 SNS 등에 공유하기도 한다.

'조용한 퇴사'는 일과 삶의 균형의 한 측면일 뿐 과장해서는 안 된다. 추구하고 실천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 성향과 성격의 차이다. 비혼이 유행이라고 '비혼족이 돼야지!'라고 결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회사는 유기적으로 다양한 조직과 사람이 맞물려 돌아간다. 조용한 퇴사족의 마음이 불변의 진심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 비효율 실천을 가속한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도 도태된다.

'조용한 퇴사'를 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어느 정도의 마음가짐인지와 실천 여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적당히 일하면서 진급 욕심이 없는 2030 직장인이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조직에서 누구도 피터팬처럼 만년 사원으로 머물 수 없다. 진급은 직장에서 보낸 세월과 노력, 능력의 합작품으로 일부러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직급 연한이 있다. 진급하지 못하고 한 직급으로 몇 년 이상 머물면 퇴사 대상자가 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통상적으로 10년 이상 근속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지만, 최근에는 사원도 피할 수 없는 냉랭한 세상이 되었다.

치열한 세상에서 '조용한 퇴사'를 운운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노력을 굳이 겉으로 드러내야 할까. 코로나19 시대이자 경기 불황의 시대다. 고스펙을 쌓고도 취업 문턱이 높아 전전긍긍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 면접 볼 때 최선을 다하겠다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입사 문턱을 넘자마자 돌연 '조용한 퇴사자'라는 라벨을 자발적으로 붙일 필요가 있을까.

진짜 퇴사를 위한 확실한 준비 운동
 

▲ MBC '아무튼 출근!' 직장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준 MBC '아무튼 출근!'의 한 장면 ⓒ 방송 캡처


'조용한 퇴사'가 아닌 '조용한 보람'을 추구하는 건 어떨까. 소싯적 직장에서 필수 요소였던 '주인의식'은 이미 무의미한 시대가 되었다. 자신이 맡은 일에만 '주인의식'을 가진다면 '조용한 퇴사'가 아닌 '조용한 보람'으로 또 다른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면 하루 최소 8시간 이상 머무는 곳에서 작은 의미라도 찾아야 괴로움을 한 스푼이라도 덜 수 있다.

'조용한 퇴사'나 유행처럼 번진 '퇴사 열풍'은 모든 직장인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다. 일부 성공한 또는 먹고살 만한 전 직장인의 가벼운 발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직장인은 누구나 퇴사를 꿈꾼다. 대책 없는 탈출이나 '조용한 퇴사'가 아닌 '행복한 퇴사'를 상상한다. 구체적인 목표 없이 바람 같은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은 후회를 키우는 지름길일 뿐이다.

일과 삶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조용한 퇴사'보다는 워라밸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조용한 자기계발'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지금보다 나은 미래, 진짜 퇴사를 위한 확실한 준비 운동이 될 것이다.

2030세대에게 야근이나 주말 출근이 많은 기업은 기피 대상 1호라고 한다. 일이 많고 군대식 문화를 지향하는 조직도 꺼린다. 퇴근 후 업무 관련 연락이 잦은 회사도 물론 싫어한다.

누구나 같은 마음 아닐까. 요즘 젊은 세대는 입사하려는 기업의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직장을 선택한다는 방증이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조용한 퇴사'가 능사는 아니다.

시대가 변하고 직장인의 삶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해타산적인 조직에서 '조용한 퇴사'를 넋 놓고 바라볼 리 만무하다. '조용한 퇴사'라는 직장인의 적극적인 비몰입은 결국 자발적 도태의 형태로 나타나고,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굳힐 것이다. 결국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이드 펠린이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아!"라고 말했지만, '직장인'을 당장 그만두지 않는다면 결국 '일의 결과물'로 평가받고, 이직에서의 경쟁력도 '일의 결과물'이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직장인은 이상이나 낭만을 섣불리 추구하면 안 된다. 이성적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이상적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조용한 퇴사'가 아닌 원대한 꿈을 품고 퇴사해 사업가가 되었는데, 자신이 고용한 모든 직원이 조용한 퇴사자라면? 이런 생각도 한 번쯤 해 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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