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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손 엄마 '소풍 도시락'을 본 아이의 표정

숙제 검사 받는 기분... 다행히 '통과' 랍니다

등록|2022.10.25 09:42 수정|2022.10.25 09:42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엄마, 월요일이 무슨 날이지?"

저 물음이 벌써 세 번째다. 둘째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유치원 소풍날이지."

바야흐로 소풍 시즌이다. 코로나 19로 지난 몇 년간 운동회, 소풍 등의 행사가 전국적으로 멈춰 있었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부터 하나둘씩 재개되기 시작했다.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 만의 소풍
 

▲ 화려한 도시락은 아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꼬마김밥과 고기주먹밥으로 소풍도시락을 싸주었다. ⓒ 오지영


아이는 며칠 전부터 소풍을 간다고 한없이 들떠있었다. 그 모습이 퍽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나 또한 학창 시절에 소풍을 앞두고 뭘 입을지, 뭘 챙겨갈지 한참을 고민하곤 했으니까. 소풍 전날이면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며 잠자리에 들었었지.

둘째는 소풍 준비물과 유의사항을 나에게 몇 번이고 읊어주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편한 옷 입고 오래. 신발도 운동화 신고 와야 한댔어. 그리고 꼭, 도시락을 챙겨가야 해.'

아이는 유독 '도시락'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어쩌면 소풍보다도 소풍 도시락을 더 기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도시락'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반가운 마음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고백하건대, 나는 손재주가 없다. 특히 요리 부분에서. 그래도 요즘은 다양한 밀키트와 양념장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라, 나 같은 사람도 먹을 만한 음식을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맛은 얼추 잡아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음식의 외형이었다.

많은 사람이 맛집에서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사실 직접 먹어보지 않는 한 음식의 맛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느낌'을 공유하기엔 사진만으로도 충분하다. 맛깔난 음식 사진을 보며 저절로 '먹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그릇이나 접시에 담는 걸 플레이팅이라고 한다. 음식의 맛만 내기도 버거운 나는 플레이팅은 단념한 지 오래다.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남편도 플레이팅은 서투르다. 덕분에 우리 집 음식의 모토는 '맛있으면 됐지'다. 하지만 소풍 도시락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풍 도시락은 모양이 중요하지 않던가.
 

▲ 음식사진을 통해 맛을 직접 느낄 순 없어도, 맛있어 보이는 느낌은 공유할 수 있다. ⓒ pixabay


인터넷에 '소풍 도시락'을 검색해보았다. 주르륵 나오는 소풍 도시락 이미지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달팽이 모양 김밥, 문어 소시지, 병아리 메추리 알, 캐릭터 도시락까지…. 작은 도시락 속에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구현되어 있었다.

고난도의 도시락들은 뒤로 한 채, 일단 내가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도시락을 찾아본다. 하트 도시락? 곰돌이 유부초밥?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전, 첫째 도시락을 꾸며보겠다고 치즈로 눈알 만드느라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릴 적 소풍 도시락

우리 땐 그냥 김밥 한 줄이면 충분했는데. 어릴 적 내 소풍 도시락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소풍 날 아침이 되면 우리 집 주방은 평소보다 더 분주했다. 엄마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안쳤다. 프라이팬 위에는 햄과 달걀지단이 구워지고, 뜨거운 물에 데친 시금치는 더 진한 초록빛을 띠었다.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소금과 참기름을 넣은 뒤 주걱으로 저어주었다. 밥 냄새만 맡아도 얼른 김밥을 먹고 싶어서 애가 탔다. 때로는 엄마 몰래 햄 한 줄을 슬쩍 집어먹기도 했다. 커다란 김 위에 밥을 쓱쓱 펴 바른 뒤 여러 가지 재료들이 나란히 자리에 눕는다. 김밥을 말고 겉에 참기름을 발라주면 드디어 김밥 한 줄이 완성되었다.

도시락 가방과 물통을 꼭 끌어안고, 소풍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소풍 장소에 도착하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각자의 도시락을 펼쳤다. 엄마가 만든 김밥은 요즘 인기 있는 도시락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야외에서 먹는 김밥은 이미 식어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누가 뭐래도 즐겁고 맛있는 점심이었다.

사실 어떤 도시락통이었는지, 김밥 모양이 어땠는지, 맛은 어땠는지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풍 도시락이 좋았다고, 맛있다고 단언할 수 있었던 건 소풍에 대한 설렘과 주변의 풍경, 그리고 엄마의 정성이 느껴져서가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그냥 내 스타일대로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우선 커다란 김을 반으로 자른다.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인 햄, 당근, 단무지, 우엉을 넣고 김밥을 꾹꾹 말아준다. 김밥을 만들고 남은 밥에는 다진고기와 김 가루, 참기름을 살짝 추가하여 섞는다. 섞은 밥은 동글동글하게 빚어 평소에 먹는 주먹밥으로 만든다. 그렇게 만든 꼬마김밥과 주먹밥을 도시락통에 조심스럽게 담는다.

아, 나도 소풍 가고 싶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둘째가 부엌으로 달려온다.

"엄마, 내 도시락은?"

나는 방금 닫은 도시락 뚜껑을 다시 열어서 도시락을 보여준다. 혹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지? 숙제 검사를 받는 느낌으로 조심스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다행히 아이의 표정이 밝다. 자기가 좋아하는 김밥이란다.

아이는 분주히 소풍 갈 채비를 한다. 평소엔 꾸물거리며 준비하더니, 오늘은 시키지 않아도 양치도 후딱, 옷 갈아입기도 척척이다. 좋아하는 동요도 흥얼흥얼한다. 도시락통과 물통이 담긴 유치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늦으면 안 된다며 발걸음이 빨라진다.

둘째 유치원을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길. 아이에게는 내가 만들어준 도시락이, 오늘의 소풍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해진다. 조금 쌀쌀하지만 파란 하늘과 익어가는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나도 소풍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 풍경 속에 앉아서 가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이 가을, 가족 또는 친한 사람들과 소풍을 떠나보면 어떨까. 안 되면 혼자라도 좋다. 거창하고 화려한 도시락이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먹을 거리, 마실 거리를 챙겨서. 물론 잊지 말자. 먹고 난 흔적은 남기지 않기로. 아름다운 자연을 계속 누리고 싶다면 쓰레기는 잘 챙겨오시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SNS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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