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대접받은 산행, 태백산

등록|2022.10.17 16:49 수정|2022.10.17 16:49

쉼터쉼터에는 의자, 배낭걸이대 등 편의시설이 설치됐다. ⓒ 이보환


높고 푸른 하늘에 마음을 빼앗기는 날의 연속이다. 들녘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간다. 바람과 햇볕이 영락없는 가을이다.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는 이런 날씨가 좋다.

1일 높은 곳에서 가을을 느낄 욕심으로 태백산을 찾았다. 태백산(太白山)은 강원도 영월군, 정선군, 태백시, 경상북도 봉화군의 경계에 있으며 정상은 1567m 장군봉이다. 이 산 자락에는 낙동강, 한강, 오십천까지 세 강의 발원지가 있다.

1989년 5월 강원도립공원 지정 이후 2016년 8월 우리나라의 22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다. 태백산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정상에 천제단이 있고 토속신앙과 결합한 기도처와 사찰이 많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자장에 얽힌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혼자하는 산행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몇 해 전 다녀온 적 있는 유일사 코스를 택했다. 태백산 국립공원 유일사 주차장은 전기차 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두 곳 있고 화장실도 깨끗하다.

오늘 갈 길은 유일사 주차장-태백사-유일사-장군봉-천제단에서 돌아오는 8.3km 구간이다. 경사가 심한 임도로 시작한다. 자갈길 양 옆으로 초록나무가 무성하다. 숲은 작은 소리도 놓칠 수 없을 만큼 고요하다. 꽃을 찾아 날아드는 윙윙~ 벌 울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태백사라는 작은 암자를 지난다. 멧돼지가 출몰하니 고시래를 하지 말라는 안내문구가 눈에 띈다. 아니나 다를까 산을 오르다 멧돼지를 만났을 때 대처법을 설명한 안내판도 여러 장 있다. '멧돼지를 만나면 등을 보이지 말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움직이지 말란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돌탑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도한다. 멧돼지 만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유일사 이정표태백산 유일사 코스는 장군봉까지 가는 최단코스다. ⓒ 이보환


계속되는 경사로가 버거워질 때 유일사 1쉼터가 기다린다. 등산객을 위한 배낭걸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손님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비상약품 보관함 역시 푸짐하게 준비해 놓았다. 유일사까지 가는 길에는 유일사 2쉼터, 유일사 3쉼터가 나타나 걷기를 도와준다.

당단풍, 층층나무가 숲을 호위한다. 늠름한 호위병에 둘러쌓여 안전한 산행이 계속된다. 최단코스이고 난이도가 높지 않은 구간이라 해도 산은 매번 어렵고 힘들다. 얕봤다간 큰 코 다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아마도 정상에 섰을 때 느끼는 뿌듯함과 성취감, 탁 트인 풍경 때문이 아닐까.

태백산 국립공원은 일부 구역을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주목과 신갈나무, 피나무, 거제수, 분비나무 등 희귀식물 22종을 관리하고 있다. 세 번째 유일사 쉼터를 지나자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 안내도가 나타난다.

유일사까지 얼마남지 않았다. 유일사를 지나자 오솔길이 맞아준다. 반가운 능선이다. 흙길과 어우러진 초록빛이 선명하다. 가을 들꽃의 자태가 곱다. 보랏빛 물든 투구꽃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장군봉 쉼터가 가까워지면서 주목 군락지가 시작된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나무다. 태양이 민망할 정도로 붉은빛을 뽐내고 있다. 몸통이 비틀어지고 가지가 꺾여진 데다 속이 텅텅 비어 있다. 수많은 세월을 버틴 의연함이 묻어난다.
 

명품 계단유일사에서 장군봉으로 오르는 계단.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적절히 섞여 걷는 이들의 무릎과 발의 피로를 풀어준다. ⓒ 이보환


흙길이 돌계단으로 바뀐다. 돌계단 사이사이 정사각형 모양의 목재 계단이 생겼다. 돌 틈틈히 놓인 반듯한 나무는 무릎과 발의 피로를 풀어준다. 단체 산행을 오신 어르신들도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길 좋다. 길 좋아. 신경써서 잘 만들어 놓았네."

드디어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에 이른다. 줄 서서 기다리다 인증사진을 찍고, 천제단으로 향한다. 자욱한 안개 숲이 펼쳐진다. 마치 무림고수가 되어 숲속을 걷는 기분이다. 홀연히 사라지는 안개를 바람이 다시 부른다. 안개가 하늘에 흩날린다.

천제단에 가까워지자 안개비가 머리와 어깨에 내려온다. 커다란 태백산 정상석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 표정이 밝다. 날씨 영향인지 산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대여섯살 가량 어린 아들과 함께 걷는 자상한 아빠, 지친 엄마 손을 잡고 이끌어 주는 아들, 중년 부부의 큰딸은 두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하며 부모님 마중을 나간다. "이렇게 두번이나 내려오면 되겠나! 괜찮다. 그만 먼저 가라" 하시며 딸을 뒤따른다.

산이 사람을 불러 모으는 가을이 왔다. 옆에 있는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넓어지고 국립공원의 배려에 감사하는 산행이었다. 초입부터 적당한 쉼터가 있고 배낭걸이대, 먼지털이, 비상약품함까지 갖췄다. 돌계단과 나무계단의 적절한 조화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산꾼을 생각한 누군가의 작품이었다. 주목군락지와 야생화가 많은 곳에 설치된 숲속 교실은 훌륭한 자연학습 공간이다. 대접받는 기분으로 태백산행을 마쳤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도 실립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