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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마을 처녀를 왕비로 만들어 준 나무

[자전거 한강 산책 2] 늘 내 곁에 서 있는 버드나무

등록|2022.11.06 14:27 수정|2023.02.02 10:32

▲ 아름드리 버드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 반포한강공원. ⓒ 성낙선

    
최근 한강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는 양버들이다. 간혹 그 이름이 '미루나무'로 표기돼 가끔 오해 아닌 오해, 혼란 아닌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름이야 어찌 됐건 지금 한강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 중에 가장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나무가 양버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양버들이 아무리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수입종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린 역사가 길게 잡아 100여 년? 지금부터 소개하게 될 이 나무에 비하면 그 역사가 결코 비할 바가 아니다. 물가에서라면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버드나무 이야기다.

버드나무와 우리와의 관계는 아마도 한반도에서 한민족이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오래 됐을 수도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우리와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내가 한강에서 양버들만큼이나 자주 인사를 주고받는 나무이기도 하다.

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 나무 
     

▲ 바람 부는 날, 찰랑거리는 버드나무 가지. 뚝섬한강공원. ⓒ 성낙선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돌아다니다 보면, 버드나무가 여기저기 치렁치렁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가까이 다가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바람이 불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긴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흔들어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묘한 매력을 지녔다. 그래서인지 버드나무 주변으로는 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개울가 버드나무'가 그렇고, '우물가 버드나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버드나무와 인간과의 끈끈한 관계는 이미 '전설'로 굳어져 있다.

옛날에 아주 이름난 장수가 있었다. 그 장수가 왕건이라는 얘기도 있고, 이성계라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그 장수가 말을 타고 가다가 한 마을의 우물가를 지나가게 됐다. 때마침 목이 마르던 차에 장수는 우물가에서 그 마을 처녀에게 물 한 그릇을 청했다. 처녀는 장수에게 물그릇을 건네면서 그 안에 버드나무 잎을 따서 넣었다. 장수가 물을 급하게 마시다 사레라도 들까봐 걱정했던 거다.

이후의 이야기는 굳이 더 길게 덧붙이지 않겠다. 이같은 버들잎 설화는 버전이 꽤 여러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으로 꼭 왕건이나 이성계만 등장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다. 장수가 왕이 되고, 처녀는 왕비가 되는 이 이야기 구조에서 버드나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떠올리면, 버드나무가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장수는 바뀌어도 버드나무가 하는 역할은 바뀌지 않는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 설화 속 진짜 주인공은 버드나무다.

한자인 '버드나무 류'는 버드나무 아래서 두 사람이 이별을 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가지가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사람들이 이별의 정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 사람들 곁에 서서 무언가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버드나무가 떠오른다. 이별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그 옛날부터 버드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였다. 지금도 버드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그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 찰랑이는 물결에 발을 적시고 있는 버드나무. 양화한강공원. ⓒ 성낙선


한강으로 산책을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한강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당연히 그 주인은 나무들이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한강은 상상이 가도, 나무가 존재하지 않는 한강은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사라진 이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를 보여주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을 보면, 인류가 모두 사라진 땅이 점차 온갖 식물로 뒤덮이는 광경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오곤 한다. 애초 오늘의 지구를 만든 것 또한 모두 나무를 비롯한 녹색 식물들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 덕분이다.

나무는 지금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씩씩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나무들에게 어떻게든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싶은데, 서로 말이 통하질 않는다. 그저 이렇게 손을 들어 둥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거나 가슴 가득 넉넉히 끌어안는 것밖에는.

한강에 버드나무 군락지가 여러 군데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다 싶을 때, 그곳으로 가 보자. 버드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 한 장을 깔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을 버티며 살아가는 나무의 본성이 나도 모르는 새 내 안에 스며드는 것이다.
   

▲ 저녁 노을이 지는 강가에 묵묵히 서 있는 버드나무. 반포한강공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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